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한 반전

장대비 같던 딸의 사춘기

by 펜끝

뭔가 이상하다. 입고 있는 옷의 무늬가 흐릿하다. 빨래를 잘못한 건지 촉감도 여느 때와 같지가 않다. 요리조리 몸을 돌려보다가 보고 말았다. 옷을 야무지게도 뒤집어 입고 서 있는 나를 말이다.

어이가 없어 피식 웃고 말았다. 다시 고쳐 입으려다가 문득 그때가 떠올랐다. 그렇게나 내 속을 뒤집어 놓았던 그날이 생생해져 뒤집힌 옷을 입은 채로 이렇게 쓰고 있다.


딸아이의 사춘기는 여태껏 겪어보지 못한 매서운 한파였다.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그 속을 알 수가 없어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한 길도 안 되는 그 속을 확 뒤집어서 보고 싶었다. 도대체 뭐가 들어앉아 있길래 저러는 건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큰애는 사춘기가 여우비처럼 잠시였다. 그래서 방심했었다. 딸아이가 이런 반전을 가져올 지 몰랐다. 제 오빠의 몫까지 말 그대로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장대비를 쏟아부었다.


이건 뭐, 매운 시집살이도 아니고, 덩달아 벙어리 삼 년을 보내야 했다. 밤마다 심장을 꺼내 차가운 물에 식혀서 다시 넣고 싶을 정도였다. 말하지 못해 하얗게 재가 되어가는 내 속을 어르고 달랠 수만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다.

밤마다 편지를 썼다. 전하지도 못할 편지들이었다. 감정을 에둘러 글로 표현해 보려 했지만, 내뱉고 싶은 말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원망과 분노와 애원이 걸쭉하게 반죽이 된 그런 글을, 아니 마음을 썼다가 찢어버리기를 반복했다.

열다섯의 딸과 나는 온갖 감정들이 찐득하게 뒤엉켜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반죽과 같았다. 아이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발효 중이었는데, 부풀어 올라 터져버릴까 봐 지레 겁을 먹은 건 나였다. 예전에 나와 똑 닮아서 더 당황스러웠다. 그러다 또 그날의 엄마와 내가 겹쳐 보였다. 나는 반은 딸이었고, 반은 엄마인 채로 서성거렸다. 입을 열어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는 대신에 그 시간을 견뎌보기로 했다.


기름을 두르고 이 오묘한 반죽을 한 국자 떠서 팬에 펼치고 밑면이 구워질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저 다 타버리기 전에 뒤집을 수 있기만을 기도했다. 뒤집어보기 전에는 모른다. 덜 익었을지, 노릇하게 구워졌을지, 뒤집다 찢어질지, 한 번에 공중제비를 멋지게 돌고 탁 돌아누워 줄지 말이다. 뒤집지 못해 안달이었던 나보다 뜨거운 사춘기라는 불판 위에서 힘들어했을 딸아이를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칠 것 같지 않던 비가 물러나고 햇살 한줄기 선물하듯 아이는 자신의 나아갈 방향을 귀띔해 주었다.


이번엔 내 차례다. 나이가 들면 저절로 온전해지는 줄 알았다.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반죽 한 덩이 올려놓고 세월아 네월아 구워지기만을 기다렸나 보다. 무슨 재료가 들어있는지도 모르고, 간도 보지 않고, 하물며 불도 피우지도 않았다. 나도 내 속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정리되지 않은 채로, 마구잡이로 뒤섞인 경험들과 숙성되지 못한 생각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그 속을 홀라당 뒤집어 보고 싶어졌다.


쓸 만한 마음의 재료들을 송송 썰어 넣고, 이번엔 평소 먹지 않던 청양고추처럼 혀끝을 아리게 할 알싸한 감정들도 좀 넣어서 구워보려 한다. 온전한 내가 되기 위해 나머지 반을 뒤집어 봐야 할 때다.

반전(半煎)의 반전(反轉)을 위해 두려움 없이, 야무지게 한 번 더 나를 뒤집기 위해 몸을 띄워보려 한다. 고소한 반전을 고대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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