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계급(상)
육체노동의 가치에 대해 고민하다.
대량 생산공장.
휴게실 안에는 늘 담배 연기가 자욱하다. 흰색 담배 연기는 특수 효과처럼 여기저기 피어오르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10평 정도 되는 온돌형 휴게실에는 개인 옷 따위를 보관하는 철재 캐비닛이 벽면을 따라 배치되어 있고 간이 베개와 재떨이는 질서 없이 바닥에 널려 있다. 조도가 낮은 실내조명은 사람들의 얼굴에 있는 양각과 음각의 골을 더 깊게 만들어 삶의 고단함을 한층 더 부각하는 듯하다.
모르지만, 한 겨울 뜨끈한 구들장 위에서 피우는 담배 맛은 육체의 피로를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노동자의 일과 중 유일한 낙이었을 것이다.
태어나서 18년 동안 담배 한 대를 물어보지 않은 어린 친구는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연신 기침을 해대며 단체 생활을 배운다. 사회생활을 버텨본다.
휴식시간은 10분. 밖에서 육중한 기계가 몸을 푸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곧 작업이 시작되겠구나를 모두가 인지하고 한 명씩 휴게실을 빠져나간다. 거대한 자동화 라인 벨트의 규칙적이고 일관된 소음. 소년은 한 달이 지나도록 거대한 공장 자동화 설비 앞에서 여전히 주눅 들어 있다. 컨베이어 라인공정은 정확한 시간에 조립품을 조립하여 뒷공정에 전달한다. 연결공정 내에서 자동화 벨트는 건너뜀이나 작업 지연을 용납할 수 없는 곳이다. 무조건 시간 내에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체 라인의 벨트는 정지하게 되고, 생산성 지표는 크게 떨어지게 된다. 기계는 주야 2교대로 쉼 없이 돌아가도 멈추는 일이 잘 없다. 사람도 주야 2교대로 쉼 없이 함께 돌아가야 한다. 기계와 오래도록 함께 한 사람들은 세월이 갈수록 기계보다 쉼이 많아진다. 관절이, 혈압이, 부상 등으로 쉼의 가짓수가 점점 늘어난다. 기계는 닦고 조이고 기름치면 1세기 정도는 거뜬할 듯하다.
보통 기계의 휴식은 법정 휴게 시간과 계획된 정비 혹은 노조 파업뿐이다.
우리 모두는 기계와 공동운명체로 기계가 쉬지 않는 한 쉴 수 없고, 기계는 고장 나면 수리되어 재사용되지만,
사람은 고장 나면 수리 상태에 따라 자리의 이동이 이뤄진다. 모두가 살기 위해 쉼 없이 움직인다.
휴식은 늘 담배 한 모금과 어제 먹은 술로 고통을 잠시 내려놓을 뿐이다.
산업혁명을 책으로만 배웠던 신입 노동자에게 대량생산 체계의 노동은 아직 멀게만 느껴진다.
기계적으로 살기.
김조장님은 젊은 시절부터 40여 년을 해당 공장에서 일한 베테랑이다. 갓 들어온 신입은 존경심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그런 분. 모든 것을 떠나 한 업에 본인 삶의 반을 받쳤다는 것 자체만으로 존경받아 마땅하다.
40여 년 동안 주야 2교대로 근무를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무엇이 그를 버티게 하는 힘이었을까?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만 생각한 것일까. 안정적인 수익만 바라본 것일까. 단순히 우직한 성실함이 몸에 베여있어서? 아니면, 육체 노동자의 길은 그냥 하나뿐인 건가.
그래도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귀족노조가 있는 회사가 아닌가. 정규직이니 돈은 많이 버시겠지라며 단순하게 치부해 버린다.
직접적인 경험을 통하면 삶의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오늘도 초보 소년 노동자는 물어볼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조장님! 이거 다 된 거는 여기에 올리면 되나요? 조장님!! 조장님!"
몇 번을 부르고 손을 흔들어 인기척을 냈더니, 그제야 뒤를 돌아본다.
김조장은 소리보다 뒤에 너울거리는 흔들림을 본능적인 감각으로 알아챈 듯하다.
"어어 그래, 어떤 거?" 멋쩍은 듯 눈은 개슴츠레 아무 일 아니라는 듯 고갯짓 하며 묻는다.
속으로 생각한다.
'업무시간에 왜 이어폰을 끼고 있지. 경력이 되신다고 그냥 대충 다니시는 건가.'
갓 들어온 신입의 사리분별은 역시나 서글프게도 엉망이다.
그분의 상태를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은 조촐한 회식자리에서다.
"내가 너만 할 때 이 회사를 들어와가, 이렇게 일을 한 40년 정도 하니까 몸이 맛탱이가 가쁜기라."
'청각이 멀어졌단다.' 이어폰은 보청기다.
