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내가 보이나요?

투명한 마음

by 펜끝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투명하다 못해 적나라하기까지 한 나의 실체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갈수록 사진 찍을 일이 많아진다. 치과를 비롯해 정형외과, 신경외과, 내과.... 첨단 장비로 찍힌 사진들을 본다. 내 몸인데도, 누가 설명해 주지 않으면 알아볼 수가 없다. 배경 하나 없이 삭막하기 짝이 없는 사진이 낯설기만 하다. 뼈 마디마디를 눈으로 훑는다. 오장육부를 훤히 들여다보는 동안 의사의 잔소리 같은 설명이 이어진다. 그런 나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듯이 주사를 놓고, 혹을 떼어내고, 약을 처방한다. 앙상하게 드러난 뼈 사진을 보며 중얼거린다. '못났다.'


이렇게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세상이지만, 단 하나 찍을 수 없는 게 있다. 마음이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누구도 본 적 없고, 찍을 수조차 없는 투명한 마음이다. 보여주고 싶고, 보고 싶어서 애를 써보지만, 정작 내가 바라던 마음의 모양과는 다를 때가 많다. '마음'을 보여달라고 했더니, 자신이 가진 것들을 보여준다. 눈에 보이는 성과와 물질적인 것들이다. 그것들이 마음이 아닌데도, 그게 전부라 말한다. 그게 없으면, 존재가 없는 사람처럼, 투명 인간 대하듯 한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마음은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곡을 연주하든 모든 예술은 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닐지 생각한다. 투명한 마음이 보인다면, 보이게 되었다면 그게 예술이다. 그런 이유로 우린 모두 예술가라 할 수 있다. 굳이 예술가라고 티를 내지 않아도 존재로 증명되기 마련이다. 우긴다고 되는 건 아니라는 것도 안다.


글을 읽으며 신비로운 경험을 한다. 단지 문장 하나에 그 사람의 마음이 보이는 때가 있다. 투명한 마음에 감정의 색이 입혀지고, 마침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말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총천연색으로 색을 입고 펼쳐진다. 어느 하나, 같은 색이 없다. 어떤 문장은 내가 알고 있는 가장 값비싸고 투명한 돌, 다이아몬드보다 더 빛난다. 나를 대신해 내 마음을 표현해 주는 것 같아 가슴이 뛴다. 그렇게 그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다듬어지지 않았던 내 마음까지 서서히 빛을 내기 시작하는 듯하다.


마음을 읽는다는 건 그래서 좋다. 투명 인간이 아니라, '투명한 마음을 지닌 인간'으로 '살아있음'이 확인되는 순간이다. 돌멩이같이 굳어가던 마음을 펜 끝으로 조금씩 쪼아 대다 보면, 그 속에 웅크리고 있던 투명한 마음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그 마음을 꺼내 빛을 보게 하고 싶다. 미켈란젤로의 말이 떠오른다.

"나는 대리석 안의 천사를 보았고, 그를 자유롭게 해줄 때까지 조각했다."

오늘, 오백 년의 시간을 건너온 그의 말에서 '희망'을 읽는다.

ChatGPT Image 2025년 12월 23일 오전 10_29_15.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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