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의 묵시문학
유다 왕국이 멸망하자 백성들의 일부는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가고 나머지 상당수는 요단강 동편, 시리아, 페니키아, 이집트 등지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유다보다 100년 이상 앞서 멸망한 이스라엘의 백성까지 포함하면 수세기에 걸친 이산 과정입니다. 본토에 남은 백성들의 삶은 노예나 다름없었으며,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해야 멸망을 애도하며 예레미야의 애가와 시편의 몇 장(79, 105, 106편)을 함께 낭독하는 정도였습니다. 오히려 바빌론에 끌려간 백성들의 삶이 좀 더 나았던 것으로 성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전을 잃은 그들은 율법에 집착했고, 율법 전승은 형식과 체계를 갖추어 ‘오경’의 모체가 되었습니다.
예언자들은 나라를 잃는 시련이 불의와 죄악을 일삼은 대가 곧 하느님의 채찍질이므로 이제라도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의 법과 정의를 따르면 구원과 해방이 올 것이라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특히 기원전 597년 바빌론으로 끌려간 사제 출신 예언자 에스겔(에제키엘)은 새 예루살렘, 새 이스라엘의 청사진을 구체적으로 제공했습니다. 그의 예언이 담긴 에스겔서는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1.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1-24)
2. 이웃나라에 대한 심판 (25-32)
3. 예언자의 파수꾼으로서의 역할 (3:18~21)
4. 구원에 관한 약속 (33-39)
5. 새로운 성전 (40-48)
지난날 이스라엘과 유다로 갈라져 이방의 풍습과 종교에 현혹되었던 잘못에서 벗어나 오직 하느님 한 분만을 섬기고 다윗(상징적인)의 통치 아래 영원한 평화를 누릴 것이라는 희망. 성전을 재건하여 자신들이야말로 하느님의 백성임을 온 세상에 알리겠다는 의지. 이러한 희망과 의지는 히브리 공동체가 훗날 재건의 길에 나설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에스겔서는 비전 중심의 서술 때문에 묵시문학의 성격을 강하게 띱니다. 이곳에 수록된 내용들은 먼 훗날 예수 그리스도의 설교와 사도 요한의 묵시록에도 인용됩니다. 특히 백성의 회개보다 하느님의 은총이 먼저라는 그의 관점은 훗날 사도 요한과 바울의 은총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새 기운을 불어넣어주겠다. 너희 몸뚱이에서 돌처럼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겠다. 또한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나의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하리라. 너희는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거주하며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되리라.”(36:26~28)
바빌론,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이집트, 시리아 등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로 존재하면서 히브리 묵시문학은 지속적으로 발전합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황제 고레스는 포로로 잡혀 있는 백성들이 자기 영토로 귀환하게 하는 정책을 펼쳤는데, 이는 히브리 백성의 성전 재건 활동이 시작됨을 의미합니다.
다니엘서는 구약성서 묵시문학의 꽃이라 하겠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하시딤(hasidim) 중 한 사람으로 봅니다. 하시딤은 ‘경건한 자들’이란 뜻으로 마카베오 형제들의 반란 이전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율법에 충실하며 사후 심판, 육신의 부활 등에 대한 교의를 분명히 한 이들의 직계 후예가 바로 바리사이파입니다. 종말계시의 수령자로 선택된 다니엘은 당시 민중 사이에서 추앙되던 전설적인 인물로서 실존인물은 아닐 가능성도 있습니다. 에스겔서 14장 14절에서 다니엘은 노아, 욥과 함께 고대의 의인으로 언급되고, 같은 책 28장 3절에선 지혜로운 자의 상징으로 언급됩니다.
