어느 전문대학의 사회복지과 야간반을 1년 동안 맡은 적이 있다. 강의는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진행됐다. 오래 전 일이다. 사회복지과 야간반의 수강생 대부분은 사회복지 관련 직장에 다니고 있는 늦깎이 대학생이었다. 30대부터 50대까지 연령이 다양했다. 늦게 공부를 시작한 만큼 그들의 학구열은 남달랐다. 온종일 업무에 시달린 뒤끝이라 피곤할 텐데도 눈빛이 초롱초롱 살아 있었다. 강의를 하다 보면 그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강의실이 훈훈해졌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정서적으로 통한다는 느낌 때문에 마음이 편해졌고, 시간이 갈수록 작은 눈뭉치가 굴러가면서 차지게 뭉쳐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인정미 넘치는 수강생들 사이에서 둥실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낮에는 마을버스를 몰고 다니는, 엄마의 기일이 다가오면 감말랭이를 가지고 다닌다는 여자.
그날, 서울‧경기 지역에 폭설주의보가 내렸다. 학교에 가려고 집을 나섰는데 굵은 눈송이가 허공을 가득 메웠다. 목적지까지 고속도로를 이용해 한 시간쯤 달려야 했다. 눈보라가 몰아쳐 속도를 내기가 어려웠다. ‘폭설‧강풍 주의 서행 운전’이라는 글귀가 고속도로 전광판에서 위협적으로 번쩍거렸다. 3월 중순에 날벼락처럼 찾아온 이상기온이었다. 다행히 늦지 않게 학교에 도착해서 강의를 마쳤다.
“서울에 폭설이 쏟아진다는데요.”
누군가가 크게 말했다. 이어 승용차를 가져 오셨느냐, 송탄톨게이트를 이용하면 빠르다, 고속도로가 빙판일 테니 천천히 운전하시라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강의실을 벗어나면 그들이 막내이모나 삼촌처럼 느껴졌다. 어떤 분은 큰아버지 같기도 했다.
“아직 안 올라 가셨어요?”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보니 목에 호피무늬 스카프를 두른 만학도가 미소 지으며 다가왔다. 다행히 눈발은 멈췄지만 그새 하얗게 변해버린 세상이 매혹적이어서 나는 그 풍경에 빠져들고 있던 참이었다. 무성영화를 관람하듯이.
그녀는 이미 내 머릿속에 자신의 무늬를 새겨뒀다. 강의 첫날 강좌 소개를 한 후 짙은 쑥색 칠판을 깨끗이 지우고서 점 하나를 찍었다. 그리고 여러분의 눈에는 이 점이 무엇으로 보이느냐고 물어봤다. 심리적 거리감을 좁히면서 그들의 상상력을 만나보는 일종의 자기소개였다.
“누군가는 이 점을 ‘희망’이라고 했어요. 칠판에서 점을 제외한 부분은 모두 불행이래요. 그래도 희망의 씨앗이 남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나는 출석부에 적힌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똑같은 질문을 했다. 그들의 대답은 다양했다. 눈동자, 축구공, 한 알의 포도, 하늘에서 바라본 누군가의 머리, 눈송이, 검은콩…….
“고현선님?”
고개를 비스듬히 꺾고서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여자가 살짝 손을 들었다. 이목구비가 흐릿한 돌부처가 떠올랐다.
“제 눈에는 그 점이 상처로 보여요. 칠판은 마음이고요.”
수강생 몇몇이 호기심 어린 시선을 그녀에게 던졌다. 내가 돌부처의 마음을 할퀸 것만 같아 순간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고현선님이죠? 칠판의 점이 상처로 보인다고 말씀하셨던.”
“그걸 기억하세요? 사실은 그 점이 친정엄마로 보였는데 그냥 상처라고 말한 거예요. 친정엄마를 입에 담으면 울음보가 터질 것 같아서요.”
그녀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나도 덩달아 고개를 들었다. 하늘이 거대한 그림자로 보였다. 저승의 호적부로 이름을 옮긴 무수한 사람들이 밤마다 펼쳐 보이는 영혼의 그림자.
