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왁커피
여행을 다녀온 친구가 선물을 내밀었다. 나름 커피 애호가인 나를 위해 특별히 사 온 거라며 길게 생색을 낸다. 비싸고 귀한 거라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루왁 커피야. 알지? 사향고양이가 싼 똥에서 건져낸 원두로 로스팅한 커피야"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그럼 이게 결국 똥차라는 거네!" 라고 말하고 말았다.
아무 똥이나 커피 원두가 들어있다고 로스팅해서 마시는 건 아니다. 키우는 고양이에게 원두를 먹여볼까 하는 생각일랑 해서는 안 된다. 그 맛이 도대체 어떨까 궁금해서 마음이 급해졌다. 제일 이쁜 커피잔을 꺼냈다. 손까지 떨어가며 조심스럽게 포장을 뜯고 한 방울씩 정성스럽게 커피를 내렸다. 드디어 마셔본다. 이게 뭐라고 가슴이 콩닥거린다. 코끝에 대고 킁킁거리며 향을 음미한다. 다행히 우려했던 그런 향은 나지 않는다. 드디어 입맞춤하듯 한 모금을 머금었다. 이건 뭐지?
기대가 너무 컸거나, 내 입이 소믈리에 수준이 아니거나 둘 중 하나다. 그냥 숭늉 맛이 나는 '똥차'를 들고, 종일 '똥똥똥' 거리며 생각에 잠긴다.
글이 써지지 않을 때, 마치 변비에 걸린 사람처럼 끙끙거린다. 하고 싶은 말과 소화되지 못한 삶의 깨달음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뱃속에서 점점 돌이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용을 써봐도 글이든 뭐든 나오는 거 하나 없이 붉으락푸르락 핏대만 세우고 있다. 심호흡 한번 다시 하고 책상 앞에 앉아 한 자 한 자에 힘을 줘본다. 뭐라도 나오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겨우 찔끔 닭똥 같은 글 한 줄을 써놓고 쳐다본다. 혹시라도 그 속에 귀한 씨앗이 들어있을지도 모른다는, 간절한 바람을 가득 담고 들여다본다. 말도 안 되는 문장이라도, 썼을 때는 다 이유가 있을 텐데 하면서 말이다. 구린내 대신 향기 나는 무언가로 피어날 이쁘디이쁜 씨앗이라도 보는 양 실눈을 뜨고 요리조리 살피다가, 아차 싶었다.
아끼다 똥 된다더니, 그 말이 딱 맞다. 감사의 말도, 사랑의 말도, 하고 싶었던 말 모두 너무 아꼈나 보다. 기록되지 못하고 기억 저편으로 날아가 버린 생각들은 또 어떤가.
기막힌 '똥차'를 마셔서인가 신호가 오기 시작한다. 서둘러 펜을 들고 학(항)문에 힘쓸 준비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