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않을 노동 ; 둘]

노동자 계급(하)

by Pengtree

정신적 노동에 대한 가치를 고민하다.


남의 돈을 버는 사람들.

20대라는 청년계층을 목전에 둔 소년은 1년이 다 되도록 사무동의 사무실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생산직은 출입이 안 된다고 하는 게 맞겠다. 사회라는 곳, 공동체라는 곳이 여전히 어색하고 무지한 소년에게 공장라인 선배가 말해주길 저 사무동은 엘리트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한다. 그들과 우린 삶의 길이 다르다는 말과 함께. 소위 젊은 시절 공부 좀 하던 친구들이 별도의 집단을 이룬 곳이 바로 사무동 건물이었던 것이다. 소년은 처음으로 엘리트라는 단어, 엘리트 조직이라는 구조를 현실에서 접해본다.

길이 다르다는 건 그들이 향후 얻게 될 사회적 명성과 부, 권력과 같은 것이 우리와는 다르다는 말일게다. 똑같이 남의 돈을 버는 사람이라도 더 얻고 더 부리면서 살면 좋겠지라고 단순히 생각해 본다. 깊이는 알 수 없었다.

동물들의 세계가 계층화되어 있듯이 사람이 먹고사는 세계도 그렇겠지. 최상위 계층과 하위 계층.

날이 저물고 어둑해진 공장동과 사무동의 사잇길 중앙에서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사무동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쳐다본다. 저기서 새어 나오는 불빛도 깊은 밤을 밝히는 공장의 불빛도 모두 남의 돈을 벌고 있다. 소년은 남의 돈을 번다라는 동질감의 실체는 보지 못했지만 흐릿하게나마 사람 사는 세상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서로를 밝히는 빛은 아니지만, 그래도 똑같은 사람 사는 곳이길.


서로는 서로를 모른다. 몰라야 덜 아플 것이다.

그래야 남의 돈을 먹는다는 게 한결 쉬워질 것이다.

사람의 아픔을 모른 체 하는 것이 블루와 화이트의 숙명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날은 늘 아프고 피로한 육체 때문이었는지 책상에 앉아서 돈을 버는 저들이 부러워지는 게 사실이다.

사람들의 육체와 정신을 관리하여 돈을 버는 사람 관리자들.

소년은 막연하게 넘어설 수 없다는 작은 체념으로 공장동의 페인트 냄새를 맡으며 벨트라인으로 입장한다.


정신교육.

입사 이래 처음으로 사내 교육이라는 것을 한다고 한다. 기업들은 개인의 성장을 위해 주기적으로 교육을 해준다고 한다. 늘 철야 근무로 피로감에 절여 있는 소년은 1시간을 책상에만 앉아 있어도 된다는 말에 일단 행복하다. 학교 다닐 때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게 가장 좋은 시절이야라고 말하던 어른들의 훈계가 정확하게 이해된다.

교육장은 흰색 화이트보드를 바라보는 일자형 접이식 책상이 빼곡히 놓여 있다. 생산직 직원들은 많고 한 번에 많은 이를 교육시키고 현장 투입을 서둘러야 오늘의 생산량을 맞출 수 있기에 이런 교육장이 생기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생산은 시간 단위, 일주일 단위, 한 달 단위의 목표량이 있으니 하루의 한 시간이 중요할 터였다.

50대 초반의 깔끔한 정장차림의 강사가 들어온다. 키도 훤칠하고 매서운 눈매를 가진 분이다.

왠지 야단을 잘 치실 것 같은 고등학교 학생 주임이 떠오른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소년의 눈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정장 상의를 벗으며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쭈욱 쳐다볼 땐 눈빛이 더욱 매서워 보인다. 위축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회사가 데리고 온 사람, 사회적으로나 상대적으로나 보이는 외면의 아우라는 스스로를 낮추며 사는 이들에게 일단 높아 보이는 초면심리 일 것이다. 흐름이 바뀐 공기는 본능적으로 고요한 정적과 경계 상태를 만들어 낸다.

