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녀, 그 슬프도록 아름다운 호칭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
돌아누워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은 남자
나에게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 준 남자
대다수의 여성들은 꽤 나이 들어 결혼을 한 사람조차 유부녀라는 호칭을 듣기 싫어한다. 남편 있는 여자라는 뜻인 그 낱말이 어째서 그토록 배척을 당해야 하는지 그 까닭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내 결론은 이렇다.
하나, 유부녀는 남편의 종속이란 뉘앙스를 풍긴다.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는 속담이 있듯이 여성에게 있어 결혼은 입구가 좁아 한번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 어려운 뒤웅박 속 같아서 남편이 얼마만큼 쓸 만한 뒤웅박이냐에 따라 행불행이 결정된다고 보는 것이다. 반대로 유부남은 아내를 거느리고 있는 남자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사회가 많이 변하여서 ‘남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는 농담도 주고받기도 한다지만, ‘유부남과 유부녀’는 여전히 ‘주인과 종’만큼 멀다.
둘, 유부녀는 불공정하고 균형이 맞지 않는 관계의 피해자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유부녀는 전문성이 없어 보인다. 가사를 엄연한 노동이요 경제활동으로 보아준 지가 동서양을 통틀어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 유부녀는 남편이 바깥에서 사냥해오고 수확해 오는 것에 전적으로 기대어 생존해나가는 존재라는 인식은 현대에 와서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바깥에서 남편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많은 돈을 벌어오는 아내조차 집에 와서 가사노동을 거의 전담하다시피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남편이 부엌일을 ‘돕는’ 사회가 아닌 ‘함께 하는’ 사회가 아닌 이상, ‘유부남과 유부녀’는 여전히 ‘사장과 종업원’만큼 멀다.
셋, 유부녀는 세련미와 거리가 멀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절약이 최고의 미덕인 가사에서 유부녀가 외모를 단장하기 위해 돈을 사용하는 일은 자녀의 교육이나 음식 재료비보다 늘 뒷전에 놓인다. ‘아줌마 머리’ 하면 떠오르는 머리 모양이란 짧게 깎은 머리를 퍼머넌트로 고정시켜 놓은 것이며, ‘아줌마 옷’ 하면 떠오르는 옷차림새란 실내에선 당장 잠옷으로 사용해도 무방할 옷이라서 맵시보다는 활동성이 중시되는 모습이며, ‘아줌마 목소리’ 하면 떠오르는 음색은 금속성이 섞인 억척스러운 쇳소리이다. 자녀를 잘 가르치고 식구들을 잘 먹이기 위해 가장 먼저 홀대당하는 부분은 거의 언제나 유부녀의 외모이다. 유부녀가 미니스커트를 입고 외출하면 이상한 상상부터 하는 사회에서 ‘유부남과 유부녀’는 여전히 ‘주연과 조연’만큼 멀다.
사실 결혼하지 않은 어떤 여성 못지않게 매력 있는 유부녀는 세상에 아주 많다. 남편의 종이 아닌 친구로서, 남편의 종업원이 아닌 동업자로서, 남편의 조연이 아닌 공동 주연으로서, 아름답고도 슬픈 우리의 유부녀들. 그들을 친구이자 동업자이자 공동 주연으로 삼을 줄 아는 남편들은 인생의 어떤 시련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아내에게 많이 져본 남편일수록 더욱 그럴 것이다. 아내가 지어준 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남편일수록 더욱 그럴 것이다.
(유용선 記)
문정희 시인. 1947년 전남 보성에서 출생. 1965년 진명여고 3학년 때 시집 『꽃숨』 발간. 1966년 동국대 국문과 입학, 1969년 대학 4학년 때는 월간문학 신인상을 수상했다. 반세기 시력이 쌓이는 동안 숱한 시를 써왔는데, 그중 버릴 작품이 한 편도 없다는 말을 들어도 좋을 몇 안 되는 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