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삶의 동행을 만나다
뜻밖의 동행이었다. 간밤의 소나기로 흙 내음 가득한 숲길을 걷고 있었다. 저만치 앞서 걷는 이가 있다. 느긋하게 뒷짐을 지고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내게 말을 거는 듯했다. 어서 따라오라고.
산비둘기다. 뭔 새가 인기척에 놀라지도 않고 저리 유유자적일까 싶다. 문득, 이 산의 터줏대감일지도 모를 저 산신령 포스의 비둘기에게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다.
"인생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구구구구"
(구구절절하고, 구차하고, 구색 갖추기 어려운, 구만리 길이지)
어랏, 그럴듯하다.
"그럼 당신의 인생은 어떤가요?"
"구구구구"
(구질구질해 보여도, 구차하지 않고, 구린데 없이, 구김 없이 살려 했지)
분명 같은 답인데 영 딴판으로 들린다. 더 묻고 싶었는데, 어느새 사라져 보이질 않는다.
어제 하루는, 내 맘이 가닿지 않을 것만 같아 입술을 꽉 깨문 채로 소리를 질러댔었다. 애꿎은 돌멩이를 걷어차던 발이 멈칫했다. 뭔가 꿈틀거린다. 반들반들 윤이 나는 지렁이 한 마리가 온몸을 접었다 폈다 어지간히 용을 쓰며 기어간다. 데이트라도 있는 건지 궁금해져서 쪼그리고 앉아 슬쩍 물었다.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묻는 순간 아차 싶었는데, 말 없는 답이 돌아왔다.
'스멀스멀'
(스치는 순간, 멀어질 수 없는 사이라는 걸 알게 되지, 스며들고 물들어서, 멀리서도 느껴지는 그런 거지)
얄궂은 사랑 타령에 손끝이 오그라든다. 입 한 번 안 떼고, 몸으로 할 말 다 하는 고수가 틀림없다.
난 지금 누구랑 대화하는 걸까? 듣고 싶은 대로 듣는다더니, 그 말이 맞다. 질문에 대한 답을 속삭이는 건 나였다. 같은 질문을 해도 오늘은 뜨겁게, 내일은 차디차게, 때로는 아무런 답도 듣지 못할지 모른다. 소크라테스, 공자님이 오신들 하나의 답을 주겠는가. 그들의 대답이 책꽂이에 세월없이 꽂혀있지만 읽었던 문장 하나 떠오르질 않는다. 그들도 끊임없이 물었겠지, 묻다 보면 동문서답이든 아니든, 뭐라도 듣게 되겠지. 답을 찾아가는 긴 여정에 숱한 동행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들이 기다려진다.
동쪽하늘에서 떠올랐던 뜨거운 질문이 붉은 대답을 남기고 서쪽으로 몸을 숨긴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벌써 산자락이다. 누구의 말처럼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강아지풀이 지천이다. 꼬리를 살랑거리며 인사를 건넨다. 또 입이 간질간질해진다.
"저,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삶일까요?"
한 줄기 바람이 어쭙잖은 질문에 당황하고 있을 강아지풀들을 흔든다.
'산들산들'
(산다는 건, 들기름처럼 고소하게, 산새들처럼 자유롭게, 들꽃처럼 무심하게 피었다 지는 거지)
산비둘기, 지렁이, 강아지풀.... 그것이 무엇이든, 묻기만 한다면 대답이 지천이다. 내일은 무엇에게 물어볼까? 어떤 대답을 듣게 될까? 뿌리를 드러낸 채로 서 있는 저 소나무, 그 밑동을 아프지 말라고 감싸주고 있는 푸릇한 이끼, 아니면 지금도 열심히 뜨개질에 여념이 없는 저 거미에게 물어볼까? 그들이 들려줄 동문서답이 너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