이윽고 말문을 연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00 회사 생산직 출신 000상무 라고 합니다."

굵직하고 당찬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강의실 깊숙이 꽂혔다. 분명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말투다.

'생산직'이라는 첫마디 소개는 공감을 끌어내려는 의도였을지 몰라도 청중의 집중력을 올리기엔 충분했다.

생산직이 상무? 우리가 아는 생산직의 직함은 000 씨, 000 반장이 끝인데 뭐 하는 분이지라는 호기심이 생긴다.

"저는 00 회사 생산공장에 있을 때, 생산 왕이었습니다. 하루하루 목표 생산량을 갈아 치웠던 전설적인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일단 생산 작업라인에 서면 전쟁을 치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도 무조건 최고 생산량을 찍겠다는 각오로 매일을 보냈었습니다."

그 시절 본인의 작업 동작을 아직도 기억하는 듯 과장된 몸짓으로 허공에 연신 손짓, 발짓을 한다.

청중들은 기본적인 말의 재치와 때론 우스꽝스러운 동작들과 그의 공감력에 반응했다. 마치 1인 다역 공연을 보는 듯 현란했다. 본인의 성공 신화는 강의 후반부에 절정에 다다른다.

"그때 그 기회가 왔을 때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00 회사의 회장님 눈에 들었다고 한다. 이후 본사로 발령받고 회사에서는 MBA 교육까지 보내주며 승승장구를 했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그의 마무리 멘트가 그날의 가장 핵심이었을 것이다.

"여러분들. 지금 하시는 일에 최선을 다하세요. 죽기 살기로 해야 합니다."

꽉 채운 1시간의 교육이 끝난다. 결국 시작은 생산직이었지만 출세는 사무직이었다는 것인가. 아니면 생산직으로도 일일 생산량을 초과하며 일하면 언젠가 출세할 수 있다는 것인가. 최선을 다하라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이룬다는 것은 노력이라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 다만, 노동 안에서 경쟁을 통해 상대를 이기고 스스로 특별해 지라는 말일 것이다.


불만 없는 생산량 최대화.

경쟁은 있고 공동체는 없는 말들.


19살 소년은 비교적 이른 나이에 세상의 구석들을 지속적으로 깨치며, 그날의 정신교육을 기점으로 화이트칼라가 돼 보기로 결심한다. 그리곤 그다음 해에 대학교를 진학한다.

늘 스스로의 판단과 결정으로 살아온 소년은 인생의 길이에 맞춰 조그마한 가능성에 투자하기로 한다. 생존에 대한 본능은 결국 움직이게 만든다.


변화는 곧 생존이기도 했다.

또한 오르고 싶었고, 올라서고 싶었다.


하얀색 교육.

치열했던 경쟁을 겪으며 공채 취업 시장을 뚫어내고 화이트칼라의 모양새로 사회라는 곳에 다시 발을 내딛는다. 왠지 모를 뿌듯함과 엘리트가 될 것 같은 기대감은 열정과 자만심의 사이를 넘나 든다.

여기저기 선배들의 환대가 이어지고, 밤마다 술과 고기로 축제의 장이 펼쳐지는 듯하다.

더욱 어깨에 힘을 실어주는 6개월의 그룹 차원의 장기 교육이 곧 시작된다. 그 사이 부서별 배치를 통해 실무감각을 익힐 때까지 본사와 현장을 오가며 관리자의 길, 오래전 공장 선배가 말하던 '다른 길'에 들어선다.

현장 노동자들은 이제 갓 들어온 신입들에게 조차 어렵게 대한다. 한참 어린 친구들에게 깍듯이 존대한다.

스스로 체감되는 변화들은 다른 삶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기에 충분하다.


집체 교육은 고급 리조트에서 주로 진행되었고 수시로 본사 대회의실 등에서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진다. 대부분 넓고 쾌적한 곳에서 교육이 이뤄졌고 핵심 계열사 사업장 방문 시에는 대표가 직접 미팅에 참석하며 소정의 선물과 함께 미래 관리자들을 독려한다. 교육의 피날레는 리조트에 계열사 임원진이 참석하고 양주와 진수성찬으로 환락에 가까운 파티로 마무리된다.


