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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며느리가 눈이 좋은 이유

by 펭귀니




어릴 때는 눈을 좋아했다.
눈 구경하기 힘든 경상도 출신이라 그런지
왠지 모를 로망이 있었다고나 할까.

청소년기에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에
로맨틱하게 데이트하는 장면을 상상하기도 했었다.

세월이 흐르고 어른이 되어
매년 눈이 내리는 곳에 살게 되었다.

눈은 생각보다 불편했다.

특히 허리 디스크 발병 후에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하는 게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자차로 장거리 출퇴근을 하던 시절에는
교통사고가 두려워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2025년 설날.
폭설이 내린 덕분에 시댁 산소에 가지 않기로 결정되었다.

이번 설날을 마지막으로
산소를 없앤다고 하신다.

기분이 좋아서 눈 속으로 뛰어들고 싶었지만
차마 내색할 수 없었다.
고개를 돌리고 기침하는 척하며
가방에 넣어둔 마스크를 찾아 얼굴을 가렸다.
마스크는 나의 페르소나가 되어
한껏 솟아오른 내 입꼬리를 가릴 수 있게 도와주었다.

마침 그 순간 운명처럼 마주한 눈 오리.
내 안에 죽은 줄 알았던 소녀가 깨어나기 시작했다.

눈이 좋은 걸까
산소에 안 가는 게 좋은 걸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2025년 설날에 내린 눈은
내 안에 소중하게 담아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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