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리는 사람들
삶에서 주류였던 적은 없었다.
간간히 약자를 위해 내던 목소리는 스스로 주류에서 점점 더 멀어지게 만든다.
동병상련.
원래의 조직으로 돌아온 차장은 팀장과 미팅을 한다.
"그동안 고생했어요. 앞으로 팀 내 선임으로서 후배들 잘 이끌어 주세요."
팀장은 알고 있을까. 당신의 후배가 거리낌 없이 당신의 자리를 밀어내고 자기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따르는 이로 채우려 한다는 것을.
인간 세상에서 언어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것이기에 차장은 말에 대한 무게를 먼저 생각하고 알고 있는 사실을 전달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차피 그렇게 할 것이기도 했고, 차장 또한 비슷한 상황으로 빠져들 것을 알기에.
둘은 조용히 흐르는 강에 앉아 있다.
오리도 살고 물고기도 살고 철새들도 오고 가는 그런 어우러지는 강에.
팀장도 차장도 직장생활 보다 더 오랜 곡절의 인생을 살아왔기에 평온한 삶의 가치를 잘 안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강에 바람이 부는지, 강에 누가 누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렇게 묵묵히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안다.
예고편.
사업부의 총괄 임원 밑에서 성장한 그는 프로젝트 전부터 소문이 파다했었다. 어리지만 욕심이 많다는 이야기와 보직은 없지만 작은 총괄이라고 불릴 정도로 권력자의 비호를 받아 사람들을 좌지우지한다는 소문.
차장은 생각해 보니 한 두해 전 그 친구와의 스치는 인연이 있었다.
화상으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고, 회의 주제가 총괄 임원이 주도하는 과제였던 것 같다. 참석자 대부분 그 친구의 선배들이었고 직급이 더 높은 사람도 있었다. 거침없는 그의 윽박지름에 솔직히 다른 사업부였지만 놀라긴 했다. 회의가 끝나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그 친구였다.
"000 차장님. 회의 시간에 말했던 것들은 차장님에게 말한 게 아닙니다. 다 회사를 위해서 모인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차장님이 이해 좀 부탁드립니다. 미안합니다."
다른 조직 사람이라 소문이 날까 입단속을 하는 것이었으리라 짐작한다.
'참. 일하는 방식도 여러 가지구나....'
그때는 이렇게 밀접하게 만날지 예상하지 못한다.
안 만나기를 무의식 중에 바랬는지도 모른다.
본편.
대다수의 부서는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결과물을 실행할 조직들로 바뀐다.
본부 총괄 임원은 이제 실체 있는 결과를 내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 안 되는 것도 되게 만들고 없는 것도 있는 것처럼 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 인물이란 것은 서로서로 닮은 이를 써야 탈 날 일이 없다.
설득할 줄 아는 사람은 설득하여 일하는 사람이 필요하고, 조용한 사람은 조용히 넘어갈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번에는 실적을 짜낼 줄 아는 인물이 필요하다. 그렇게 젊은 그 팀장과 따르는 무리들은 검열관이 되어 사사건건 감시와 검토를 하고 현장을 쥐어짜는 역할을 한다.
일 처리에 계층이 생긴다. 부류가 생긴다.
새들도 무리 짓고, 그 무리 간 싸우고 보금자리를 차지한단다.
이긴 무리는 진 무리를 배척한다.
모두가 자연에서 배우고 진화했으리라.
이제 권력자는 자신을 따르지 않는 이를 돕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힘을 발휘하여 본인 내면의 숨겨진 본능을 숨기지 않는다. 조직 안에서의 약자에게는 쉽게 표출하고 그래도 된다고 생각한다. 권력의 맛은 괴롭힘에도 있을 것이고, 적은 힘으로 많은 것을 쉽게 얻는 맛도 있을 것이다.
쉽게 괴롭히고, 쉽게 가져간다. 권력의 틀 안으로 들어가 이제 그것이 인생을 옥죄는 덫인지, 자신의 삶을 구원하는 힘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결과는 권력을 부리는 자신에게 달려 있으리라.
