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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용선 Sep 01. 2019

문정희 시 "응"

예쁘고 섹시하고 건강한 사랑

햇살 가득한 대낮 

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 

네가 물었을 때 

꽃처럼 피어난 

나의 문자(文字) 

"응"     


동그란 해로 너 내 위에 떠있고 

동그란 달로 나 네 아래 떠있는 

이 눈부신 언어의 체위 


오직 심장으로 

나란히 당도한 

신의 방 


너와 내가 만든 

아름다운 완성 


땅 위에 

제일 평화롭고 

뜨거운 대답 

"응"      




  다행인지 불행인지 인간은 남자 아니면 여자이다. 이 두 개의 성(性, gender)은 서로 당기기도 하고 밀치기도 하며 인간사를 아름답게 또는 추하게 물들인다. 性을 이야기하면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성교(性交; sexual intercourse)이다. 

  성교는 인생사에서 한 손가락에 꼽을 만큼 중대한 가치와 비중을 지닌다. 그것은 출산의 수단이며 사랑의 표현이며 참기 힘든 배설이다. 성욕을 무리하게 억압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허용하여 성교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는 개인 및 사회는 크든 작든 탈이 나기 마련이다. 그 자체로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것을 어떤 관념은 터부시하고 어떤 관념은 미화시킨다. 특히 여자의 성은 실로 억울하리만치 왜곡당해 왔다. 

  性을 대하는 태도의 측면으로 볼 때 문정희의 시 “응”은 참으로 건강하다. 

  시 속의 ‘너’가 ‘나’에게 ‘(성교를) 하고 싶냐’고 묻는 시간대는 낮, 그것도 햇살이 가득한 대낮이고, 더욱이 ‘이따가’도 아닌 ‘지금’이다. ‘아이고, 망측해라. 한밤중에 은밀하게 주고받아도 낯부끄러울 이야기를 어째 이 양반은 대낮에 하고 있담.’ 그렇게 생각할 법도 한데, 시 속의 나는 햇살 아래 피어나는 꽃처럼 순순히 “응” 하고 대답한다. 

  하고 싶은 마음이 지금 대낮에 일었다고 그 당장 행위로 옮길 수야 없는 노릇이겠지만 ‘나’는 마음을 대신한 “응”이란 음성을 문자로 바꾸어 그려보며 생각에 잠긴다. 

  지평선처럼 수평선처럼 그려진 모음 ‘ㅡ’를 사이에 두고 위에 떠 있는 동그라미는 태양 같은 ‘너’이고 아래에 떠 있는 동그라미는 달 같은 ‘나’이다. 마치 성교를 나누는 남녀의 체위 같은 그 모습이 참으로 눈부셔 보이는구나. ‘너와 나’의 심장이 나란히 서로 마주하여 응의 체위를 이루니 마치 조물주가 손수 지으신 방처럼 완성미가 넘치는구나. 세상에 널린 온갖 터부와 편견과 왜곡을 깔끔하게 한 획으로 붓질하는 대답 “응”은 얼마나 평화로우며 뜨거운 말인가!      

  그나저나 문자에서 체위를 발견하다니. 문정희 선생의 밝은 눈에 시샘이 다 일 지경이다. 

  ㅇ 

  ㅡ 

  ㅇ ......................... 한글은 참 예쁘고 섹시하구나. 


  (유용선 記) 

문정희 시집 <응>(민음사)

문정희 시인. 1947년 전남 보성에서 출생. 1965년 진명여고 3학년 때 시집 『꽃숨』 발간. 1966년 동국대 국문과 입학, 1969년 대학 4학년 때는 월간문학 신인상을 수상했다. 반세기 시력이 쌓이는 동안 숱한 시를 써왔는데, 그중 버릴 작품이 한 편도 없다는 말을 들어도 좋을 몇 안 되는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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