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리는 사람들
"원래 있던 조직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어디서 용기가 났던 걸까? 아니 왜 그랬을까?
또 예전 반골기질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것일까.
(본문 中)
퍽!
넘어뜨리고, 누르고, 조른다.
주위에서 때아닌 응원전이 벌어진다.
'00이 이겨라, 00이 이겨라'
나를 응원하는 이는 없다.
악다구니를 쓰며 다시 일어나 싸운다. 너무 힘겹다.
상대의 체구와 힘은 쉽게 넘길 수 없다는 것을 몇 번이고 부딪히고 맞아 본 후에야 깨닫게 된다.
'이건 이길 수 없는 싸움이야'
도망갈 수도 없는 케이지에 갇혀 서로를 어디라도 물어뜯어야 끝나는 흡사 투견장과 비슷하다.
그만. 그만. 멈추고 싶어.
넘어지고 밟힐 때마다 수치심이 밀려와.
목을 조르며 압도적인 힘으로 내 몸을 가지고 놀아.
누가 구해줘.
도와줘.
땀과 눈물이 흐른다.
패자 옆에는 누구도 오지 않는다. 승리자 옆에 모두들 붙어 환호한다. 자기들이 승리한 것 마냥.
승리자 주위를 둘러싸며 패배자를 바라보는 눈빛.
원치 않은 싸움으로 받은 경멸과 모멸감.
그런 나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눈빛.
이 싸움의 무대를 만든 최대 권력자.
상대도, 관중도 모두 이 권력자의 말 한마디면 멈추기도, 뛰기도, 벌도 달게 받아야 하는 힘 있는 자.
이 교실의 책임자.
초등학교 5학년 담임선생님.
싸움의 상대는 친한 동네 친구다.
그날 점심시간 운동장에서 공 놀이를 하다 일어난 친구와의 사소한 다툼은 담임선생님 귀에 들어간다. 별거 아닌 흔한 일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 담임선생님은 반친구 모두를 교실로 불러 모았다. 초등학생의 사소한 다툼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교탁 앞에 나란히 선 두 친구. 서로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를 시킬 거라는 다음 그림이 그려진다.
선생님이 반 친구들에게 명령한다.
"모두 책상과 의자를 뒤로 밀어."
영문을 모르는 반 친구들은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책상과 의자를 뒤쪽 벽에 밀어붙인다. 교탁은 선생님이 직접 벽에 밀어붙여 놓는다. 이제 널찍한 공간에는 어린이 2명만 남아있다.
"이제 둘이 싸워."
두 사람은 선생님과 서로를 번갈아 쳐다보며 어리둥절한다.
싸우고 싶지 않다. 왜 싸우지? 친구들 앞에서?
담임선생님은 무서운 표정으로 금방이라도 달려들듯 소리친다.
"싸우라고!"
시골학교라서 심심하셨을까. 따분하셨을까. 지루하셨을까.
도대체 왜 그러셨을까.
늘 높은 분이라 여기고 두렵기도, 존경하기도 했던 선생님. 보통 그 시절 선생님이라는 위치,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을 사회에서 보는 시선은 도덕적이고 양심 있는 교양인이다. 몸이 바빠 아이의 교육을 전적으로 선생님 한분에게 맡기는 시골의 부모들은 특히나 선생님이란 존재 앞에서는 작아지기 마련이었고 신뢰, 믿음 같은 것은 사치에 가까웠다.
친구는 두려운 권력의 힘에 의해 의지와 상관없이 오랜 동네 친구를 때렸고, 다시 같은 공간과 시간 속에 살지만 승자와 패자, 때린 자의 죄책감과 폭행당한 자의 수치심이 늘 둘을 감싼다. 버거운 감정의 흔적은 두 어린이에게만 남게 된다. 권력자는 그들의 흔적에서 저 멀리 쉽게 달아나 버린다.
무한한 신뢰 기반은 친절함의 탈 앞에서 무신경함이 되기도, 설마라는 생각을 멈추게도 한다. 그렇게 숨어있는 권력의 횡포가 가까이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한다. 권력의 숨은 횡포는 약한 자가 타깃이 될 확률이 높다. 조정과 이용이 쉽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사회적 신뢰와 믿음의 연속성을 확보하며 본인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운 내면의 본능을 쉽게 충족시킬 수 있는 약자에 대한 횡포.
권력의 힘이 부끄러움을 잃었을 땐 숨겨진 괴물의 본능이 꿈틀거리며 기어 나온다.
