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하게 맨땅에 헤딩 중!

'쓰는 삶'에 대한 도전

by 펜끝


"자기야, '맨땅에 헤딩'이란 제목으로 뭘 쓰면 좋을까?"

"지금 하는 거 쓰면 되겠네. 당신이 한 것 중에 글 쓴다고 하는 게 제일 맨땅인 것 같은데...."

아, 진짜 얄밉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눈 한번 감았다 뜨니 인생이란 경기장 한가운데 서 있는 내가 보인다.


인생 스코어 1:1 후반전 종료가 얼마 남지 않았다. 한 골이라도 넣어서 체면치레는 했다 했더니 상대방도 한 골을 보란 듯이 넣는다. 폭신폭신한 잔디도 아니고 먼지 풀풀 날리는 흙바닥에서 이리저리 공을 굴리며 뛰어다니다 보니 꼴이 말이 아니다. 그럴싸한 유니폼 하나 없이 땀에 전 모습이 영락없는 절인 배추다. 휘슬이 울린다. 풀린 다리를 끌고 간신히 벤치에 가 앉는다. 감독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너나 잘하세요'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간들간들한다. 입속에 털어 넣은 물 한 모금으로 그 말을 꿀꺽 삼킨다.

회심의 쐐기 골 한 번 넣어보고 싶다. 마음이 급해진다. 북소리인가? '둥둥둥둥' 다시 심장이 벌렁거린다. 연장전이 시작되었다. 이 한번 꽉 깨물고 필드로 나간다.


'앗! 공이다. 나에게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고 있다. 온몸을 잔뜩 공글렸다가 다리를 쭈욱 뻗으며 솟아올랐다. 드디어 몸이 공중에 떴다고 생각한 순간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번쩍 뜨고 있어도 슈팅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데 지레 겁을 집어먹고 눈을 감은 채로 머리를 쑥 뽑아 올린다. 뭔가 큰 불덩어리가 머리에 닿는 느낌이다. 제대로 맞았나 보다.


머릿속에 커다란 종소리가 울리는 듯하다. 댕~~ 그리고 온 세상이 하얘진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누가 발목을 잡아당기기라도 하듯 쑥 밑으로 떨어졌다. 때리라는 골 대신 골대를 야무지게 받아버리고 그대로 뻗어버린 것이다. 실눈을 떠본다. 누군가 달려오고 있나 보다. 눈앞에 흙먼지가 뿌옇다. 가만있는 골대를 냅다 받아버린 걸 다들 봤겠지? 달려온 사람이 내 얼굴을 확인한다. 눈을 까뒤집어 본다. 그리고 뭐라고 말한다.

"괜찮으세요? 정신 좀 차려보세요"라며 내 뺨을 철썩철썩 갈긴다.

"(그럴 리가요)"

기절한 척하려다 몇 대 더 맞을 듯하여 살포시 눈을 떠본다.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일명 '쓰는 삶'에 대한 도전이다.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이다. 공대 출신이 펜을 잡아보려니 흰 종이가 축구경기장만큼이나 커 보인다. 유니폼은커녕 변변한 신발 한 켤레도 없이 경기장에 들어선 심정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지나갔는지 발밑은 옴팡지게 단단하다. 이 연장전에는 골키퍼가 없다. 골을 넣을 수만 있다면 막아설 사람이 없다는 거다. 뛰다가 힘들면 경기장을 나가도 된다. 하지만 언제는 안 그랬는가 싶다. 즐길 수만 있다면 시간제한도 없으니 얼마나 좋은가.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까짓거 맨발이면 어떠냐.


'쓰는 삶'이 나를 향해 날아온다. 이번엔 제대로 헤딩을 한번 해봐야겠다. 기절하든 나자빠지든 맨땅에 헤딩하면 할수록 나는 단단해질 것이다. 몸에 힘은 풀고 눈을 크게 뜨고 그 뜨거운 공을 향해 힘껏 뛰어오른다. 바람을 가르며 골망을 출렁거리게 할 멋진 골을 상상해 본다. 스코어가 바뀌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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