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민 ; 마음이 번거롭고 답답하여 괴로워함.
번민 하나. 스틸러(Stealer)
공장까지 가는 버스 노선이 마땅치 않다. 걸어서 출퇴근을 한다. 공장 검문소 통과까지 40분이 걸린다.
가는 길 중간 어디부터는 인도가 없어서 다양한 차들과 동행하는 수준으로 걸어가야 하는 코스도 있다.
트럭의 회색 빛 연기가 콧속으로 파고든다.
40분이라는 시간과 위험을 조금이라도 줄여보자는 심산으로 자전거를 사러 간다. 직장생활 첫 이동수단 구매로 자전거를 선택한다. 선택할 수밖에 없는 궁핍한 생활이다.
21단의 중고 자전거. 투자 효과를 보려면 몇 년은 써야 할 것이다.
하루하루 길을 오가며 돌부리 하나, 요철 하나, 길의 생김새, 위험 구간, 빨리 가는 길, 안전한 보관 장소 등을 자연스럽게 체득해 간다.
길은 참 사람 사는 세상과 닮았다. 가고 오고 갈수록 앎에서 익숙함으로 바뀌어 간다.
길은 그렇게 사람처럼, 삶처럼 점점 자신에게 무르익어 간다.
또한 우리가 오고 간 길은 세월과 함께 변하고 사라진다.
그러는 사이 남의 길이 나의 길이 된다.
자전거는 늘 공장 아래 담벼락 가로등 기둥에 자물쇠로 채워진 상태였다.
아침 햇살을 맞으며 야간조를 마치고 빨리 집에 들어가 씻고 잘 생각만으로 골목 모퉁이를 돌았을 때, 두 눈을 의심했다. 너무 이상해 뇌가 착각하는 듯했다.
자전거가 사라졌다.
길에 대한 익숙함이 화근이었을까.
깊은 탄식과 함께 현실을 자각하는 데에는 몇 분이 걸리지 않았다. 한동안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아침 햇살에 한 참을 의미 없이 주위를 두리번 거린다. 이미 사라진 자전거의 영(靈)이라도 보듯이.
자전거를 뺏어간다. 시간을 뺏어간다.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가 나의 것이라고는 몇 안 되는 자산과 소중히 아꼈던 시간을 가져가고 만다.
체념한다. 상실감으로 다시 걷는다.
다시 40분.
저녁에 출근하려면 분을 삭이고 눈을 감고 자야 한다. 그래야 육체가 밤샘 노동을 버틸 수 있다.
요동치는 마음을 잠재워야 한다.
잊어야 한다.
남의 것과 남의 시간을 뺏는 스틸러(Stealer)는 항상 주위에 존재한다.
여전히.
번민 둘. CEO(최고 경영 책임자)
깨끗한 안경 렌즈가 빛을 받을 때마다 검보랏빛으로 번질거리고 그 너머에 총기 있는 눈이 보인다. 세련미 있는 헤어스타일과 캐주얼 콤비를 즐겨 입는 듯 몸에 어색함 없이 들어맞는다.
중년의 남성은 약간 빠른 템포의 안정감 있는 말투로 인사를 건넨다.
"이 회장님에게 이야기 들었습니다. 반가워요."
짧은 인사와 함께 바로 점심을 먹자고 한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천 단위의 직원을 거느리던 어느 기업의 CEO였던 중년 남성은 지금껏 봐온 CEO들 같지 않게 언행이 온순하고 정감이 있다.
은퇴한 이후 힘이 빠져서 인지, 개인적인 네트워크로 만나는 편한 자리라서 그런 건지 모를 일이다.
만남은 직장생활에 대한 조언과 네트워킹이 주된 목적이었고, 첫 만남에서 이분의 젊은 날과 최근까지의 삶을 듣게 된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학을 졸업하고, 그룹 공채로 대기업에 입사한다. 입사 후에도 총애를 받으며 동기들과 함께, 기업과 함께 성장한다. 물론 다수의 직장인들처럼 힘들 때마다 이직이나 다른 길을 모색해 보기도 했단다. 하지만 늘 버티는 것으로 결론지어지곤 했다고 한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임원이 되고 상대적으로 오랜 기간 임원생활을 하게 된다. 당시의 선배나 동기들 대부분 그룹의 중심인물들이 되었다고 한다.
"버티세요. 회사 생활은 늘 장기적으로 생각하고, 너무 빠르게도 너무 느리게도 가지만 않으면 돼요."
버티라는 말에 최고 경영 책임자도 결국 직장인이었음을 느끼게 만든다. 그럼에도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꿈도 꾸지 못한다는 임원과 대표자라는 타이틀을 가져 봤으니 동질감 보다 이질적 감성이 먼저 드는 게 속마음이었다.
