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지탱하는 온도.
첫째 날의 온도.
한낮의 기온이 제법 올라와 연병장은 끊임없이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공 하나에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장병들은 후끈한 아지랑이 물감에 녹아들어 가는 듯하다.
더운 여름 아랑곳 않고 뛰어놀던 건장한 청년들은 정해진 시간이 되자 아이들처럼 왁자지껄 떠들며
막사로 복귀한다.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막사 오른편 언덕 너머로 해님은 오늘의 할 일을 다하고 넘어가기 시작한다.
여름 낮 열기를 식히는 저녁 무렵의 서늘함이 곳곳으로 스며들어 간다.
여름의 낮과 여름의 밤은 늘 그런 온도로 곁을 맴돌고 있다.
늦은 저녁 중대 점호가 끝나고 부대는 저녁 근무조와 취침을 위한 준비로 분주함이 이어진다.
이제 막 하루의 피곤이 눈꺼풀로 집중되어 갈 때 즈음 불침번이 조심스럽게 어깨를 흔든다.
집에서 전화가 왔다고 한다. 군입대 후 부대로 오는 전화는 처음이다.
근육 세포와 뇌 세포는 이미 알고 있었을까. 그날이 온다는 것을.
무의식 아주 깊숙한 곳에 싸매두었던 그 두려움이 스멀거린다.
아직 직접 듣지 않았으니까.
5m, 4m, 3m, 2m, 1m.
행정반 문 앞까지 깨어나려는 의식들을 누르며 걸어간다. 평소 앉아서 업무를 보던 책상은 당직을 설 때 필요한 물품들과 몇 가지 서류 더미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야간 초소 근무 일정표 위에 수화기가 놓여 있다.
수화기를 든다.
"통신보안, 전화받았습니다."
사촌형이다.
이전에 느꼈던 미지의 두려움은 걸려온 전화 상대 하나만으로 찰나의 날숨과 함께 서늘한 공포로 급변한다.
늘 회피했던 그 공포. 두려움. 무서움.
"돌아가셨다. 할머니. 내려올 수 있겠니?"
"아, 그래. 행보관님에게 말해 볼게."
대답은 담대했다. 뜻하지 않은 강인한 군인정신인가 보다.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이내 무너져 내린다. 쏟아진다. 한없이.
주위 사람 눈치를 그렇게나 많이 보며 살던 21살 청년은 주위 사람 아랑곳 하지 않고 쏟아낸다.
끝이 없을 것처럼 또는 끝난 것처럼.
어느 정도 사정을 아는 당직사관 행보관은 무슨 사정인지를 알아차리고, 흐느끼는 어깨를 부여잡으며 중대장실로 끌어다가 넣는다.
울음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면 그날의 울음은 혼이 나간 울음.
몇 시간이 지났을까. 분명 여름인데 몸은 서늘하게 식었다.
살면서 언젠간 겪어야 할 울음이라는 것과 보내드려야 한다는 불안감을 살아온 날 만큼 맘에 품고 있었고,
기어이 끝날 것이라는 두려움을 피해보려 회피하고 도망가려고만 했던 그 울음. 그 온도.
이제 마주해야 할 시간이다.
대상에게 삶의 고통을 주고 또 지켜봤던 이는 그 대상의 서글픈 세월까지도 이제는 오롯이 받아내야 한다.
함께 살아온 날들이 떠오를 땐 왜 그렇게 힘들고 어려웠고 아팠던 기억만 떠오르는 건지.
결국 대상의 죽음 이후에 더욱 또렷해진다.
21살 청년은 그날부로 길을 잃고 붕괴되는 듯했다.
온도변화 마주하기.
슬픔 이겨내기가 강제로 시작되어야 하는 것인가.
몸을 일으킨다. 눈물을 참아본다. 차렷. 경례.
휴가신고 절차를 통해 이겨내기 연습을 해본다.
"신고합니다. 상병....."
못했다. 아직은 아닌가 보다. 이해와 위로를 받고 길을 나선다.
저 멀리 보이는 위병소 앞까지 펼쳐진 시멘트 바닥에서 여름 기온이 서서히 올라오는 게 보인다.
오늘은 아지랑이 물감이 눈 밑동에서 먼저 올라온다.
위병소 옆 주말마다 갔던 작은 교회가 보인다. 의식 없이 교회 계단을 오른다.
아무도 없는 교회 맨 뒷자리에 앉아 눈물과 소망을 함께 쏟아낸다.
"우리 할머니 고생 많이 하셨으니까. 꼭 천국 보내주세요.
제 삶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이제 저 때문에 맘 고생하지 않고 편히 쉬게 해 주세요. 그뿐입니다."
그래도 어려서부터 교회는 오래 다녔으니 이 정도 부탁은 들어주실 거다.
오후 늦게 도착한 빈소는 유교적 형식으로는 보내드릴 준비가 끝나 있었다.
영정 앞에 들어서자 친인척들은 슬픔을 나눠 가지려는 듯 내게 달려와 어깨를 감쌌다.
