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쓴 그날
지난 글을 뒤적였다. 글쓰기를 시작한 건 작년 겨울이었다. 한 번도 다시 읽어보지 않았었다. 그날의 나는, 날것 그대로였다. 이제는 쓸 수 없는 감정일지 몰라 그대로 옮겨본다.
2024. 02. 26
바로 눈뜨자마자 글을 쓰고 싶었다. 또 다른 내가 글을 쓰는 시간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런데 배가 아파서 화장실부터 갔다. 제기랄. 이건 내가 사랑하는 순간을 맞이하는 순서가 아닌데 어쩔 수가 없다. 의식이니 무의식이니 하는 고차원적 느낌도 기본적인 배설 앞에선 힘을 쓰지 못한다. 시원하게 쏟고 쓰면 될 일이다. 내키지 않아도 그게 우선이다. 언제나 살아가는 방식은 이런 기본적 욕구가 해결되지 않으면 뜬구름이다. 귀가 간지럽기 시작한다. 병원부터 들러야겠다. 누군가 내 얘기를 해서 그런 거라면 '그 입 좀 다물라'고 하고 싶다.
예기치 않았던 변수들은 귀찮은 일이다. 자주 더 자주 그리고 오래 나를 괴롭힐지 모른다. 나이가 든다는 건 이런 하찮은 일들에 사로잡히는 일상일지 모른다. 하찮은 건 때로 위협적이다. 어떤 모습으로 변해서 나를 골탕 먹일지 모른다. 책과 엉겨 붙은 하루하루를 보내는 게 행복이라 여기다가, 어느 날 갑자기 쳐다보지도 않는 순간이 생길까 봐 두렵다. 글을 쓰겠다는 설렘이 어느 순간 부질없다 여기고 글 한 줄 쓰지 않는 날들을 보내게 될까 무섭다. 오래 버티고 싶다. 죽는 날까지 놓치지 않고 계속 이어가고 싶다.
누가 뭐라든, 내가 주눅 들지 않고 돈에 휘둘리지 않고, 그냥 쓰고 웃으면서 밤을 새우고 희열에 차고 때론 짜증 섞인 하루를 보내더라도 하고픈 일을 하며 살기를 바라는 이가 있다. 간밤에 꿈을 꾸었다. 웃기지도 않는 꿈이다. 나도 그도 바람을 피우는 꿈이다. 상황 설명은 할 수 없다. 말이 되지 않으니,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즐거운 꿈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슬픈 꿈도 아니었다. 헤어지지 않았으므로 슬프지 않았고, 열렬히 사랑하지 않았으므로 기쁘지 않았다.
여전히 눈을 감고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일부러라도 눈을 감는다. 무의식은 마치 어둠 속에서만 활동한다는 생각이 든다. 의식적일 때는 생각지도 않을 일을 글로 쓰는 일이다. 이렇게 매일, 되지도 않는 글을 쓰다 보면 모습을 보여준다고 했다.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무슨 의식을 치르듯 이 소리를 듣고 나타나 주기를 바란다. 내가 나를 기다리고, 보고 싶어 한다. 현실의 내 얼굴이 아니길 간절히 바란다. 현실의 나는 쇠락해 가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바람은 간절해진다. 쇠락은 무엇인가. 육체적 한계를 매일매일 실감하는 것. 사업적 압박이 내가 느끼는 쇠락이다. 이 모든 걸 한 방에 묻어버릴, 아니 생각나지 않게 해 줄 존재가 내 안에 있으리라는 믿음이 신앙처럼 변하고 있다. 의존적인 삶을 경멸하지만 지금 상태는 존나 기도를 올리는 종교인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출근해야 할 시간이다. 이뻐 보이고 싶어 사둔 옷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날씨가 춥다. 이런 날씨에 입고 나갔다가는 그 마음이 들킬 것이다. 이쁘지 않은 채로 이뻐 보이고 싶은 마음 말이다.
마침내, 그날의 나를 읽었다. 다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