'다리 관절은 할아버지 관절이 되어 서서 일하면 안 된다고 의사가 그랬단다.' 그러나 기계 앞에선 모두 서서 일하는 일뿐이다. 그래서 김조장님은 걷는 게 이상하다. 아니 특이하다.
'당뇨와 고혈압은 위험 수치를 유지 중이다.' 주야 교대근무의 위엄이 아닐까
보고 싶은 것과 보이는 것.
또는 감춰진 것들.
우리 사회의 사측과 노동자 측이라는 양분(兩分)은 늘 그렇게 프레임화 되어 있다는 것을 이때 조금 이해하게 된다. 모든 개개인 다름을 이해할 수 없듯이 모든 위치의 것들도 보는 이들의 관점과 관심에 따라 이해 정도가 달라진다. 1년여를 김조장과 생산직 노동자들과 함께한 비정규 생산직 소년 노동자는 나름대로 살아가는 세계의 한 구석을 깨치게 된다.
사회에서는 되도록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쉽게 말해선 안 된다는 것을.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그들은 회사의 성장 이면 속에 기계와 함께 생산성 지표로 치부된다.
국내 탑티어 연봉의 노동자, 귀족 노조. 모든 게 돈으로 귀결되는 언사들이다. 누구도 그들의 개인사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18살 노동자 소년이 사회와 개인을 이해하기에는 버거운 주제다.
다만,
삶의 가치나 노동의 가치,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이고, 또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육체노동은 예초에 보편적인 가치들을 추구할 수 있었을까?
사회가 말하는 노조의 보호아래 40년을 안전하게 회사에 머무르고 난 후 이분에게 남은 건
돈인가. 권력인가. 명예인가.
성실하게 살았다는 몸의 훈장이라며 돈과 명예라고 치부하면 될 일일까.
성흔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노동자 계급.
늦은 저녁 현장에서 큰 소리가 나온다.
"김조장님 야간작업 빨리 돌리소마! 물량 시간당 1,300개까지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아임니꺼."
지긋한 어른의 볼멘소리가 이어서 들려온다.
"박반장 지금 애들 이렇게 돌리면 쓰러진데이. 어쩔라고 이라노."
박반장이 날카롭게 쏘아붙인다.
"그럼 내가 직접 돌릴께에. 비키소마. 신입 서있지 말고 붙어라."
박반장은 김조장 보다 한참 어리지만 상관이다. 사회에서 위와 아래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런 식으로 사람을 대하고, 때론 무섭게 몰아붙이는지 알 길이 없었다.
무슨 이유로 박반장은 베테랑 김조장 보다 위에 있을까? 소년은 순수하게 궁금했다.
또한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반장은 공식 직책이었고 조장은 직책이 아닌 예우였다.
공장 안에는 사무동이라는 건물이 있고, 공장 내에서는 여기를 오가는 몇 안 되는 인물들 중에 박반장이 있었다. 그들은 공장과 사무동을 수시로 출입하며 공장 운영관리에 참여한다.
사무동은 어떤 곳일까?
아마 오늘도 박반장은 사무동에서 지시를 받았을 것이다. 생산량을 말하는 걸 보니 목표량을 받은 듯하다.
박반장도 김조장과 호형호제하며 저렇게까지 하는 분이 아니었는데, 오늘따라 저런다.
서로가 힘겹다. 서로를 알아서 더 힘겹다.
모두가 철봉에 매달려 있는 듯하다. 생산직 노동자에게 다음 철봉이란 건 없다. 부속일 뿐이다. 떨어져 나가면 다시 잡기 쉽지 않다. 떨어지지 않으려 각자 스스로의 힘으로만 버티고 있어서 한계점에 도달한 이를 도와줄 수 없어서 더 애처롭다.
소년은 이제 막 철봉을 잡고 올라가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 벌써 겁이 난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눈칫밥으로 살아온 소년은 늘 머리보다 본능이다. 신중하고 빠르게 생존에 대해 다시 고민한다. 깨달음을 되내어 스스로 이치를 만들어 본다.
'육체노동 안에도 계급이 있다'
'육체노동 계급 위에 또 윗 계급이 있다'
사람 위에 사람.
어디까지 가야 만족이 될까. 삶에 만족이란 게 있기나 한 걸까?
노동조합원? 화이트칼라? 아니면 사업가?
25년 후 지금 그 소년은 무엇이 되어 있는가?
그때의 생산직 노동자 소년이 지금 자신에게 물어보고 있다.
너 지금 만족해?
- 노동자 계급(하)에서 이야기를 이어 나갑니다.
*철야근무(밤샘근무) : 야간근무로 여기에서는 심야(21시~08시) 근무를 말함.
*2교대 : 1주는 주간(09시~20시), 1주는 야간(21시~08시)을 주단위로 교대하는 작업 방식
- 25년 전에는 2교대였으나 현재는 3교대 운영으로 전해 들었다.
*빚은 조각 : '눈칫밥', '노동조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