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용선 Aug 22. 2019

창세기 1장

- 창세기 1장 저자들은 무엇을 전달하고자 했을까?

창세기(Genesis)의 히브리어 성경 명칭은 브레쉬트(בראשית)로 이 말은 "태초에(In the beginning)"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토라(Torah) 즉 모세의 오경(Pentateuch) 중 첫 번째 책입니다. 오경의 최초 저자가 모세로 설정된 근거는 그가 왕실에서 이집트 학문을 배워 다른 히브리 계층 사람들과 달리 학식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토라는 Y/J(야훼계)-E(엘로힘계)-P(사제계)-D(신명기계) 문서, 곧 4문서로 이루어진 수많은 저자들의 전승문학입니다. 모세 자체가 창조된 인물일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창세기는 이스라엘의 여러 부족을 같은 조상 야곱의 후손으로 묶고, 더 나아가 팔레스틴의 다른 민족들까지 같은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묶어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1장 전체를 굳이 인용하진 않겠습니다.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곳이라면 언제고 읽을 수 있는 책이 바로 성서니까요. 저는 여러 버전의 성서를 인용 또는 번역해 참조하면서 글을 전개하겠습니다.

첫 문장은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 내셨다."입니다.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내신 한처음이다."로 해석해도 상관없다고 합니다. 창세기는 하늘과 땅이 생겨나기 전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 문장. "땅은 아직 모양을 갖추지 않고 아무것도 생기지 않았는데, 어둠이 깊은 물 위에 뒤덮여 있었고 그 물 위에 하느님의 기운이 휘돌고 있었다." 우주과학도 카오스(Chaos)라 해서 혼돈을 이야기하니 이 문장은 과학과 별로 충돌하지 않아 별로 거부감이 들지 않을 겁니다.

성서에 따르면, 하느님이 가장 처음 창조하신 것은 빛입니다. 창조하셨다기보다 빛과 어두움의 구분을 일으키셨다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이겠군요. 창조방식은 아주 단순합니다. 언어의 힘.

하느님께서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니 빛이 생겨났다.(1:3)


문제는 창세기 1장 5절부터입니다. 여기서부터는 현대인인 우리가 좀 관대해져야 해요.

"하느님은 빛을 낮이라,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 이렇게 밤과 낮 하루가 지나 첫날이었다."(1:5)

하루라는 개념이 등장했습니다.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동안 자기 몸을 한 바퀴 돌리면서 생기는 현상이 밤과 낮입니다. 태양을 향한 밝은 쪽이 낮이고 반대편이 밤이죠. 밤과 낮 한 쌍이 하루고요. 태양과 달이 생겨나기도 전에 하루, 밤, 낮부터 등장하니 과학적으로 모순입니다. 저자들은 밤과 낮이 어떤 원리로 생기는지 몰랐던 거죠.

재밌는 부분은 빛도 생기기 전인 혼돈 시기부터 물은 있었다고 생각한 점입니다. 하느님이 물을 창조했다고 생각하기보다 물은 본래부터 있는 무엇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물 한가운데 창공이 생겨 물과 물 사이가 갈라져서 생긴 공간을 하늘이라 불렀습니다. 하늘 높은 곳으로도 물이 올라가 있다고 본 거죠. 그도 그럴 것이 그래야 높은 곳으로부터 비가 내리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하늘이 생긴 날이 두 번째 날입니다. (1:6-8)

하늘이 생기느라 갈라진 상하의 물 중에 아래, 즉 땅을 덮은 물이 움직여서 바다와 뭍의 구분이 생깁니다. 낟알을 내는 온갖 풀과 씨 있는 온갖 과일나무가 생겨납니다. 세 번째 날입니다. (1:9-13)

네 번째 날에야 해와 달과 별들이 생겼다고 적습니다. 땅이 둥글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고대인은 둥근 덮개처럼 생긴 창공에 해와 달과 별들이 매달려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구에 닿는 빛의 대부분이 태양에서 온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사람들이 정한 순서라 이렇게 요상합니다. (1:14-19) 

닷새째에는 어류와 조류가 생겼습니다.(1:20-23)

엿새째에 하느님은 길짐승과 들짐승과 집짐승을 만드시고 그것들을 다스릴 인간을 만드십니다.

하느님은 사람은 곡식과 과일을 먹게 하고 다른 동물들은 온갖 푸른 풀을 먹게 하셨습니다. 인간에 관한 두 가지 중요한 언급이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을 하느님의 모습대로 지어 내셨다는 거고, 또 하나는 사람을 지어 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 내셨다는 겁니다. 하느님은 마지막 피조물인 인간에게 다섯 가지를 명령하십니다.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를 돌아다니는 모든 짐승을 부려라!”(1: 28) 낳다, 번성하다, 퍼지다, 정복하다(kābash), 부리다(rādāh). 이 다섯 가지는 고대 히브리인이 제국의 포로로 사는 동안 제대로 누리지 못한 대표적인 행위입니다. 제국의 엄격한 계급사회에서 최하위 계층으로 살아가던 그들은 자신들이 누리지 못한 인권을 이런 식으로 선언했습니다.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한 목적은, 바꿔 말하면, 인간이 존재하는 의의이기도 합니다. (1:24-31)

단, 정복하다(kābash)와 부리다(rādāh)는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면서 숱한 오해 및 오용을 낳았습니다. 이 두 동사는 ‘왕권 행사’라는 뜻을 담아 사용하는 낱말입니다. 히브리에게 왕이란 ‘하느님의 대리자’와 같은 뜻이죠. 그 점이 당시 인근 국가들의 왕과 달라요. 억압과 착취와 훼손과 남용이 아닌 조화로운 통치로써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자연을 그분을 대신하여 가꾸는 일. 바로 이것이 ‘정복’의 참뜻이며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에덴동산 설화 곧 하느님께서 남자를 먼저 만들고 그의 갈비뼈를 떼어 여자를 만드셨다는 이야기는 창세기 1장 27절과 다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창세기 1:27)

이 문장은 창세기 5장에 다시 등장합니다. 올바른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담의 계보는 이러하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시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그들을 창조하시던 날에,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을 아담이라 부르셨다."(창세기 2:1,2) 

여기서 아담(Adam)은 남자의 이름이 아니라 아다모(Adamo, 흙)로 만든 존재, 즉 토인(土人)이란 뜻입니다. 창세기 2장 4절부터 4장 전체는 창세기 1장과 5장의 저자들과 다른 저자들이 끼워 넣은 부분입니다. 창세기가 작가 한 사람이 순서대로 쓴 책이 아님을 잊지 마세요. 안타깝게도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은 상징적인 설화를 실화로 받아들이면서 창세기의 기록 취지를 왜곡하고 성차별의 선봉에 서게 된 것이지요.



이 시리즈는 전자책 <성경을 읽었습니까?>로 출간되었습니다. 

http://digital.kyobobook.co.kr/digital/ebook/ebookDetail.ink?&barcode=4801188123163



매거진의 이전글 머리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