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자씨처럼 매운 사랑 노래
저 산을 옮겨야겠다
저 산을 내가 옮겨야겠다
오늘 저 산을 내가 옮겨야겠다
먼저 산에서 ㄴ을 빼고
ㅏㅏㅏㅏ
목 놓아 바깥으로 아를 풀어놓으면
산은 마침내 ㅅ만 남게 된다
두 사람 비스듬히 몸 맞대고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ㅅ.......ㅅ.......ㅅ.......ㅅ.......
저 산이 움직인다
ㅅ.......ㅅ.......ㅅ.......ㅅ.......
저 산이 걸어간다
ㅅ.......ㅅ.......ㅅ.......ㅅ.......
산을 움직이는 두 사람
ㅅ.......ㅅ.......ㅅ.......ㅅ.......
사랑하는 두 사람이다
이 시의 제목 '저 산을 옮겨야겠다'를 읽으며 성서의 한 구절을 떠올린 분이 없으신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져라.' 해도 그대로 될 것이다.(마태 17:20)”
성서 구절과 시의 구절을 융합하면 '저 산을 옮겨야겠다'는 말은 ‘무언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다’는 뜻으로 바꿀 수 있다. <믿는다 / 나는 믿는다 / 오늘 나는 믿는다>로.
이 시가 발표된 2004년 현대문학 3월호를 찾아 읽어 보면 1연과 2연 사이의 간격이 한 줄 띄어쓰기가 아니라 두 줄 띄어쓰기이다. 편집 실수일 수도 있겠지만 최초 발표 형식을 좇아 두 줄 여백 속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한 뒤에 2연으로 눈을 옮겨 보자.
시인은 물리적인 산이나 관념적인 산이 아닌 모국어의 글씨 '산'을 가장 먼저 허물기 시작한다. '산' 가운데 그녀가 허물어 버리려는 자음과 모음에 눈길을 주어 보자. ㄴ을 허물고 이어서 ㅏ를 허문다. 그 둘이 만나면 '나'가 된다. 아니나 다를까 목을 놓아 울며 바깥으로 내어 놓은 것은 '아'이다. '我'이다. 이 지긋지긋 아집덩어리들아! 제발 무엇보다 '먼저' 그 놈의 잘난 '나(我)'부터 내다 버려라. '나'만을 위해 '나' 안에서 징징거리지 말고 '나'를 풀어 놓기 위해 울어 그 밖으로 나와라. 제발! 제발!
'나'를 버린 산에는 ㅅ만 남아 있다. ㅅ(시옷)은 상형문자인 人을 닮았다. 두 사람이 비스듬히 서로 몸을 맞댄 모습이다. 그리고 ㅅ(시옷)은 걸어가는 모습을 닮았다. 그런 모습의 ㅅ과 ㅅ 사이에 점이 일곱 개이다. 한 주일은 칠일이지. ㅅ(시옷)의 모습으로 하루하루가 흘러가는 동안 산이 움직인다. 산이 사람과 함께 사람처럼 걸어간다. ㅅ(시옷)이 산을 움직인다.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그렇게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시인 김승희가 확신하고 바라고 오매불망 떠올리는 그 모습이다.
셋도 거창하다. 둘만이라도 서로 제대로 사랑할 수 있다면? 그 사랑에 대한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 있다면? 겨자처럼 매운 시다. 너무 매워서 눈물이 나는 시이다.
* 시집 <냄비는 둥둥>은 김승희 시인의 아홉 번째 시집으로서 2006년에 창비에서 출간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