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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귀니 Feb 12. 2024

배달치킨이 쏘아 올린 작은 공

부적절한 감정표현은 자괴감을 부른다

연휴 마지막날 설레는 맘으로 주문한 배달치킨이 한 시간이 지나도 도착하지 않았다. 칸트보다 정확한 내 배꼽시계가 요동을 치며 살려달라 아우성을 쳤다.


기다림에 지쳐 가게 측에 항의전화를 걸었다. 조리는 끝난 상태이지만 기사님 배정이 늦어져서 언제 도착할지 모른다는 답변에 화를 참기가 힘들었다.


"그게 말이 되냐 고요!"


악에 받쳐 결국 진상을 부리고야 말았다. 가족들이 옆에서 말린 덕분에 겨우 진정했다.


"화낸다고 해결되지 않잖아."


결국 동생이 이 사태를 수습했다.


배달음식이 늦게 도착하는 일. 살다 보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배달기사님 배정이 늦어져서 언제 도착할지 모른다는 말 이전에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고 싶었다.


난 치킨에 진심인데 내 진심을 몰라주다니.


하지만 성급한 화는 그저 스스로를 진상고객으로 격하시킬 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치킨 앞에서 이성을 잃은 스스로를 향한 자괴감만 남을 뿐.


내 분노의 원인은 정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례하게 감정을 쏟아내는 행동까지 정당한 것은 아니다. 눈을 감고 지난날을 돌아본다. 억울해서 울컥 쏟아낸 마음은 어김없이 손해로 돌아왔다.


"내가 참 별로라는 생각이 들어."


가족들 앞에서 내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철들었네 철들었어. 반성할 줄 알고."


엄마가 무심하게 던진 말이 내 마음을 울린다.


어떤 감정이든 존존중받아하며 각자의 마음에는 이유가 있다. 그러나 부적절한 방식으로 표현된 마음은 반드시 스스로를 향한 화살로 돌아온다.


"가게에 전화해서 죄송하다고 할까?"

"가게 측에서도 잘못한 부분이 있으니 그냥 다음부터 안 그러면 되지."


 내가 쏟아낸 화를 수습해 주고 나의 서투른 모습에도 철들었다고 말해주는 가족의 사랑이 나로 하여금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한다. 때때로 욱하지만 스스로를 돌아볼 줄 아는 나라는 존재. 별로라기보다는 꽤 괜찮은 사람 같다. 역시 사람을 움직이는 건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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