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하나
“장춘랩니더.”
분명 화연이의 음색인데 ‘장춘래’라고 했다.
“이화연씨 휴대폰 아닌가요?”
“맞는데, 누군교?”
화연이가 바로 내 이름을 입에 올리며 휴대폰 안에서 금방 튀어나올 것처럼 반가워했다. 그러더니 수다쟁이처럼 말을 쏟아냈다.
“야야, 우리 만나자. 내일 일요일 아이가? 내친김에 오늘 온나.”
나는 어디든 가려고 집을 나선 참이었다. 화연이가 부르지 않았어도 고속버스나 기차를 타려고 했다. 이왕이면 태어나서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고장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종합버스터미널의 승차권 자동발매기에서 발권한 표를 손에 쥐고 보니 출발 시간까지 한참 남아 있었다. 우리가 얼마 만에 만나는 거지, 뭐라도 사들고 가야할 텐데, 화연이는 나를 보면 무슨 말부터 꺼낼까……대합실을 바장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매점에서 노릇노릇하게 구운 가래떡을 샀다.
“야 봐라, 왜 이리 말랐노. 어디 아프나?”
화연이는 터미널 대합실 의자에 나를 앉혀 놓고 이리저리 살폈다.
“젊은아 얼굴이 이게 뭐꼬. 내 언니래도 믿겠다.”
진심으로 안쓰러워하는 화연이를 보자 마음속 먹구름이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다.
“얼른 집에 가서 밥 묵자. 니 줄라고 곰탕 끓이 놨다. 뼈다귀 피를 쏙 빼야하는데 니 도착 시간 맞춘다고 대충했더니 국물이 시컴타.”
“나는 너 주려고 가래떡 사왔어.”
화연이가 살고 있는 텃새골까지 터미널에서 택시로 40분쯤 걸린다고 했다. 텃새골이라는 마을 이름이 마음에 쏙 들어와 작년 초겨울에 깃을 내렸다고.
텃새골로 가는 길은 꽤 낭만적이었다. 자로 잰 듯한 드넓은 평야, 승용차 두 대가 아슬아슬 비켜 갈 수 있는 흙길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평야에 살짝 가려진 길을 따라 날쌔게 달리는 택시가 꼭 두더지처럼 느껴졌다. 텃새가 많이 살아서 텃새골이냐고 물었더니 새보다는 장수하는 노인들이 많다고 했다. 한 곳에 오래 사는 노인들이야 말로 텃새라고 할 수 있느니 텃새골이라는 이름이 제격이라며 그럴듯한 해석을 내놓았다. 웃고 떠들다 보니 어느새 텃새골에 닿았다. 화연이가 자기 집이라고 가리키는 곳에 허름한 외딴집이 서 있었다.
“오래 비어 있던 집을 싸게 얻었제. 이게 통째로 내 집이다 생각하면 자다가도 웃음이 나온다.”
화연이를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내딛었다. 초라한 겉모습과는 달리 안은 멀쩡했다. 화연이가 바지런을 떨어서 집의 모양새를 갖췄다고 생각하자 더욱 정감이 느껴졌다.
“근데 이름 바꿨어?”
“원래 이름을 되찾았제. 배고프지? 조금만 기다려라, 얼른 밥 차릴게.”
예전보다 웃음이 많아진 화연이가 주방 쪽으로 들어갔다.
국물이 거무죽죽한 곰탕을 두 그릇이나 비웠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흡족한 포만감인가. 이런 마음을 화연이에게 전했더니 엄마처럼 내 어깨를 두드려줬다. 화연이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나는 씻었다. 자그마한 욕실에서 나오자 화연이가 찻잔을 앞에 놓고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뜨개질이 취미야?”
“내 밥벌이.”
“모자 떠서 팔아?”
“돈이 되는 일이면 뭐든 한다.”
“이거 들어봐라. 태교 음악은 모차르트가 최고라카데.”
“태교? 혹시 임신했니?”
화연이가 나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어리둥절했다.
“남편은.”
“배 타고 멀리 떠났다.”
“언제 오는데.”
“때가 되면 돌아오지 않겠나.”
도대체 무슨 말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띄엄띄엄 연락하고 지낸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긴 거야? 내가 눈으로 묻자 대답하기 싫다는 듯 화연이가 헛기침을 해댔다.
“나, 고아원에서 자란 거 알고 있제? 여덟 살 땐가, 고아원 원장이 통조림 깡통에 끈을 달아 손목에 걸어주면서 오미자를 따오라고 했다. 깡통을 채우면 십 원, 못 채우면 밥을 굶깄제. 도시에 나와서 통조림 깡통을 보면 꼭 오미자가 떠오르면서 허기가 지데. 사람들한테 밟히며 살다 보니까네 가족이 맹글고 싶더라. 새끼가 지 에미 밟겠나.”
화연이가 손으로 자기 배를 쓰다듬더니 다시 뜨개질을 했다. 능숙한 손놀림이었다. 소박한 방에 침묵이 흘렀다. 어디쯤에서 새소리가 들렸다. 밤에도 새가 우나. 아차. 나는 얼른 일어나 가방에서 가래떡을 꺼냈다.
“가래떡이 식어서 굳어 버렸네.”
“천천히 오래 씹어 먹으면 된다. 내 이름이 봄 ‘춘’에 올 ‘래’다. 풀이하면 봄이 온다야. 이름이 얼마나 좋노? 이걸 팽개치고 살았으니 내 인생에 무슨 봄이 왔겠노. 나는 텃새골 춘래로 살란다. 여기가 내 고향 같은기 맘이 편해. 밥도 꿀맛이다. 춘래가 아이 낳으면 미역 사갔고 온나.”
장면 둘
두 시간 전쯤 춘래의 전화를 받았다. 타임머신을 타고 텃새골에 다녀온 기분이다. 춘래와 나는 학연(學緣)이나 지연(地緣), 또는 직장 동료로 묶인 관계가 아니었다. 어느 자리에서 건너 건너 알게 됐는데 그 ‘건너 건너’를 빼고 우리만 가까워졌다. 연결고리는 가래떡이었다. 그날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무슨 말결에 가래떡 이야기가 나왔는데 다들 그걸 무슨 맛으로 먹느냐며 장난치듯 노, 노, 하는 손짓을 해보였다. 춘래와 나는 거의 동시에 “가래떡이 최고지!”라고 말했다. 오늘 춘래가 오랜만에 전화한 건 결혼 소식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춘래가 올 3월에 사위를 얻는단다. 오미자를 보면 허기가 진다는 춘래. 텃새골에 살면서 제 뱃속에 고이 품어 건강하게 키운 춘래의 딸이 듬직한 반려자를 만나 꽃길을 걷는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