다니엘서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1. 설화 (1-6장)
- 다니엘과 그의 세 동료 (1장)
- 느부갓네살 왕의 꿈과 다니엘의 해몽 (2장)
- 불가마 속의 세 젊은이 (3:1-30)
- 큰 나무 꿈 (3:31-4:34)
- 벨사살의 잔치 (5장)
- 사자굴의 다니엘 (6장)
2. 환상 (7-12장)
- 네 마리 짐승과 사람의 아들 (7장)
- 수양과 수염소 (8장)
- 칠십 주간 (9장)
- 분노의 날과 종말 (10-12장)
3. 첨가
- 아자리야의 기도 (3:24-50)
- 세 젊은이의 노래 (3:51-90)
- 수산나 이야기 (13장)
- 벨과 뱀 이야기 (14장)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은 대신들을 시켜 유다에서 잡혀온 사람들 중에 가장 잘난 젊은이들을 뽑아오게 했습니다. 뽑혀온 네 젊은이 곧 다니엘,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는 후한 대접을 받았지만 바빌론의 음식 가운데 율법에서 금하는 것들을 먹지 않았습니다. 채소와 물만 먹을지라도 그들은 다른 여느 젊은이들보다 건강했습니다. 바빌론의 말과 학식을 쌓은 지 3년 만에 그들은 왕 앞에 불려나가 왕으로부터 훌륭한 직책을 얻고 여러 해 동안 평안하게 살아갔습니다.
어느 날 느부갓네살은 이상한 꿈을 꾸고 심기가 아주 혼란스러워졌습니다. 그는 자기 나라 박사들에게 해몽을 명했지만 아무도 꿈을 풀지 못했습니다. 그는 격노해 박사들을 모두 죽이라 명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다니엘은 왕에게 나아가 해몽을 자처하며 시간을 구했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간절한 기도로써 왕의 꿈은 물론 그 의미까지 하느님으로부터 전해 받았습니다. 그 꿈은 바빌론과 그에 이어 일어날 나라들을 상징한 것이었습니다. 왕은 다니엘의 하느님을 칭송하며 그를 박사들의 우두머리로 삼았습니다. 죽이기로 한 박사들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왕이 된 느부갓네살은 우쭐해져 높이가 30미터나 되는 우상을 만들어 모든 관원들에게 와서 그 앞에 절하라 명했습니다. 다니엘은 일이 있어 첫날 그 자리에 가지 않았습니다. 왕이 그 우상 앞에 절하지 않는 자는 풀무불에 넣으라 명령했지만 다니엘의 세 친구는 꼿꼿이 서 있었습니다.
왕은 그들에게 몇 번이고 기회를 주었지만 그들은 요지부동이었다.
“폐하, 저희는 참된 하느님 한분만을 섬깁니다. 저희의 하느님은 위대하시어 풀무불에서라도 저희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저희는 절을 할 수 없습니다.”
마침내 왕의 명령에 따라 세 젊은이는 평소보다 일곱 배나 더 뜨거운 풀무불 속에 들어갔습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세 사람은 불에 타기는커녕 불꽃 위를 유유히 거닐며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왕은 그제야 제 잘못을 깨닫고 그들에게 용서를 빌며 하느님을 칭송했습니다. 이 일이 있은 뒤로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더욱 존경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느부갓네살은 또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큰 나무가 뿌리를 드러낸 채 7년이나 땅에 버려지는 꿈이었습니다. 왕은 다니엘을 불러 해몽을 청했습니다. 이 꿈은 그가 7년 동안 나라를 잃고 들판에서 짐승처럼 지내게 될 것을 미리 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왕은 다니엘의 해몽을 믿지 않았습니다. 꿈을 꾼 지 1년쯤 지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성을 듣고 이성을 잃었습니다. 백성들은 짐승처럼 변해버린 왕을 성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들판에서 짐승의 몰골로 지낸 지 7년 만에 정신이 돌아온 왕은 궁전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왕은 하늘을 우러러 다니엘의 하느님을 찬양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을 이은 바빌론 왕 벨사살은 잔치 열기를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잔치 도중에 선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가지고 온 금잔이 생각나 종들을 시켜 갖고 오게 한 뒤 거기에 포도주를 담아 마셨습니다. 우상을 찬양하는 그 자리에서 왕은 금잔에 술을 담아 손님들에게 돌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때였다. 허공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 궁전 벽에 이상한 글씨를 썼습니다. 아무도 그 글씨를 읽지 못하자 왕은 왕비의 조언을 따라 다니엘을 불렀습니다. 다니엘은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라 쓰인 그 글씨가 왕의 나라가 메데와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하리라는 뜻임을 알렸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왕은 다니엘에게 임금의 옷을 입히고 금목걸이를 채워주고 나라에서 세 번째나 가는 고위직에 앉혔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날 밤 메데와 페르시아가 바빌론을 점령해 벨사살을 죽이고 다리오를 새로운 왕으로 앉혔습니다.
