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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용선 Sep 01. 2019

권석창 시 ‘몸 성히 잘 있거라’

이웃사랑에 수준 따질 거 뭐 있나

자주 가던 소주집 

영수증 달라고 하면 

메모지에 '술갑' 얼마라고 적어준다. 

시옷 하나에 개의치 않고 

소주처럼 맑게 살던 여자 

술값도 싸게 받고 친절하다. 

원래 이름이 김성희인데 

건강하게 잘 살라고 

몸성희라 불렀다. 

그 몸성희가 어느 날 

가게문을 닫고 사라져 버렸다. 

남자를 따라갔다고도 하고 

천사를 따라 하늘로 갔다는 

소문만 마을에 안개처럼 떠돌았다. 

어느 하늘 아래 살고 있는지 

몸 성히 잘 있는지 

소주를 마실 때면 가끔 

술값을 술갑이라 적던 성희 생각난다. 

성희야, 어디에 있더라도 

몸 성히 잘 있거라.     


 


     

  영수증에 술값을 술갑이라고 적을 정도이니 배움이 많은 여인일 턱이 없다. 그런 것을 시인은 여자는 그저 ‘시옷 하나에 개의치 않’았던 것이라 쓴다. 술집 여주인의 고단한 삶을 소주의 쓴맛에 비할 법도 한데 소주처럼 맑게 살던 여자라고 쓴다. 

  어떤 여자였기에 저리도 점수가 후할까? 여자의 성격을 알만한 구절은 술값을 싸게 받고 친절하다는 것뿐이다. 하긴 내 주머니 걱정 없이 술 마실 수 있고, 술 취한 객기를 누이처럼 편히 받아주는 것이면 충분하지 또 무슨 사연이 달리 더 필요할까? 

  사연은 도리어 거기 드나드는 손님 쪽에서 만들었다. 아이들이 흔히 하는 별명 짓기 놀이다. "아줌마 이름이 김성희라고? 좋아, 그럼 자기는 지금부터 몸성희야, 몸, 성, 희, 알겠지?" "몸성희? 그거 좋네요. 아유, 이뻐라. 오늘부터 내 이름은 몸성희에요." 애정이 담뿍 담긴 별명으로 부르고 불리며 주객 간에 얼마나 정다웠을까 상상이 간다. 

  누이 같던 그 여자가 홀연 가게문을 닫고 사라졌다. 많이 배운 여자나 같으면, 성깔머리나 만만치 않은 이 같으면, 손님한테 바가지나 씌울 줄 아는 장사꾼 같으면 그리 걱정이 들진 않았을 터인데, '그리 술값이 싸 가지곤 돈 벌기 힘들 텐데…, 그리 맘씨가 좋은데 혹여 드센 사내라도 만났으면 어쩌나?' 소주를 마시며 내 몸 걱정보다 술집 주인이었던 한 여자의 몸 걱정이 먼저 앞선다. 

  이웃 사랑에 수준 따질 거 뭐 있나. 몸 성히 잘 있기 바라는 데에야 상대가 많이 배웠건 못 배웠건 잘 생겼건 못 생겼건 부자이건 가난뱅이이건 무슨 상관일까. 내 좋은 사람들, 나 좋다는 사람들, 그저 몸이나 아프지 말았으면. 

 (유용선 記)


권석창 시인. 197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벌판에서' 당선. 시집으로 <눈물반응>(1088), <쥐뿔의 노래>(2005) 등. 민족문학작가회의 경북지회장 및 대구대학 겸임교수 역임. 선영 여자고등학교 국어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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