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론적으로 변해가는 희망
사마리아 지역에 살던 사람들과 귀향한 유다인들 사이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성전 재건을 탐탁지 않아 한 사마리아인들은 건축을 방해했습니다. 바빌론에 아하수에로가 새로운 왕이 되자 사마리아인들은 그에게 편지를 써서 유다 백성이 성전 건축을 마치면 더 이상 세금을 내지 않을 것이며 이는 곧 페르시아가 요단강 너머 땅을 빼앗김을 뜻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그들의 말을 듣고 성전 재건을 중단하라고 명했습니다. 성전은 짓다 만 채로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다리오 왕이 페르시아를 통치할 때 유다의 예언자 학개는 백성들을 설득하여 성전을 재건하게 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사마리아인들은 이 사실을 왕에게 고자질했습니다. 하지만 다리오는 고레스 시절의 기록을 찾아내고 유다 백성의 편을 들었습니다. 유다 백성은 마침내 성전을 다 지을 수 있었습니다.
아닥사스다가 페르시아 왕으로 있을 때, 바빌론에는 하느님의 말씀을 글로 적는 서기관으로 일하는 에스라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여러 곳에 흩어져 사는 동포들이 율법을 배우고 따르기를 원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에스라와 모든 유다 백성이 자유롭게 예루살렘을 왕래하도록 허락했습니다. 왕의 발표를 들은 에스라가 말했습니다. “예루살렘을 아름답게 할 마음을 임금에게 불어넣어주신 하느님을 찬양하라.”
넉 달이나 걸려 예루살렘에 다다른 에스라와 그의 일행은 스룹바벨이 지은 성전을 보고 기쁨에 차 제사를 바쳤습니다. 하지만 그는 곧 자기 고향이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하느님을 모르는 여인들과 결혼하여 제사로부터 멀어졌고 그들의 자식들에게 율법을 가르치지도 않았으며 성벽을 관리하지도 않았습니다. 에스라는 동족의 죄를 위해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학개, 즈가리야 등 백성들을 보살피던 예언자들은 심지어 예루살렘 성을 새롭게 다시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새로운 민족공동체를 건설할 꿈에 한껏 부풀어 있던 히브리 민중은 성전 재건과 동시에 사회질서가 귀환한 지배층 중심으로 재편되는 모습을 보며 실망하고 낙담했습니다. 성전을 장악한 이들은 다른 사람들을 철저히 주변으로 밀어내고 억압하며 폭력마저 일삼았습니다. ‘억압당하는 이를 풀어주고 굶주린 이를 먹여주며 헐벗은 이를 입혀주고 제 이웃을 모른 체하지 않는’ 세상은 오지 않았습니다. 민중의 희망은 종말론적으로 변화했습니다. 성전 건축에 대한 민중의 기대는 사라지고, 하느님의 충성스러운 예언자들은 성전을 짓겠다고 나선 이들을 오히려 질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을 시중드는 젊은 귀족이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을 다녀온 자기 형제들로부터 그곳 사정이 엉망이란 이야기를 듣고 낙담했습니다. 그는 왕과 왕비에게 청해 왕의 편지를 품은 채 장군들과 군인들을 이끌고 고향을 찾았습니다. 느헤미야는 말을 타고 성을 돌아다니며 성 쌓는 일을 감독했습니다. 52일에 걸쳐 마침내 성을 다 쌓은 느헤미야는 그 후로도 12년을 예루살렘에 머물며 성을 다스렸습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노력으로 백성들은 율법에 충실해지고 우상 숭배를 멀리 하게 되었습니다.
느헤미야가 늙어 세상을 떠나기 전 예언자 말라기가 나와 자기 백성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는 제사장을 비롯한 지배층의 잘못을 지적하는 한편, 백성들 사이에 엘리야가 다시 오고 이어 메시야가 올 것이라 예언했습니다.
“해 뜨는 곳부터 해 지는 곳까지 이방 민족 사이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다. 여러 곳에서 내 이름을 위해 향을 올리며 순결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사이에서 매우 크게 될 것임이니라.”(말라기 1:11)
“보라, 내가 이제 특사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예언자 엘리야를 보내리라.”(말라기 3:1, 23)*
* 일부 성서는 말라기 3장 19-24절을 4장 1~6절로 편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