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받을 용기
모두가 나를 미워한다. 남의 집에 내 새끼를 낳았다고, 그 새끼가 주인 행세를 한다고, 뭘 잘했다고 그렇게 시끄럽게 우냐고 한다. 하지만 부끄럽지 않다. 난 미움받을 용기로 살아가는 뻐꾸기 '엄마'다.
변명이든 해명이든 해야 할 것 같다. 이곳에 오려고 팔십 일 동안 쉬지 않고 날아왔다. 탄자니아를 떠나 인도 델리를 거쳐 날개가 빠지도록 날아오느라 지쳐있다. 집 지을 힘은 애당초 남아있지 않다. 오직 내 새끼의 '첫 집'을 찾아줄 생각뿐이다. 며칠째 숲속을 헤매고 있다. 그때,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일일이 부리로 껍질을 벗겨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거기에 잘 마른 잎만을 골라 몇 날 며칠을, 거미줄을 이용해 야무지게도 집을 짓고 있다. 단박에 알아보았다. 폭우에도, 세찬 바람에도 끄떡없을 집이다. 그녀의 이름은 '붉은 머리 오목눈' 일명 '뱁새'이다.
그녀가 알을 네 개나 낳았다. 영롱한 비취 알처럼 앙증맞은 알들이다. 나 역시, 본 적 없는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적 본능으로 같은 색의 알을 낳을 수 있다. 그녀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잽싸게 그 집으로 날아갔다. 십 초면 충분하다. 내 새끼를 낳을 시간으로. 그녀가 보면 기절할지도 모를 커다란 알 하나를 낳아놓고, 뒤도 안 돌아보고 냅다 줄행랑쳤다. 그녀가 유독 착해 보이기도 했지만, 제 새끼가 아닌 줄 알면서도 품어주리라는 것을 난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뻐꾹뻐꾹"
다급한 남정네들의 울음이 온 산을 울린다. 그들이 울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봄이 끝났다'라고 말한다. 여름의 전설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제 '속도 없다'는 오해를 받는 뱁새에게 입장을 표명할 기회를 줘야겠다. 나를 '싹퉁바가지'라고 부를지도 모르겠다.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설마 했는데 역시나. 온 동네에 소문난 '싹퉁바가지'인 뻐꾸기 엄마가 다녀갔나 보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귀여운 알들 옆에 떡 하니, 똑 저를 닮은 볼품없이 커다란 알을 낳아 놓고 갔다. 내가 아무리 만만해 보여도 그렇지, 이럴 순 없다. 나도 눈이 있다. 보면 안다. 흔히들 말하는 '새대가리'라서 아무것도 모른 채 품어주는 게 아니다. 옆집 엄마는 제 알이 아니라고 쪼아서 깨버리고 집을 떠나버렸다. 제 새끼도 버려둔 채 가버렸다. 그러니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무시를 당해도 할 말이 없는 거다.
난 그렇게는 못 한다. 낳았으니 책임져야 하고, 내 품에 들어왔으니 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내가 못마땅했는지 남편이 집에 얼씬도 하지 않는다. 독박 육아에 들어가야 할 듯하다. 운명의 장난처럼, 슬픔을 느낄 새도 없이 내 새끼를 잃었다. 내가 보고 있는데도 밀어냈다. 눈도 뜨지 못했으면서 날갯죽지가 꺾이도록 용을 쓰며 저만 살겠다고 그랬다. 다 밀어내고 신나 할 줄 알았더니, 꿈쩍도 하지 않는다. 녀석에게도 슬픔은 본능이었다.
내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 어찌 되는 건 아닐까 조바심이 났다. 발을 굴렀다. 녀석의 세상을 깨우려 집을 흔들었다. 곧 머나먼 여정을 시작해야 하는 생존 본능으로, 드디어 홍시 같은 주홍빛 부리를 벌렸다. 내 새끼 얼굴도 못 본 내가, 제 어미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녀석을 품었다. 덩치는 산만 해졌는데도 시도 때도 없이 밥 달라고 울어댄다. 녀석의 모가지에 내 머리를 쑥 집어넣으며 밥을 주는데도 무섭지가 않다. 난 두려움이 없는 '엄마'이기 때문이다.
녀석이 첫 비행을 시도하려 날개를 퍼덕거린다. 가르쳐준 적도 없는데 기특하다. 알을 깨고 나왔을 때, 알고는 있었지만 나를 하나도 닮지 않아 못내 섭섭했던 마음도 온데간데없다. 눈앞의 참나무 가지로 날아가는 데 보름이 걸렸다. 아직은 서툴다. 보름 정도만 더 보살펴주면 혼자서도 너끈히 살아갈 수 있는 어른이 될 것이다. 제 엄마처럼 뒤도 안 돌아보고 나를 떠나겠지만, 어차피 뭘 바라고 키워준 게 아니지 않는가. 떠날 시간이 되었다. 제 엄마를 따라갈 수도 없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를 것 같지만, 녀석의 날개에는 바람의 지도가 새겨져 있다. 본능적으로 그 먼 여정을 따라 훨훨 날아갈 것이다. 이런 나를 보며 인간도 할 말이 있지 싶다. 짧게라도 기회를 줘야겠다.
뱁새 눈에도 내가 뻐꾸기와 별반 다르지 않았나 보다. 염치없지만, 어렵게 얻은 기회이니 마다하지는 않겠다. 나는 엄마의 둥지에 내 알을 낳았다. 그것도 모자라, 나까지 얹어서 그 둥지를 차지했다. 낡았지만, 나에겐 더없이 포근한, 떠나고 싶지 않은 둥지였다. 그리고 거기엔 품을 줄만 아는 엄마가 계셨다. 싹퉁바가지였던 삶을 반성한다. 엄마의 시간을 밀어내고, 내 시간을 밀어 넣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날아가는 동안, 엄마의 비취색 같던 여름은 전설이 되었다.
생존 본능이 역사를 만든다. 사랑에 대한 본능이 전설을 만든다. 누군가는 뻐꾸기여야 하고, 또 누군가는 뱁새가 되어야 가능한 전설이다. 누군가 자신의 알을 깨고 나오고 싶어 한다면, 그런 누군가를 품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뱁새가 품이 넓어서 자신보다 큰 뻐꾸기를 품어준 게 아니지 않는가. 따뜻한 사랑의 온기를 나누는 것만으로 족하다는 걸, '여름의 전설'이 속삭이듯 들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