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벌에 눈이 내렸다. 교회 뒤로 배경처럼 펼쳐져 있는 야트막한 산이 눈의 융단을 썼다. 대추가 많이 열린다하여 대추벌이라고 불리는 동네. 여름이 날개를 접을 때쯤이면 엄지손가락만 한 연둣빛 알맹이들이 집들을 감싸 안았다. 어찌 보면 그것은 꼭 살아 꿈틀거리는 듯했다. 누군가에게 반항하는 듯한, 자기들의 존재를 확인시키려는 듯한 절규의 몸부림. 대추나무를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버지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한철 그렇게 소란스러웠던 대추나무도 눈을 덮어쓴 채 정물처럼 서 있고 무끈한 하늘은 바람마저 잠재울 듯하다.
하늘이 첫눈을 토해낸 후 아버지는 또 차우를 만들기 시작했다. 대나무를 휘어서 양쪽을 칡으로 엮은 후 볏단을 깔아 만든 차우를 앞산에 놓고 하루가 지나면 인간의 속임수에 걸려든 작은 동물들이 그 안에 있었다. 아버지는 잡힌 동물들을 어김없이 돌려보냈다. 동물들을 쓰다듬으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다 오던 길로 다시 보내는 일, 이것이 겨우내 행해지는 아버지의 일이었다.
인쇄소에 근무했던 아버지가 직장을 잃은 게 벌써 오래전 일이다. 중소기업의 감원 바람이 유행처럼 번졌던 그 해, 남의 일인 줄 알았던 불행이 우리 가족에게 불어 닥쳤다. 감원은 당사자는 물론 가족을 하루아침에 막대 잃은 장님 신세로 만들었다. 수염이 듬성듬성한 입은 도통 열릴 줄 모르고, 얼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서서 하늘바라기를 하는 아버지, 우리 집엔 납보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당신의 퇴직금으로 인쇄소를 차릴 때만 해도 열정, 희망, 소생 같은 꽃들이 아버지의 얼굴에 피었다 지곤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또 한 번 버림을 받았다. 당신은 마지막 순간까지 버둥거렸으나 역부족이었다. 이 년도 채 버티지 못한 인쇄소를 정리하던 날 아버지는 우리 삼남매에게 ‘이제 시골로 돌아가겠다’고 통보했다. 어리둥절했지만 당신의 다짐이 워낙 꼿꼿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아버지는 대추벌에 둥지를 틀었다. 인쇄물을 납품하고 돌아오는데 튼실한 대추나무가 한눈에 들어와 훗날 이곳에 자리를 잡고 싶었단다. 아버지는 인근 사료 공장의 경비원으로 취직했다. 일자리가 생겼다며 어색하게 웃는 아버지의 얼굴이 명태가시처럼 내 목울대에 걸렸다. 염려와는 달리 아버지는 산, 나무, 강물, 하늘과 빠르게 가까워졌다. 당신은 대추벌에 터를 잡은 그해 겨울부터 눈이 내린 다음 날이면 차우를 만들었다. 당신이 자연과 친해지면서 나는 누에의 성장과정을 처음으로 봤다. 아버지는 라면 상자에 누에를 키웠는데 소나무 가지에 실을 토해 고치를 짓는 누에의 모습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누에의 뽕잎 갉아먹는 소리가 이슬비 내리는 소리와 닮았다는 것도 처음 느꼈다. 김장철이 되면 땅을 파서 독을 묻어 그 위에 볏단을 쌓고, 기르던 개가 새끼를 낳으면 이웃에 나눠주기도 했다. 아버지는 자연인이자 대추벌 사람이었다. 적어도 대추벌이 사회에서 도태된 아버지의 도피처는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해마다 겨울이면 구부정하게 앉아 차우를 만드는 아버지의 허리춤 사이로 아직 토해내지 못한 무언가가 보이는 건 무슨 까닭일까. 잡힌 동물을 다시 돌려보낼 때 그 형체가 더욱 뚜렷해지는 건…… 아버지가 지금 인생의 차우에 걸려 있는 건 아닌지, 언젠가는 밖으로 나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고 차우에 걸린 새가 날개를 퍼덕이듯 아버지도 대추벌에서 날갯짓을 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