“친정엄마가 청상과부로 자식 네 명을 키웠어요. 결혼해서 애 낳고 가정을 꾸려보니까 엄마의 외로움과 괴로움을 알고도 남겠더라고요. 친정이 저희 집에서 가까웠어요. 엄마는 매일 길모퉁이에서 저를 기다렸어요. 지팡이가 없으면 잘 걷지도 못하는 양반이…….”
말이 계속 이어질 분위기였다. 그녀가 토해 내는 말들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새어나오는 하품이나 재채기 같았다.
“결국 길모퉁이에서 저를 기다리다 돌아가셨어요.”
갑자기 내 마음속에서 눈발이 흩날렸다. 무슨 말이든 해야겠는데 말문이 열리지 않았다.
“길모퉁이 바로 건너편에 상점이 있거든요. 주인아주머니가 그러는데 노인네가 지팡이에 얼굴을 댄 채 계속 앉아 있더래요. 처음엔 봄볕이 하도 따뜻해서 잠든 줄 알았다고…… 길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딸이 들어서는 신작로 쪽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송장이 되어버린 거예요. 그날 칠판의 하얀 점을 보는데 친정엄마가 떠올랐어요. 막내딸을 기다리다 점점 쪼그라든 엄마 말이에요. 그 후로 엄마의 기일이 다가오면 배가 아파요. 설사병에 시달리기도 하고요. 내일 모레가 우리 엄마 제삿날이거든요.”
배가 또 살살 아프다고,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면서 그녀가 자리를 떴다. 겨울 풍경 감상이 아니라 오늘 저 사람의 말벗이 되어주라고 누군가가 나를 여기에 붙잡아 놨나. 어느새 밤 11시가 넘었는데 왠지 마음은 느긋했다. 그녀가 이내 돌아왔다.
“이거 드셔 보세요. 쫄깃쫄깃하니 맛있어요.”
그녀가 작은 배낭에서 꺼내 내게 건넨 것은 감말랭이였다. 지퍼백에 담겨 있는 우글쭈글한 감말랭이가 가로등 불빛을 받아 발갛게 탐스러웠다.
“친정엄마가 유일하게 즐겨 먹던 주전부리였어요. 가을걷이가 한창일 때 감말랭이를 만들어서 두고두고 먹었죠. 나이 들면서 입맛도 변하는데 감말랭이는 평생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고 좋아했어요. 엄마가 저를 기다리다 돌아가신 날도 스웨터 주머니에 이 감말랭이를 넣어 가지고는…… 자식이 아니라 이 감말랭이가 엄마의 임종을 지켜본 거죠. 오늘처럼 배가 아플 때 이걸 먹으면 좀 나아져요.”
그녀가 감말랭이를 먹고 또 먹으며 여린 숨을 내쉬었다. 그 숨소리에서 눅눅한 기운이 느껴졌다.
“친정엄마가 돌아가시기 두 해 전부터 마을버스를 몰았어요. 아이 둘을 키우면서 안 해본 일이 없어요. 남편이 건강하지 않아서요. 운전기사가 됐다고 우리 엄마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요. 노상 궂은일만 하던 막내딸이 버스 운전대를 잡으니까 고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나 봐요. 제가 운전하는 버스를 꼭 타보고 싶어 했는데 그깟 소원을 들어주지 못했어요. 그게 한스러워요.”
나는 그녀의 다정한 말벗이 아니었다. 그녀의 애잔한 사연을 들으면서 입도 뻥긋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단어를 조합해서 문장을 만들어야 할지 몰라 나는 눈만 깜빡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이런 생각이 의식 속에 떠돌며 내 입을 막은 것 같았다.
‘엄마를 향한 그리움의 말들이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저 하늘에 온전히 닿도록 가만히 숨을 죽이고 있자’
나는 누군가의 거칠면서도 따스한 살결 같은 감말랭이를 만지작거리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의 감말랭이를 맛있게 먹은 것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