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장
창세기는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허구(fiction)함이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계시를 받아 썼기 때문에 전지적 작가 시점이 되었다고 믿는 사람들도 극소수 존재합니다.
창세기 1:1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으셨다.
선언문 성격을 지닌 개요 문장입니다. 앞으로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으신 이야기를 하겠다고 선언하는 동시에 요약한 문장이죠. 이는 기록자의 습관인 동시에 고대 문학의 관습적 서술이기도 합니다. 다른 경전문학에도 흔히 나타나는 어법입니다.
이 문장에서 하늘로 번역되는 부분은 히브리어 원문의 샤마임(שָׁמַיִם)도 복수형이고, 영어도 heavens로 복수형입니다. 고대 근동의 가장 일반적인 우주관은 3층 구조의 하늘이었어요. 1층 하늘은 새들이 나는 공간이고, 2층 하늘은 해와 달, 별들이 있는 공간이며, 3층 하늘은 하느님이 계시는 곳. 땅과 가까운 곳에 있는 1층 하늘과 2층 하늘을 피조물로 본 겁니다. 너무나도 당연히 창세기 1장을 쓴 기록자는 현대인처럼 우주망원경으로 지구 밖 우주를 볼 수 없었지요. 이어지는 부분도 그 점을 감안하고 읽어야 합니다.
문자주의자들 가운데에는 바이블의 기록을 사실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우주 홀로그램' 같은 황당한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그런 주장은 오히려 하느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인간을 속이려고 눈속임을 하고 가짜 증거들을 심어놨다는 주장이 되기 때문이지요.
창세기 기록자는 기록하던 당대의 제한된 지식과 사고와 언어 안에서 자기 나름대로 깊은 진리를 전하려 했습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는 것이야말로, 경전을 읽는 사람이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태도입니다. 하느님과 기록자를 모두 존중해야 집필 동기와 가치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1:2
Genesis 1:2 Now the earth was formless and void, and darkness was over the surface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was hovering over the surface of the waters.
이제 땅은 혼돈과 공허한 상태였고, 어둠이 깊은 표면을 덮고 있었다. 하느님의 영이 수면 위를 거닐고 있었다.
하느님의 창조에 시간과 질서가 엿보입니다. 땅은 혼돈(형태 없음)과 공허로 표현하고, 어두운 상황을 빛보다 먼저 언급합니다. 혼돈과 공허한 상태임에도 물이 존재한다고 보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고대 천체과학의 견해에서 물이 상당히 우선 순위에 있고 중요했음이 틀림없습니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과 동시에 존재하는 물질, 물! 이러한 인식은 먼 훗날 유대인과 기독교인의 문화에 물세례 전통을 세우는 데 크게 일조합니다.
(독자에게 당부하건데, 지금부터는 각자 지닌 바이블을 꺼내 읽으면서 제 글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창세기는 5일 동안 이루어진 창조 순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그리고 각각의 언급은 현대 과학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1일: 3절부터 5절. 빛의 창조. 낮과 밤의 분리. 지구의 자전이 낮과 밤을 있게 한다는 사실을 당시로서는 알 길이 없었으므로, 태양의 존재와 상관없이 빛이 창조되어 낮과 밤이 분리된 것이라도 믿습니다.
2일: 6절부터 8절. 궁창으로 물을 나눔. 다소 울퉁불퉁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평평한 지구 위에 마치 돔 모양의 하늘에 펼쳐져 있다고 보았습니다. 물을 최초부터 있던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큰 물에서 작은 물이 갈라지는 상상이 가능했습니다. 물이 갈라진 공간을 하늘이라 부릅니다. 이런 사고방식이라 하늘이 여러 곳이 될 수 있었겠지요.
3일: 9절부터 13절. 육지와 식물. 아직 태양이 생기기 전인데도 식물 생성을 언급합니다. 고대인은 광합성의 비밀을 알지 못했습니다.
4일: 14절부터 19절. 해, 달, 별. 하느님은 큰 광명인 해가 낮을, 작은 광명인 달이 밤을 각각 맡게 합니다. 이어 별을 만듭니다. 저 별들 중에는 태양보다 훨씬 큰 것도 있고, 심지어 먼저 만들어진 것들도 많다는 사실은 꿈에서조차 생각할 수 없었죠. 지금 관점으로 보면 마치 동화 같습니다만, 고대인에게는 너무 당연해 보였을 겁니다.
5일: 20절부터 23절. 수중생물과 조류. 이 부분은 과학과 어느 정도 어울립니다. 생명은 바다에서 시작됐고, 육지 생물보다 수중 생물이 먼저 출현했다는 점은 생물학적 견해와 일치합니다. 새들도 결국 파충류에서 진화했으니까요. 열매맺고 번식하라는 축복도 인상적입니다. 땅은 한정된 공간인데 생물이 계속 번식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번식하라는 말에는 생태계 순환 즉 죽음이 당연히 존재하지 않았을까요?
6일: 24절, 31절. 창세기는 육지 동물과 인간. 수중생물과 조류 창조에 이어 육지생물을 창조한다고 묘사합니다. 글쓴이는 가축, 길짐승, 들짐승이 애초에 정해져 있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인간 창조도 함께 언급합니다. 인간 창조 언급은 뒤에 따로 이야기하겠습니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창조 서사시인 에누마 엘리시(Enuma Elish)에는 원시 바다(아프수/티아마트)가 깊은 곳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창세기의 깊음은 그 영향을 받았어요. 혼돈에서 질서로 이행되는 과정은 신들의 위계질서와 밀접했습니다. 이집트 창조신화에서는 아툼이 혼돈의 바다(눈)에서 나옵니다. 프타신은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죠.