새 임금 다리오는 다니엘을 첫째 총리로 세웠습니다. 고관들은 다니엘을 시샘해 틈만 나면 꼬투리를 잡으려 했지만 잡을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다니엘이 자신의 하느님밖에 섬기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해 꾀를 냈습니다. 그들은 왕이 아닌 다른 것을 섬기는 자는 사자굴에 넣는 법을 제안해 허락을 받았습니다. 왕은 다니엘을 좋아했지만 어쩔 수 없이 그를 사자굴에 넣으라 명령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너의 하느님이 너를 사자의 입에서 구해주실 것이다.”
다니엘을 사자굴에 가두고도 왕은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밤잠을 설친 끝에 새벽에 다니엘에 간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다니엘을 불렀습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하느님이 사자의 입에서 너를 구하셨느냐?”
굴속 깊은 곳에서 목소리가 올라왔습니다.
“폐하, 만수무강하소서. 저는 무사하나이다. 하느님께서 당신 천사를 보내시어 사자의 입을 막으셨습니다. 내 주 하느님께서는 제게 아무 잘못도 없음을 아셨습니다.”
왕은 몹시 기뻐하며 종들에게 다니엘을 끌어내라 명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다니엘을 죽이라 부추긴 사람들을 사자굴에 던져 넣으라고 명했습니다. 다리오는 이 일을 자기 백성들에게 알리며 다니엘의 하느님을 두려워하라 명했습니다. 다니엘은 이전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바빌론의 왕들을 보필하며 늙어갔습니다. 다리오 왕이 죽은 뒤 고레스 왕은 다니엘을 페르시아의 수도로 데리고 가 왕의 고문으로 세웠습니다. 정치가이며 하느님의 예언자이기도 한 다니엘은 천사의 명을 받아 예언서를 쓰기도 했습니다. 그는 고레스 왕이 히브리 백성들을 고향에 돌아가는 칙령을 발표할 때까지도 살아 있었습니다.
마침내 고레스 왕은 온 땅에 칙령을 발표했습니다.
“하늘 높은 곳에 계신 하느님께서 내게 이 땅의 모든 나라를 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내게 예루살렘의 성전을 다시 지으라 명령하셨습니다. 너희 유다 백성 가운데 누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하느님의 성전을 짓겠느냐?”
성인 남자만 4만이나 되는 유다 백성이 조상의 땅으로 돌아갈 준비를 마치고 유프라테스 강가 골짜기 앞에 모여들었습니다. 이들의 지도자는 젊고 용감한 스룹바벨이었습니다. 바빌론에서 자리를 잡아 부유해진 자들은 귀향 대신 성전 재건을 도울 값나가는 물건들을 보냈습니다. 다니엘은 연로해 먼 여행길에 나서지 못했습니다. 고레스 왕은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그릇들도 함께 되돌려 보내주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실로 참담하게 허물어져 있었습니다. 히브리 백성들은 쓰레기들을 치우고 돌을 모아 새로운 제단을 만들 채비를 갖추었습니다. 아침저녁 모세의 율법을 따라 제사를 지냈습니다. 겨울을 나고 봄이 되자 그들은 성전 재건을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