눈물이 들어갔다.
직접 마주하는 슬픔은 눈물을 들어가게 하는 것인지, 순간적으로 눈을 마비시키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아니면 뇌에 그려진 눈물 회로에 멈춤 기능이 있는 것일까, 또 아니면 애도와 위로의 순기능일까.
눈물이 잘 나지 않았다.
모두가 가지고 있는 각기 다른 대상과의 기억을 회환하고, 때론 애도와 위로의 언어로 장례식장은 채워지고 있었다.
염을 하는 시간.
이승에서 대하는 마지막 몸, 그리고 마지막 인사.
원래부터 작았던 몸은 더 작게 느껴졌다. 오래전 사고로 잃었던 중지 2마디, 약지 1마디로 짧아진 손가락이 보인다. 끝내는 찾지 못하고 이승에 두고 가게 되었다.
몸의 상흔은 결국 그때를 피어 올린다.
그날도 우릴 위해서였다. 기계에 빨려 들어간 손을 뺐을 땐 시뻘건 피밖에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수술 이후 겨울만 되면 손가락이 시리다고 하시며, 그날의 기억으로 몸서리를 치셨다.
어린아이는 그럴 때마다 시리다고 하는 짧아진 손가락을 잡아드렸다. 작은 체온 밖에 드릴 게 없었다.
뼈가 시릴 땐 온도를 올리면 덜 시리다는 걸 누가 말해주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알았다. 항상 본인의 손과는 다르게 차가웠으니까. 차가우면 슬프고, 때론 죽는다는 걸 아니까.
손의 모습 하나만으로 그분의 삶의 여정이 훤하다. 더욱 사무쳐 그분의 세월이 가슴에 아로새겨진다.
저 작은 몸으로 평생을 그렇게 한낱 살아보고자 쉬지 않고 몸을 움직였을 것이다.
힘들어도 일어나고, 아파도 일어나고,
자신의 자식을 보냈던 슬픈 날에도 또 다른 자손을 위해 다시 몸을 일으켰을 것이다.
이제,
고목(古木)이 된 듯 움직임은 멈췄다.
작은 고목은 살아생전 열매를 맺어 새도 오게 하고 씨도 뿌려 모두를 살게 하고 떠난다.
그 작은 고목에 붙어 열매만 먹고 가도, 물 한번 주고 가지 않아도 고목은 말없이 감싸주었던 것이다.
저 작은 고목에 다들 붙어살았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고.
이제,
보내주는 게 미덕 같구나.
다시 한번 간절히 부탁해 본다.
"제 삶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이제 저를 잊고 편히 쉬세요. 정말입니다."
지나는 온도.
슬픔이 단단하고 견고해진다. 지지 않는 한 무너지지 않을 슬픔이다.
그분은 영영 내 곁을 떠나고, 슬픔은 내 곁에 온전히 남는다.
지금부터의 슬픔은 산사람의 몫이다.
평생에 걸쳐 나눠 울면 되니까 당장 울지 않아도 된다.
언젠가 나도 가야 할 길이고 가고 있는 길이다.
그러니 서두르지 않고 기다린다.
울지 못할 그날을 향해 나로 살며 또 기다린다.
날마다 아지랑이 물감을 뿌렸던 여름은 가고 결국 차가운 겨울도 따뜻한 봄도 찾아온다.
지켜진 온도.
유한한 세계를 다하고 가셨던 그 거목(巨木)은,
언제든 죽어도 아무렇지 않을 연약한 존재를 거둬줬고, 세상 비바람을 기꺼이 막아주고 떠났다.
당신이 떠난 자리의 슬픔조차도 살아있는 이들의 삶을 유지하는 온도가 되었다.
세상을 살아가며 평생 가져갈 슬픔 하나쯤 있어도 괜찮다.
슬픔은 크기 보다 온도 같은 것.
한 번에 극복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애환 속에 그리움이라는 형식으로 따스하게도, 서늘하게도 늘 곁에 두는 것이다.
그리움은 삶의 온도를 유지시켜 주는 힘이 될 것이다.
거목(巨木)으로부터.
너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거목이 될 것이고, 그 누군가의 큰 슬픔이 되기도 할 거야.
너무 큰 슬픔은 순간에 다 쏟아내도 되지만 지금처럼 네 평생에 걸쳐 조금씩, 한 번씩 꺼내 울어도 괜찮아.
별거 아니란다. 아기 나무야.
삶에 깊은 눈물 하나쯤 가슴에 남겨 놓으면,
또 다른 슬픔이 다가올 때 그 슬픔에 견주는 인간의 본능적 습성으로 조금은 쉬이 넘어갈 것이다.
삶의 온도는 슬픔으로 지탱되기도 한다.
그러니 아껴 울어도 좋아.
*할머니라는 거목이 삶의 중심에 있습니다.
*빚은 조각 : '나로 살며', '손가락', '눈치', '체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