(1)
관리라는 명목하에 상부 보고에 관여하여 딴지를 건다. 실적을 가로채 보고하기도 한다. 타고났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게 아닌가. 어떨 땐 떼쓰는 어린아이 같기도 하다.
오늘은 차장의 차례다.
몇몇 팀원들을 데리고 한 달 동안 지방 현장에 상주하며 만든 최종 결과물에 대해 그는 회의를 요청한다. 정확하게 불필요한 회의며, 불합리한 보고 체계다. 우린 서로 실행 부서이자 협업 부서일 뿐이다.
"이거 실적 정확한 건가요? 이걸 현장에서 인정했다고? 야, 이거 현장에 확인해 봐."
그는 본인의 팀원에게 명령한다. 팀원은 즉각 현장으로 전화를 걸어 따지듯이 물었고 영문도 모르던 현장 관리자는 다행스럽게도 긍정의 말을 해주었다.
"현장에서 인정하는 결과랍니다. 열심히 잘하셨다고 합니다."
"차장님 수고하셨고, 잘하셨네요." 차장님 보다 직급이 한참 아래인 친구의 갑작스러운 평가와 칭찬에 몸 둘 바를 몰라야 할 상황인 건가. 차오르는 흥분을 표출하려다 차장은 숨 한번 내쉬고. 참아 낸다.
실행 실적에 이상 없음을 확인했음에도 또 한 번 면박을 준다.
"000 차장님 현장에서 그렇다니 넘어 가지만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아요. 사전에 저에게 공유하고 설명해 주세요. 총괄님에게 선보고 하지 말고 저랑 먼저 이야기하시죠. 이런 식으로 하시면 같이 일 못해요."
남의 결과물에 굴욕을 안겨주는 방법에 이렇게 쉬운 언어와 말투가 있었는지 새삼 놀랍다.
고압적인 태도와 상대를 깎아내리는 기술은 어디서 배웠을까? 그의 사회생활 의미는 무엇일까? 무한한 경쟁에서 이기는 것? 또한 어디까지 올라가고 싶은 걸까?
과거 화상회의에서 본인 선배들에게 윽박지르던 그 행동을 이제 차장에게 하고 있다.
하지만 그때처럼 별도의 사과란 건 이젠 그에게 없는 듯하다.
이제 같은 결과물을 내야 하는 우리의 관계에서 누르고, 조르고, 때려 본인들의 것으로 취할 것이다. 회사의 성장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으로 개인의 욕심을 채울 것이다.
그의 뒤에는 현재의 최대 권력자가 버티고 있다. 팀 하나, 개인 한 명 없애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2)
000 사업부 상무에게 본인의 사업장 개선 결과보고를 브리핑하기 위해 차장과 팀원은 아침부터 분주하다. 팀내 별도 보고 건이었으나 그와 그 팀원들이 예고도 없이 회의실에 들이 닥친다. 옛날 순사들이 이렇게 했으려나. 무례하지만 어쩔 수 없는 듯하다.
"형님, 어제 잘 들어가셨어요? 어제 술 너무 많이 먹어서 기억이 안 나요. 오늘 옆 방 000 상무님이랑 라면 해장하기로 했는데 같이 가실래요?
000 상무와 그는 형님, 동생 하는 사이다. 어제저녁 참석자들은 상무와 거하게 한 잔들 한듯하다.
000 상무도 젊은 리더에 속하는 그룹이다. 그들만의 리그가 존재한다.
남의 회의에 불쑥 들어와 보여준다. 관계와 일의 우선순위라는 것. 참 노골적이다.
불현듯 세상사 모든 게 소꿉장난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한 없이 가볍고 의미 없이 살다 가는 건 아닐까 하는.
차장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까지 전해졌을까? 사뭇 궁금해졌다.
