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문 것이 흔한 것들 속에 들어올 때
저도 모르게 왼손이 편하고 좋아
왼손으로 밥 먹고 글씨를 쓰다가
오른손은 늘 바르고 옳으니
오른손만 사용하라며 어릴 때부터
엄마한테 회초리 맞고 자란
내 귀여운 왼손잡이 애인은 이제
왼손 오른손을 능숙하게 놀리는
양손잡이가 되어 있지요
왼손은 부정하다고, 틀렸다고
오른손만 고집하다가
왼손을 거의 쓸 수 없는 나보다
훨씬 두 손이 자유로운 사람이.
오른쪽의 ‘오른’은 ‘옳은’이 변한 말이다. 영어를 비롯한 유럽어도 마찬가지여서, 영어의 right는 ‘옳은’으로도 쓰이고 ‘오른쪽’으로도 쓰인다. 드문 것을 왼쪽으로 흔한 것을 오른쪽으로 분류하는 오래된 습성은 이념이나 문화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진보는 왼쪽, 보수는 오른쪽이다. 동서양이 공히 이렇게 된 데에는 어떤 과학적이거나 논리적인 근거도 없이 그저 오른손을 편히 사용하는 유전자를 타고 난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압도적으로 많다는 이유, 그것 하나뿐이다.
지구촌 어딘가에는 오른손으로는 밥을 집어 먹으면서도 왼손은 밑씻개 취급하는 곳도 있다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의가 필요한 자리, 예컨대 연장자나 상사에게 술을 따라야 하는 자리에서 왼손으로 병을 들고 잔을 들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버릇없고 못 배운 인간 취급당하기 십상이다. 오른팔에 깁스를 하고서도 “죄송합니다. 제가 팔이 이 모양이라 왼손으로 따릅니다.” 해야 한다.
임동확의 ‘내 애인은 왼손잡이’는 그러한 우리네 편견을 ‘내 애인’이라는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등장시켜 신랄하게 꼬집는다.
내 애인이 왼손을 즐겨 쓴 까닭은 진보를 사랑해서도 아니요 반항심 때문도 아니요 그저 편해서이다. 타고난 대로 했을 뿐인데 그 때문에 꾸지람도 듣고 회초리도 맞았다. 남들 보는 곳에서는 불편한 오른손으로 혼자 있을 때에는 편한 왼손으로 살다가 이제 내 애인은 두 손 모두 능숙하게 놀리는 양손잡이다. 왼손의 ‘왼’은 ‘불편한’이란 뜻이니까, 이제 내 애인은 오른손이 두 개다.
이 시는 이념 코드를 적용해서 읽어도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다.
임동확은 젊은 시절 광주 민주화혁명을 소재로 연작시를 써서 <매장시편>이란 제목의 시집을 상재한 적이 있다. 그때가 1987년이었으니 자칫하면 왼쪽 사람에다 덤으로 빨간 사람 취급을 당할 수도 있는 시절이었다. 그가 회초리보다 무시무시한 탄압을 받았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입장에 처한 적이 있는 그였기에, 양손잡이 ‘내 애인’이 유난히 더욱 예뻐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우리나라의 정치하는 사람들의 이데올로기도 이제 그만 양손잡이로 가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본주의에 치우치면 너무 파랗고 사회주의에 치우치면 너무 빨갛다. 둘 다 눈이 아프고 예쁘지도 않다.
(유용선 記)
임동확 시인. 1959년 광주 출생.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시집으로 『매장시편』 『살아 있는 날들의 비망록』 『운주사 가는 길』 『벽을 문으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