창세기를 쓴 사람들은 바빌론 유배기를 겪으며 신앙이 지켰습니다. 그들에겐 이방의 신들을 비신화화하는 작업이 필요했지요. 그래서 태양의 신은 큰 광명체로, 달의 신은 작은 광명체로 물질화했어요. 창세기 1장은 당대의 우주관과 문학적 전통 속에서 쓰인 신앙 고백서였습니다.
창세기 1장 26절과 27절에는 '번역의 정치학'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의도적인 오역을 했죠. 이는 이어질 창세기 에덴동산 신화에 끼워맞추기 위한 일환이었습니다. 가장 최근에 번역한 베레알 성서조차 이 함정에 빠져 버렸습니다. 게다가 남자를 먼저 짓고 여자를 지었다는 말은 논리적으로도 모순입니다. 여자가 없는데 어떻게 남자가 존재할 수 있습니까? 남녀는 상대적 개념입니다. 하나가 존재해야 나머지도 존재할 수 있지요. 게다가 남자와 여자를 가리키는 이쉬, 이샤가 곧바로 등장합니다.
의외로 한문 성서가 원어에 충실한 번역을 했습니다.
26절. 神說、我們要照著我們的形像、按著我們的樣式造人、使他們管理海裡的魚、空中的鳥、地上的牲畜、和全地、並地上所爬的一切昆蟲。
27절. 神就照著自己的形像造人、乃是照著他的形像造男造女。
이렇게 번역해야 합니다.
26절: Then God said, “Let Us make human in Our image, after Our likeness, to rule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the birds of the air, over the livestock, and over all the earth itself and every creature that crawls upon it.”
27절: So God created human in His own image; in the image of God He created them as male and female.
아담(אדם)은 흙을 뜻하는 아다마(אדמה)에 온 말로서 '흙으로 만들어진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냥 인간, 인류라고 번역하면 그만인 낱말입니다. 이는 고대 근동 신화의 전통이기도 합니다. 바빌로니아 신화는 신들이 진흙으로 인간을 창조했다고 썼고, 이집트 신화는 크눔이라는 신이 인간을 도자기처럼 빚었다고 썼으며, 그리스 신화는 프로메테우스가 흙으로 인간을 만들었다고 썼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의 26절은 "나하세 아담"(우리가 인간을 만들자)이고, 27절: "바라 엘로힘 에트 하아담" (하느님이 그 아담을 창조하시니)입니다. 아담은 집합명사로서 인류 또는 사람들이라는 뜻이죠.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정치적이고 의도적인 목적으로 오역한 경전을 근거로 여성 사제, 여성 목회자를 공식적으로 금지시키기도 합니다. 성직자와 평신도 구분 자체를 반대하는 제가 보기에는 그저 너무나도 한심스러울 따름입니다.
창세기 1:28
God blessed them and said to them,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fill the earth and subdue it; rule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the birds of the air and every creature that crawls upon the earth.”
하느님께서 그들을 축복하시며 말씀하셨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정복하라. 땅의 물고기와 하늘이 새와 땅에 기어다니는 온갖 동물을 다스려라.
하느님은 수중생물과 조류에게 열매맺고 번식하라는 축복에 이어 인간에게도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축복을 합니다. 아주 인상적입니다. 그런데 한정된 공간인 땅에 온갖 생물과 인간이 함께 계속 번식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다시 한 번 적지만, 창세기 1장의 번성 축복에는 생태계 순환 즉 죽음이 당연히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습니다. 창세기 1장은 '인간은 원래 죽지 않는 존재였는데, 죄를 지어 죽는 존재가 되었다' 같은 관념이 반영되어 있지 않은, 건강한 문서였습니다.
또 하나. 이 1장 28절에는 인상적인 점이 하나 숨어 있습니다. 정복(카바시) 통치(라다) 대상이 물고기와 조류와 기어다니는 동물에게 한정되어 있어요. 즉 가축이나 들짐승은 제외됩니다. 생물이 아닌 것도 통치 대상이 아닙니다.물고기는 잡을 수 있고, 새들은 사냥할 수 있고, 기어다니는 것들도 밟거나 하여 큰 위험 없이 잡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축이나 들짐승은 다르죠. 특히 맹수는 아주 위험하죠. 이어지는 30절에 모든 짐승을 추가하긴 했지만, 맹수 사냥의 위험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자연 자원을 무제한적으로 개발하는 행위도 창세기 1장과 정면으로 위배됩니다.
창세기 1:29, 30절
하느님은 인간에게 음식으로는 식물만 먹도록 허용합니다. 그것도 초록색 식물 한정입니다. 이는 근동 지방의 척박한 풍토와 밀접한 서술입니다. 초록이 아닌 다른 색을 띠는 식물 가운데에는 독을 지닌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죠.
창세기 1:31절
6일 간의 창조 이야기마다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다는 문장이 반복됩니다. 이 문장이야말로 창세기 1장의 핵심입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자연은 그 자체로 완벽한 상태이고, 따라서 인간의 개입이나 개선이 필요 없는 본래적 선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문명과 기술을 내세워 "더 좋게 만들어야지" 할 필요가 없죠. 그러니 창세기를 이용해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설파하며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행위는 하느님의 뜻 또는 바이블의 메시지에 완전히 역행하는 거라 말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은 현대인인 우리가 보기에는 모순투성이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메시지에는 글쓴이의 애정과 염려가 가득합니다. 하느님이 인간을 사랑하는 존재로 그려져 있죠. 이런 면모를 볼 수 있어야 후대에 출현한 여러 성현들의 메시지를 하느님과 연관지어 이해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