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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귀니 Apr 16. 2024

인생은 새옹지마

대학병원 응급실과 걸음마 사이 그 어딘가 즈음에서 찾은 행복


요즘 부쩍 호기심이 많아진 우리 사랑이.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마조마했는데 결국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주방에서 놀다가 눈 깜짝할 새 쇠고리를 입에 물었고

급히 뺐지만 피가 철철 흐르는 유혈사태에 온 가족이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평소 방문하던 동네 소아과로 가보려 했으나 하필이면 오후 1시.  점심시간이 맞물려 속이 타들어갔다.


오후 2시가 되자마자 접수하고 진료를 봤다.


"의뢰서 써 드릴 테니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 보세요."


집에 어른이 셋이나 있었는데 지켜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지만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 통화결과 진료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전공의 파업사태로 많이 걱정했는데 다행이라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허겁지겁 도착한 대학병원 응급실.


"지금은 딱히 출혈양상이 없어 보여요. 잇몸은 금방 치유되는 편이거든요. 원하시면 치과병원 진료로 연계해 드릴게요."


치과병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입을 벌리지 않으려는 아기와 의료진 간의 팽팽한 사투가 시작되었다.


"그냥 엄마가 나쁜 사람 할게."


이 악물고 버둥거리는 아기의 머리를 부여잡았다.

결국 귀가조치되었다.


"일단 진료는 보셔서 수납은 하셔야 해요."


원무과로 가서 수납 대기표를 뽑았다. 오래 대기한 끝에 순서가 돌아왔다. 어이없게도 진료과에서 업무처리가 되지 않아 수납이 불가한 상황이라는 직원의 답변에 짜증이 났다.


"일 처리를 이렇게 하시면 안 되죠."

"진료과에서 코드 넣는데 시간이 좀 걸려서요."


입 벌리고 확인한 것 말고 시행된 처치가 없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렸다.


"그냥 귀가하시랍니다."


결국 언성이 높아졌다.


"그럼 처음부터 그냥 가라고 말하면 되잖아요오오!!!!"


또다시 돌아오는 변명에 대꾸할 가치를 못 느끼고 돌아섰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이 한마디가 그리 어려운가?


사람이 하는 일이니 실수할 수 있다.

그렇지만 명색이 대학병원인데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이 정도밖에 안 된다고?

너무나 실망한 나머지 고객의 소리 게시판에 항의했다.


집에 돌아오니 녹초가 되었지만 이유식과 분유를 잘 먹는 사랑이를 보니 안심이 되었다.


저녁 7시.

갑자기 사랑이의 걸음마 포텐이 터지기 시작했다.


"XX 대학병원이 터가 좋은가? 이게 무슨 일이야?"


나란 인간. 이 정도로 간사한 사람이었던가?

좀 간사하면 어떤가?

우리 아기가 걷기 시작했단 말이다.

인생.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의글은 지우지 않았다. 아닌 건 아닌 거고 나의 분노는 정당했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기에.


인생사 새옹지마라더니. 

스펙터클한 오늘 하루, 수고한 나에게 상을 줬다.



이마트 피자와 하삼동 커피로 묵은 체증을 씻어냈다.


역시 스트레스엔 밀가루와 카페인이 최고라는 건 불변의 진리다.


갑자기 일어난 유혈사태에 예정되어 있던 내 스케줄이 꼬여버렸지만 사랑이가 무사하니 그걸로 충분하다.


"이 정도라서 다행이야."


잠든 아기 얼굴을 바라보며 속삭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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