그렇게 누군가를 때려 아프게 한다.
평온하고 따뜻했던 시골의 어느 학교에서
한 어린이는
모두가 믿는 교양인의 실체를 보았고,
승자와 패자를 바라보는 군중의 심리를 느꼈으며,
그리고
동물원 케이지 안에서 수치심을 평생 느끼고 살아갈,
빨간 엉덩이의 원숭이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탁!
회의실 탁자를 치며 반협박, 반회유를 한다.
"제가 이 본부 전체 인사, 평가 다 할 수 있어요. 아세요? 기회 드리는 겁니다. 제 밑에서 일하세요. 00 팀장님 차기 팀장으로 00 차장님 생각하고 있습니다." 팀장직을 수행한 지 2개월이 된 차세대 젊은 리더라는 친구의 호기에 그보다 더 많은 직장 연륜을 가진 차장은 속으로 혀를 찬다. 버젓이 일 잘하고 있는 00 팀장을 보내버리겠다는 건가? 본부 총괄임원의 비호 아래 규정상 권한이 없는 이가 해당 권한을 사용할 수 있다는 도 넘는 발언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차장이다. 회사는 이러한 횡포를 모르는 것인지, 친절한 탈을 쓴 자에게 속고 있는 것인지, 차기 권력자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고 있는 것인지.
차장은 지금껏 직장에서 살아온 날이 헛된 날들로 채워진 것이 아닐까라는 자괴감마저 든다.
다시 한번 차장은 단호하게 의사를 전달한다.
"아니요. 원래 있던 팀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맞을 준비.
1년 여의 대규모 TF프로젝트가 성공리에 마무리되며 자칭 권력자인 그는 해당 프로젝트 이후 팀장이 되었고, 그를 따르던 이들도 한 단계씩 올라서게 된다. 나름 사람 보는 눈을 가진 차장은 프로젝트 기간 동안 그들의 행태를 보며 이미 그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차장은 자신이 가진 모든 역량을 바쳐 그들의 배를 불려주는데 일조했었다. 그들이 쉽게 조정하고 이용할 수 있는 약자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번에는 그런 상황을 스스로 끊어 내고자 했다.
아직도 차장에게 더 가져갈 것이 남아 있었던 그들이었다.
끈질기게 잡으려 했고, 잡히지 않았다.
차장은 이제 다가올 권력자의 힘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우선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일단 살아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승자와 군중은 어리석게 볼 것이다.
그 시선, 그 눈빛.
앞으로 있을 수치심 또는 모멸감을 받아내야 한다.
권력자는 권세를 부릴 것이다. 낙오라는 것. 조직생활의 고통이라는 것. 권력자 말을 거스르는 자의 말로를 보여주고자 할 것이다. 직감과 경험으로 차장은 알고 있다. 알면서도 그 길을 가지 않는 것은. 반대로 그 길을 따라가면 어떤 영광이 있는지도 뻔히 알면서도 따르지 않았던 이유는.
'사람을 본다'
그 사람 뒤의 힘을 보지 않고 사람의 본질을 본다.
차장의 오랜 신념이다.
권력자의 힘이 미치는 영향력으로 욕망을 채울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기대조차 차장은 스스로 잠재워 버리고 그의 제안을 거부한다.
숨겨두었던 삐뚤어진 욕망이 권력을 만나 보잘것없는 것들에 고통을 주며, 쥐어짠 고통에서 나오는 단물로 욕망을 채우는 그들을 보았다.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쉬어감 없이 끝없이 채우기만 하는 그들의 결핍을 보았다.
결핍자들.
따르면 성공할지도 모른다. 이끌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 바쳐야 할 것이다. 그들의 모자란 결핍을 채울 무언가를.
그들을 위해 누군가를 때리기도 해야 할 것이다.
때려잡아서라도 채워줘야 할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 나의 친구처럼. 두려움 때문에. 그들의 시선 때문에.
몸도 마음도 단단해진 차장님은,
무력했던 그날의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가 이제는 아니다.
숲에 사는 나무들은 자기가 더 성장하기 위해 다른 나무를 죽이지 않는다.
뿌리로, 잎으로, 가지로 옆에 자라는 나무를 도와준다.
심지어 잘린 그루터기가 있으면 버려두지 않고 끝까지 보살피기도 한다.
그래서 숲은 늘 함께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살기를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II. [꿈틀]_때리는 사람들'은 다음 주에도 이어집니다.
*빚은 조각 : '사람을 본다', '반골기질',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