소년은 이것이 사람을 대하는 진정성 있는 교육이라고 믿게 되었고,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왜 올라서야 하는지, 왜 임원이 되어야 하는지, 왜 기업에 충성하고 붙어 있어야 하는지가 삶의 정답인 마냥 마음에 채운다. 과거 삶에서 어렵게 채웠던 많은 것들을 하얗게 지우고 미래에 무엇을 그릴지만 고민하게 된다.


과거 육체적인 고통을 통해 배웠던 삶의 작은 진리들,

좁은 교육장에서 생산에 차질이 빚어 질세라 속전속결로 정신무장을 시키던 그 교육은,

성공한 계층들의 달콤한 우대로 잊힌다.

그때를 버린다.


과거를 지워주는 하얀색 교육,

화이트칼라로 만드는 찬란한 교육이다.


추상(想)*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함

역시나 직접적인 경험은 현실을 즉시 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처음 배치된 부서는 사무동과 현장동이 분리된 곳이다. 현장동은 현장을 관리하기 쉽게 층마다 관리자를 한 명씩 배치한다. 현장 층의 관리자들의 나이가 심상치 않다. 모두가 40대 중후반에서 50대의 중년층이다. 수년 전에 원가 절감을 위한 합병이 있었고 그때 합병한 회사로 넘어온 사람과 끝까지 투쟁한 사람들로 나눠졌다고 한다. 현장 층에 있는 관리자들이 넘어온 사람들이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사무동의 관리자로서, 하얀색 교육을 받은 자로서 존경하는 사무동 선배들의 가르침만 받들었다. 어느 날엔 현장과의 접촉에 거리를 두라고 지시받는다.


친해진 현장 관리자와의 회식자리에서 자세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수년 전 어느 날 현장 정규직 직원들에게 하나의 통보가 날아간다. 00 기업에 운영사업 부분을 넘기기로 했고 모든 현장 정규직들과 기타 운영 자산들은 00 기업이 모든 걸 승계한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에 모든 사람은 투쟁을 했다고 한다. 수십 년을 함께한 동료들이 있으니 무서울 게 없었다고 한다. 몇 개월 후 지쳐버린 사람들, 가정에 당장 돈이 필요한 사람들, 변절 유도에 넘어간 사람들 등 조금씩 기업의 의도대로 진행되어 갔다고 한다.

기업은 이미 시위 기간 동안 동영상과 사진 등으로 개개인의 행동 평가를 마무리하고, 특징적인 강성자들을 가려내어 사전에 도려내는 작업을 진행한다. 그때 필요한 게 관리자의 역량이었으리라.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을 때, 시위대 앞에 선 관리자는 바닥에 흰색 줄을 길게 긋고 말한다.

"오늘이 마지막 날입니다.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드렸다고 생각하고 지금부터 최종 의사결정을 부탁드리겠습니다. 하얀색 선을 기준으로 좌측 00 기업, 우측 00 협력사 혹은 퇴직 협의 구역입니다."

그렇게 사람은 00 기업, 협력사, 퇴직자로 최종 정리가 된다.


법적인 문제는 없다.

그들에게 아픔은 있다.


오늘은 운영 효율화를 위해 현장을 돌며 이것저것 분석을 하는 날이다. 자동화 설비가 있는 층 사무실에서 고주임님과 이야기를 나눈다. 마른 몸에 굵은 이마 주름이 특징인 지긋한 선배님이다. 모든 분이 그렇지만 유독 선하시다. 악의가 전혀 없다.

"설비 합류 구간에 센서가 하나 더 달려야 해. 그 구간이 항상 박스가 밀려."

조용한 사무실 안에서 둘이 이야기하는데 목소리가 크시다. 나이 드셔서 그러시겠지 속으로 생각한다. 시간이 흐르고 현장 모든 분들과 농담을 주고받을 만큼 가까워졌을 때 고주임님의 사연을 알게 된다. 20년 전 도입한 설비 때문에 청각에 문제가 생겨 소리가 잘 안들려서 목소리가 커졌다는.