시간은 흘러 더 높고 더 빠르게 비상(飛上)했다고 한다. 시류는 적절한 바람의 때를 만나 날갯짓 한 번에도 산을 넘을 수 있게 하였고, 그렇게 CEO가 되었다고 한다. CEO의 책임감으로 인해 중압감은 더 심해졌고, 경영이라는 숙명적으로 발생하는 마찰들과 나의 것이 아닌 남의 장사라는 근본적인 문제는 경영자의 판단보다 더 큰 힘이 위에서 늘 작용했다고 한다.
결국 그 장사의 진짜 주인은 장사의 종료를 명하고, 동시에 쉰 후반의 CEO를 실직시켜 하루아침에 비노동자의 삶으로 만들어 준다. 30여 년 세월의 종지부는 불과 며칠이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시류에 불었던 그 바람은 이제 앞에서 분다.
최고 책임 경영자는 아니, 사람은 바람을 버티지 못하고 수직하강 한다.
전직 CEO는 그날의 기억을 이제는 담담하게 전한다.
"절벽에서 누가 나를 밀어버리는 느낌. 그 정도의 스트레스였어요. 그날 이후에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니기도 했어요."
전직 CEO 모임이 있다고 한다. 그 모임의 대다수는 삶의 비참함을 뒤늦게 맞아보고 그로 인해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니거나 질병을 앓았다고 한다.
모두 60세 전후에 벌어진 일이다.
직장인 기준으로 물질적인 풍요는 더 나았지만, 정서적 낙폭은 훨씬 크다고 한다. 직장생활의 운도 좋았겠지만 누구보다 치열했고, 더 갈아 넣었고, 어떨 땐 남을 밟기도, 개인의 주체성을 버리고 누군가를 위해서만 살기도 하며 그렇게 버텼다고 한다.
이후 몇 년 동안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보지만,
친했던 회사 동기도 결국 남이었다는 사실과
몸에는 암세포가 자라고 있었다는 사실과
55세 이후의 노동자의 가치는 시장에서 급격하게 떨어진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번민 셋. 어느 부장님의 은퇴
나이 54세. 부장님은 끝까지 버텼다. 그간의 직장생활 내공으로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회사는 뭐든지 잘한다. 누군가를 보내는 일도.
늦은 나이에 계급장이 벗겨진 그는 불꽃을 살리려 애를 쓴다. 부속은 일정 시점이 되면 본인의 이전 노동의 가치를 넘을 수 없는 것인가. 모든 게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나름 귀동냥 네트워크가 있다. 돈벌이가 괜찮다는 소리를 듣고 소형화물 기사를 해본다. 물건만 실어 날라주면 되는 것 아닌가. 차로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경치도 보고, 아직 50대라 체력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무직 관리자는 그렇게 계급장을 떼고 육체노동을 시작한다.
오늘 첫 거래(오더)를 받고 고객의 집으로 출발한다. 수입가구 하나를 차에 싣고 애플리케이션으로 받은 주소지로 가져다주면 완료되는 단순한 작업이다. 무게가 좀 있다고 하니 인부 한 명도 섭외해서 간다.
아이를 키우는 집이었고 집주인이 안방으로 안내한다.
일단 이리저리 살피고 큰 특이사항이 보이지 않아 곧바로 작업에 들어간다.
둘이서 가구의 밑을 잡고 요령 없이 힘을 쓰는데 가구가 들리지 않는다.
'읏차' 소리가 힘내는 소리인지 고통의 신음소리인지 구분이 가질 않는다.
첫 난관에 부딪힌다.
보다 못한 집주인아저씨가 의구심의 눈빛을 보내며 함께 들어준다. 흠집이 나면 안 되는 가구라 부딪치지 않게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이제 현관만 지나면 된다.
역시 인생은 도전을 가로막으려는 안 보이는 힘이 있는 듯하다.
이번엔 현관문에 가구가 걸린다. 차에 실리는 물건 크기만 계산한 게 잘못이다. 경험이 없어 보통 아파트문의 폭을 고려할 생각조차 못했다. 문 앞에서 시간은 속절없이 또 흘러간다. 이럴 경우에는 분해를 해야 한다고 경력자의 조언을 얻어 들었다. 분해, 조립 기술이 또 없다. 단순하게 힘만 쓰면 되는 일인 줄 알았다.
세상에 일하는 모든 이는 그들만의 노하우가 있었던 것이다. 단순한 건 잘 없다.
10년 치 땀을 흘린 듯하다. 사무실에서는 더운 여름에 점심 먹을 때나 흘릴 땀이었다.
그렇게 2시간짜리로 갔던 일이 4시간이 되어 끝난다.
54세의 화물기사님은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일로 다시 인생 후반부 불씨를 살릴 수 있을까?
시름이 깊어질수록 계급장 시절이 더욱 그리워진다.
그 계급은 이제 사라졌다. 어디에서도 달아 주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무(無)로 돌아와서야 삶의 주체가 되었다.
스스로를 돌아본다.
건강이라도 있어서 다행이었다.
*빚은 조각 : '스틸러', '나의 길', '체념', '무(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