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애야, 참외 먹자"

by 김설원

그해 초여름, 나는 의뢰 받은 자서전을 쓰기 위해 매주 당진을 오갔다. 어김없이 목요일에 내려가 지은 지 백 년이 넘었다는 집에서 하룻밤 잤다. 취재 차 두 달 동안 내딛은 발걸음이었다. 매주 당진에 내려가 하룻밤 묵게 해달라는 부탁은 내 입에서 나왔다. 의뢰인은 그럼요, 그럼요, 하면서 반색했다. 그 당시 우리 집안은 보증 문제로 형편없이 찌그러졌고, 그와 별개로 나의 일상 또한 허망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나에게 ‘자서전 쓰기’ 라는 일감은 가뭄 끝에 내린 단비 그 자체였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정성껏 쓰고 싶었다. 나의 인터뷰이가 1929년생이라는 말을 듣고 긴장하지 않을 수 없기도 했다. 1929년생이라면…… 일제강점기, 해방, 6.25 전쟁, 경제개발, 민주화운동…… 장기간 이어진 역사적 폭염을 온몸으로 감당한 세대 아닌가. 가늠조차 되지 않는 그 비애와 세월의 무게 앞에서 저절로 숙연해졌다.

의뢰인은 모친의 굴곡이 많았던 삶을 책에 담고자 했다. 남편이 외도로 낳은 자식까지 기꺼이 품어 열 명의 자식을 길러낸 어머니. 그들이 저마다 짝을 지어 이룬 ‘대가족’이라는 작은 숲. 그 가족공동체가 변함없이 화목할 수 있는 건 바로 어머니가 중심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손들은 어머니라는 뿌리를 책을 통해서라도 만나야 한다. 이것이 자서전 발간 이유였다. 의뢰인은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소문 내지 않고 조용히, 우리 가족만 읽겠다고 했다. 순수한 마음이 느껴졌다.


당진 어머니는 마루에서 시금치를 다듬고 있었다. 정겨운 마당에는 고운 햇살이 가득했다.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어머니가 한껏 몸치장을 하고 손님을 맞이할 거라는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당신은 평소 모습 그대로, 하지만 얼굴에는 미소를 듬뿍 담고서 나를 반겼다. 5월 초부터 6월 말까지, 나는 매주 목요일마다 당진행 시외버스를 탔다. 노인복지회관에서 뭔가를 배우고 부랴부랴 귀가한 어머니는 나를 보면 일단 밥부터 챙겨 먹였다. 인터뷰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한 끼도 거르지 않았다. 어머니의 밥이 내 안에서 증발해버린 활기를 다시 불어넣어 주는 듯했다. ‘이런 밥의 힘으로 박씨 집안의 뼈대가 굵어졌겠구나’, 나는 감사히 수저질을 하면서 어머니에겐 삶이나 다름없을 ‘밥’의 의미를 곱씹었다. 우리는 두 달 동안 만나면서 함께 새벽 예배를 드리러 가고, 국수도 삶아 먹고, 집안 선산에 올라가 잡초도 뽑았다. 낮이든 밤이든, 앉아서든 누워서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날 시금치를 겉절이처럼 버무려 내놓은 식탁에서 점심밥을 배불리 먹었다. 후식은 참외였다. 하얀 접시에 길쭉길쭉하게 썰어 놓은 참외를 날름날름 먹다 보니 당진 어머니는 어째 참외를 입에 대지 않았다.

“왜 안 드세요?”

“나는 참외를 못 먹어요.”

단순히 참외가 싫은 말투가 아니었다. 무슨 사연이 있구나. 접시에 남아 있는 참외를 다 먹어야 어머니가 말문을 열 것 같았다. 내 입이 바빠졌다.


당신은 딸 일곱에 아들 하나를 낳았다. 다섯째 정애는 시아버지 환갑날 태어났다. 정애는 울보였다. 밤낮 툭하면 울어댔다. 깊은 밤에는 더 심했다. 딸이라는 이유로, 게다가 울보였기에 정애는 구박을 받으며 자랐다.

“정애는 나 먹으라고 호빵을 곧잘 사왔어요. 지 눈에도 소처럼 일하는 내가 가여워 보였던 게지. 내가 아파 누워 있으면 어린 것이 밥도 지어 놓고…….”

그런 딸이 몹쓸 병에 걸렸다. 오래 전부터 목이 아팠다는데 혼자 끙끙 앓았단다. 뒤늦게 병원에 데리고 갔지만 이미 악화된 상태였다. 딸을 병원 침대에 뉘어 놓고 집안일에 발이 묶여 자주 들여다보지 못했다. 정애가 퇴원하던 날만큼은 열 일 제치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얼굴이 몰라보게 해쓱해진 정애를 데리고 옷가게부터 갔다. 연두색 물방울이 새겨진 원피스를 사서 입혔다. 정애가 좋아하는 솜사탕도 손에 쥐어 줬다. 그날은 공교롭게도 사월초파일이었다. 멀리서 보니 어느 절에 걸린 알록달록한 연등이 커다란 알사탕 같았다. 하지만 그 행복은 신기루 같은 것이었다. 종양이라는 병마와 싸웠던 정애는 결국 가망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정애를 데리고 청계산 기도원으로 갔어요. 그날 비가 얼마나 쏟아졌는지 몰라. 우리 딸이 죽을 때가 됐나 보구나, 그래서 이리도 슬피 우는구나…… 정애랑 기도원에 머물면서 기도에 매달렸어요. 차라리 나를 데려가시라고. 그런데 우리 정애의 목숨을 그리도 빨리 앗아가시데. 허겁지겁 달려온 자식들이 싸늘히 식은 정애를 장례식장으로 옮겼어요. 나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이 없어서 멍하니 앉아 있었어.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게 뭐였는지 알아요?”

그건 싱싱한 참외였다. 당진 어머니는 청계산 기도원으로 들어갈 때 딸에게 먹이려고 참외를 가지고 갔다.

“정애야, 참외 먹자.”

그런데 당신도 모르게 시들시들한 참외를 깎아 딸에게 먹인 것이다. 과일이든 뭐든 좋고 탐스러운 것은 집안 어른들의 몫으로 내놓거나 남겨두는 버릇 탓이었다.

“자식에게는 쭈그렁이 참외를 먹여 저승으로 보내고, 에미라는 인간은 멀쩡히 살아 싱싱한 참외를 먹고 있다니…… 나는 죄인이에요, 죄인.”

그날 당진 어머니는 흠집 하나 없이 실한 참외를 손에 쥐고 밤새 울었다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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