"그때는 안전수칙 같은 게 없었으니 귀마개 그런 게 있었나. 그냥 귀가 멀어 가는 줄도 모르고 설비 옆에서 일했지 뭐"


'김조장님'

하얗게 잊고 있었던 그때가 떠오른다.

수레바퀴 같다. 거대한 수레는 앞으로 나아가는데, 우린 계속 한 축에서 일생을 바쳐 다 함께 같은 곳을 맴돌고 있다.

노동자.

시간은 흘렀지만 사는 건 그대로였다.

또 그렇게 기억은 돌아왔고 해질 무렵 현장과 사무동 사잇길에 부는 바람에 그때의 본능도 다시 돌아옴을 느낀다.


노동자 소년의 추상(追想)에서 스스로 공간과 시간만 바꿔서 온 그때의 19살 소년이 보인다.


하얀 자들의 죽음.

좋은 학교에 비교적 젊은 나이에 리더를 꿰찬 옆 팀장님.

늘 담배를 물고 살며 웃는 모습을 보기 쉽지 않았던 그 팀장님. 출근은 늘 남보다 일찍 하고 식사를 거르면서까지 업무에 집중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느 날부터 3개월 휴직을 했다고 한다.

타 지역 여행 중에 회사에서 전화가 온다.

'00 팀장님, 혈액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건장한 체구와 큰 키에 걸맞은 우렁찬 목소리로 항상 자신감 넘쳐 보였던 또 다른 팀장님.

회사에 싫은 소리도 할 줄 알았던 그 팀장님. 나중엔 좌천으로 지방으로 발령을 받아 그때 스트레스가 극심했을까. 현장에서 다루는 제품이 발암 물질이라며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본사에 요청했었다고 건너 건너 들었었는데. 그 때문이었을까. 1년 가까이 휴직하고 산속에서 보낸 후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복직했다고 들었는데, 몇 개월 후 암이 재발하여 영면하셨단다.


또한,

오래전 화이트칼라의 성공 신화였던 계열사 대표들의 암소식, 관리자를 꿈꾸며 같은 하얀 교육을 받은 신입사원의 현장 투어 중 불의의 사고, 그리고 현장 한직에서 화재, 끼임 등으로 돌아가신 분들까지.


모두 정년 60세가 안된 사람들이다.

화이트칼라가 되고 겪은 몇 가지의 이야기일 뿐이다.


블루와 화이트는,

애초에 양분(兩分)의 대상이 아니다.

되어서도 안된다.

모두가 고통받는 노동자일 뿐.


'세상은 보통의 사람이 사는 세상이고,

사람은 별다를 것 없이 나고 자라고 사라지는 것이며,

그때를 모두가 기억하고 추억할 뿐이다'


지금 만족하며 살고 있냐고 물었던 25년 전 소년의 질문에 답해본다.

스쳐 지나간 모든 바람들은 아픔이었고, 슬픔이었단다.

그래서 아직도 난 방황하고 있고 늘 충돌하고 있고.

쓸모 있는 사람도, 만족하는 사람도 되기 위해 오늘을 또 기어이 살아내고 있다고.

또다시 잠자던 본능이 찾아와 다른 곳으로 이끈다면,

그땐 좀 더 성숙하게 노동하겠지.


그렇게

아프지 않은 노동은 여전히 없었다.




블루칼라든 화이트칼라든 우린 건강한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위험한 일은 안 한다고 하고, 과중한 업무는 과감히 못한다고 하라.

아프고 피곤하면 쉬는 것 밖에 없다.

우린 모두 아프고 다칠 수 있는 노동자 계급이다.


슬픔은 당신을 바라보던 남은 이에게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당신을 애도하게 하지 말라. 부디.



*빚은 조각 : '생존에 대한 본능', '체념', '충분히 생각할 시간'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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