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그곳, 그 사람들 - ①
황색의 자연, 모뉴먼트 밸리. 황홀한 기분에 빠져 나바호족의 노랫가락을 듣고 있었다. 멀찍이 둘러싼 바위산들은 정기를 모아 내게 불어주는 듯했다. 원주민 가이드는 친절하게도 오전의 가이드 일정을 마치고 나를 위한 생일 축가를 불러 주었다. 원주민 보호구역을 여행하는 날이 우연히 내 생일과 겹쳤던 것이다. 영혼을 위로해주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알아듣지 못하는 원주민 언어였지만 중저음의 목소리와 단단한 어조가 나를 감쌌다. 일행들의 부러워하는 눈길에 쑥스러웠지만 감동이 밀려들어 내내 미소를 짓게 되었다.
이때는 미국 횡단 여행을 시작한 지 약 2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많은 서부영화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이곳은 커다란 바위산들이 장엄한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바위산들의 위치를 구분하기 위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각 바위산들에는 세 자매 바위라든지 겉모습의 특징을 살린 별명들이 지어져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까지는 묻지 못했지만 바위산과 관련해서 인디언들의 조상 때부터 내려온 전래동화가 있을 것만 같았다. 모래바람을 뒤로하고 지프차는 정해진 코스를 돌았다. 고대의 낙서 흔적을 보기도 하고 자연이 깎아낸 바위기둥에 감탄하며 사진을 찍어댔다.
황색 자연이 석양의 붉은빛을 거쳐 어두운 색이 되었을 때 기분은 이상하게 더욱 상기되었다. 장작불을 가운데 두고 원주민들은 전통 춤을 추었고 여행자들도 그 분위기에 덩달아 춤을 추기도 하며 웃고 떠들었다. 생일선물로 나바호족이 직접 비즈를 엮어 만든 팔찌를 받았다. 나는 곧바로 빨강 테두리에 파란 구슬이 꿰어진 그 팔찌를 찼다. 여행자들의 얼굴을 붉게 물들이는 장작 불길을 보면서, 그 팔찌를 소중히 쓰다듬었다. 나바호족은 북아메리카 원주민 중 최대 부족이라는 명맥을 지켜오며 이 같은 수공예 제작기술 같은 전통문화도 잘 유지해왔다. 이들의 온화한 미소와 넉넉한 마음속에 오히려 모진 풍파를 견뎌낸 강인함이 느껴졌다.
밤에 나바호족의 전통 천막집에서 1박을 하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난관은 모두들 잠에 든 새벽에 화장실에 가고 싶었을 때 생겼다. 화장실은 우리나라 재래식 화장실 같은 형태를 갖추고 숙소에서 약 100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용기를 냈다. 핸드폰의 전등을 켜고 천막집의 문을 슬쩍 열어보았다. 황토의 땅에는 간이 전등이 몇 개 세워져 있었고, 하늘에는 별들이 수줍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대로 화장실로 급하게 달려갔다. 빠르게 일을 보고 다시 천막으로 돌아가는 길은 아까와 달리 엄청 무섭지는 않았다. 이 황량한 땅에 무슨 위협이 있겠는가! 슬쩍 느긋하게 걸어 천막집 앞에 도착했는데 어두운 형체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앗 뭐야! 친구 중 하나일 것이라고 예상하면서도 가슴은 조마조마해졌다. 역시 화장실을 가려고 했던 반가운 얼굴의 외국인 친구였다. 잇츠 스캐어리, 롸잇? 괜히 쿨한 척 말을 건네며 웃음을 지었다. 왠지 바로 천막집으로 들어가기는 아쉬웠다. 낮에 보았던 장엄한 바위산은 웅크린 매머드가 되어 잠을 청하고 있었다.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그 자연은 이 여행을 시작한 계기가 되었던 나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독여주는 것 같았다.
미국 횡단 여행을 가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하나로 단정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내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 선택을 하고 나서 가게 된 여행이었다. 약 2년간 잘 다니던 학과에서 나는 전과라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수많은 고민과 상담 끝에 결정한 것이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추진했다. 서류심사를 통과한 후, 마지막으로 학과장님과의 인터뷰 일정이 잡혔다. 아뿔싸. 나는 그 일정이 미국 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인 뉴욕 일정과 겹친 것을 알아냈다. 학교 행정실에 전화하여 중요한 일정이 있다고 둘러대며 혹시 인터뷰 일정을 앞당겨 주실 수는 없겠느냐고 지금 생각하면 다소 건방진 문의를 했다. 담당자분의 답은 깔끔했다. “중요한 일을 우선으로 선택하시면 됩니다.” 마음을 깔끔하게 정리해준 문장이었다. 맞다. 바짓가랑이라도 잡는 심정으로 희망을 가져본 것이었을 뿐, 나는 답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항공편 일정을 미루게 되어 뉴욕 여행 일정은 통째로 날아가게 되었다. 이후 여행을 하던 중 최종 전과 확정 통보를 받았을 때, 나는 올바른 결정을 한 것이었다고 스스로 칭찬해줄 수 있었다.
미 동쪽의 뉴욕에서 시작해 서쪽의 로스앤젤레스까지 외국인 친구들과 밴을 타고 미국을 횡단한 시기는 2013년으로, 무려 9년 전의 일이었다. 기억에 특히 남는 여행지와 사건들을 위주로 당시에 쓴 일기를 참고하며 여행 에세이를 써본다. 찍었던 사진이 몇 장 남지 않아 어떤 그림은 스케치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