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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귀니 Jan 29. 2024

달밤의 산책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

“누나. 나가야지. 그러다가 사랑이 초등학교 입학식에도 못 가고 병원에 드러눕는 수가 있어.”     


나보다 6살 어린 우리 집 늦둥이 남동생은 매일 밤 협박에 가까운 경고로 산책을 종용한다. 동생의 충격요법으로 툴툴거리면서도 신발을 고쳐 신는 난 이불속이 가장 좋은 36세 ENFP 아줌마다.     


“그래 알았어. 잠시 기다려. 간다 가!”     


야무지게 장갑까지 끼고 달밤의 산책이 시작되었다.     


“누나는 허리디스크가 심해서 오르막길은 너무 무리해서 가면 안 돼!”

“그거 운동 부족이야. 나만 믿고 따라오셔.”     


사실 운동 부족이라는 건 내가 제일 잘 안다. 허리디스크 자체가 운동이 부족한 사람에게 오는 질병이기 때문이다. 평소 운동 부족에 출산까지 했기에 나야말로 허리디스크의 위험 인자를 두루두루 갖춘 셈이다. 겪어본 내가 동생보다 허리디스크를 더 잘 알기에 동생을 설득하려다가 그만뒀다. 이전에 엘리베이터 고장으로 20층까지 계단을 올랐을 때 찌릿찌릿한 통증으로 하루 정도 힘들었지만 다음 날 그럭저럭 괜찮았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윽. 위험한데...’     


아침이 되었다.      


“악!”     


올 것이 왔다. 고강도의 운동으로 나의 천추 1번에 발작버튼이 눌려진 것이다. 결국 한의원에서 약침을 맞았다.     


“어휴. 요즘 여기는 안 이랬잖아요. 왜 이런 거예요?”     


한의원 원장님께서 토끼눈이 되어 다그치신다.     


“동생이 저 산책시키다가요.”     


강아지도 아니고 동생이 나를 산책시키다니. 내가 말해 놓고도 표현이 웃겨서 이 와중에도 웃음이 끅끅 차 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누나를 많이 챙기는구나. 그래도 지금은 오르막길은 심하게 오르면 안 돼요.”

“네.”     


집에 돌아오자 동생이 괜찮냐며 묻는다.     


“침 맞으니 당장 통증은 줄었는데 오르막길은 가지 말래.”

“내 생각보다 많이 안 좋구먼. 그럼 오늘밤부터는 평지로 1시간 걸으면 되겠다.”     


아뿔싸! 이건 내가 원한 방향이 아니다. 다시 밤이 찾아왔다.     


“나가야지~  오늘은 평지로!”     


이미 충격요법으로 단련되었기에 아무 말 없이 따라나선다. 우리 집은 대학가 근처에 위치한 아파트라 걷다 보니 각종 야식의 유혹이 도사리고 있다.     


“분명 산책하러 나온 건데 맛있는 게 왜 이리 많아?”

“닭강정이랑 명물토스트 중에 하나만 고르셔.”

“닭강정이지!”

“지금 사면 식으니까 돌아오는 길에 사자.”     


그렇게 돌아오는 길에 사 온 닭강정. 집에 도착하자마자 동생이 그릇에 닭강정 몇 개를 덜어준다.      

이걸 다 먹은 건 아니고 여기에서 몇 개를 덜어준 것이니 오해는 하지 마시기를

“밤에 너무 많이 먹으면 몸에 안 좋으니 이만큼만 먹고 내일 에어프라이어에 돌려먹자.”     


닭강정을 다 먹어갈 때쯤 콜라를 반 컵정도 따라서 내게 건넨다.     


“콜라는 이 만큼만 마셔.”

“어휴. 자고로 콜라는 큰 컵에 듬뿍 따라서 들이켜야 제 맛인데.”

“또 병원에 드러누울 텐가?”     


또다시 날아온 충격요법. 조용히 콜라반컵을 마신다.     


“운동 간 줄 알았더니 닭강정을 사 왔네?”     


방에 계시던 엄마가 부엌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나오셨다.     


“응. 닭강정 러 간 김에 조금 걸었지.”

“어휴. 못살아 내가!”     


이내 웃음꽃이 피어오른다.     


내 동생은 평소 운동을 좋아하고 잘하기에 나를 데리고 다니는 것이 많이 답답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걸음을 맞추고 잘 따라오고 있는지 살피는 마음이 고맙다.     


엄마는 내가 야식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마도 큰맘 먹고 동생 따라 산책하려는 나의 소소한 기쁨을 빼앗지 않으시려고 적당히 넘어가주신 것 같다. 잔소리를 참아주시는 엄마의 마음이 감사하다.     


아파서 힘들었지만 함께 견뎌주는 가족의 사랑으로 희망을 잃지 않고 또 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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