큰 소리로 그가 떠드는 중
차장은 창밖을 본다. 멀리 떨어진 곳에 숲이 보인다. 나무들이 보인다. 평화로움이 느껴진다.
그곳으로 영혼이라도 보내 안식을 주고 싶다.
브리핑 중 상무는 시종일관 시큰둥한 표정이고 그는 바쁜 건지 무례한 건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전화를 하러 들락날락 거린다. 차장은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보고한다.
혼자 온 것도, 혼자 만들어 온 결과물도 아니기에.
참아내야 한다.
술에 취했는지, 무리와 함께 그렇게 하기로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브리핑 내내 무례한 반응이 이어진다.
그러다 갑자기 일부 내용을 꼬투리 잡아 흥분하며 말을 한다.
"이 부분은 000 과장 자료가 훨씬 좋구먼, 안 그래 000 과장? 차장님 그런 것 좀 가져다 배워서 써요. 비효율적으로 하지 마시고"
000 과장은 우리의 것을 가져가지만 그들의 자료는 절대로 내어 주지 않는다.
또한 000 과장은 그 팀장 무리의 충성스러운 일원이자 000 상무의 호위무사다.
앞으로 더 높이 올라갈 곳이 정해진 그런 사람. 그런 사람들.
회의에 들어온 이들 모두가 한 마디씩 평가하고 절하해 주는 절차로 회의가 마무리된다.
좋은 실적을 가져와도 없는 것들은 매를 맞는다. 아마 이런 식이면 그 어떤 것도 벌 줌의 원인이 될 것이다.
이미 차장의 영혼은 창밖 숲 속 어딘가의 벤치에 앉아 새소리에 눈을 감고 있다.
육체는 조용하게 그리고 가만히 듣고만 있다.
그렇게 한 달마다 1개소의 지방현장을 팀원들과 10개월을 다니고,
정기적으로 또는 수시로 같은 상황을 반복한다.
차장님은 모든 상황을 그러려니 해본다.
다만, 믿고 따라준 팀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한창 직장에서의 안정과 성공을 바랄 나이인데 일을 잘하고도 힘 있는 자들에게 이런 대우를 받는다는 게 서글펐을 것이다. '권력자' 그 밑에서 이런 결과물을 내었다면 더 큰 보상을 받았으리라. 그들은 그럴 힘이 있기에.
눈빛.
권력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그 눈빛.
당신은 나에게 도전할 수 없다는 눈빛 제압.
당신의 살아가는 본질도 나의 힘 앞에서는 수치스럽고 부끄럽게 만들 수 있다는.
네가 믿고 사랑하는 동료들까지도.
권력의 힘은 태초에 좋은 곳에 쓸 수 없는 것일까?
모두를 위해 좋은 방향으로 가다가 변하는 것일까?
내편과 네 편만 있고 그들에게 공동의 성장이라는 대의는 점점 희미해지고
권력만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를 넘어 뜨리고, 누르고, 조른다.
나에게 필요 없는 혹은 방해되는 장애물은 권력이 주어졌을 때 치워야 한다.
치워 버려야 조금 더 올라가고 조금 더 가져갈 수 있다.
'군중 안에 있던 누군가가 떠들기 시작하자,
세 명이서 떠들기 시작하고 세명의 말은 또 열사람에 흘러 다섯이, 다섯이 또 열대여섯이,
또 더 많은 이가 떠들어 댄다.
누군가의 이야기는 그렇게 누군가들에 의해 무리의 이야기가 되었고, 진실처럼 되었다.
그리고 이야기는 이내 사라져 갔다.
어쩌면 무리 짓는 것이 본래의 우리네 사는 이야기인 것인지,
이야기가 있어 무리 짓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그럼에도 늘 침묵해 주는 한 명이 있고, 믿어 주는 한 명이 있다.
그래서 그러려니 할 수 있다.
III. [꿈틀]_때리는 사람들은 다음 주에도 이어집니다.
*빚은 조각 : '후배', '무리 짓는',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