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통을 틔워주던 사춘기 시절 우리들의 바다
친구 셋이 눈짓을 주고받았다. 우리는 언제라도 튀어 나갈 수 있게 가방을 끌어안은 채 고양이들처럼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선생님 말씀이 길어진다. 속이 타들어 간다. 기차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드디어 마지막 말씀이 떨어졌다.
"꼭 공부 못하는 애들이 시험 끝나면 놀러 갈 궁리만 하더라. 바로 집으로 가도록!"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외쳤다.
"얘들아, 뛰어"
그렇게 우리는 달렸다. 우리들의 간이역, 우리들의 숨통을 틔워 줄 해운대 '송정역'을 향해.
먹지 않고 아껴두었던 도시락을 챙겨서 기차를 탔던 우리는 왜 그토록 그곳이 간절했던 걸까. 시험이 끝나는 날은 유일하게 야간자율학습이 없는 날이었다. 공부를 핑계 삼아서 모여 하던 '일탈'의 궁리에 우리는 진심이었다. 시험점수가 나오지 않는 시험 당일 딱 하루만 누릴 수 있던 눈물 나게 짜릿했던 자유였다.
송정역으로 가는 기차는 바다와 나란히 어깨동무하며 달렸다. 주변 포구들의 이름이 아직도 기억난다. '청사포', '미포'라는 이름에 또 얼마나 설렜던가. 청사포는 '푸른 뱀'을 뜻한다고 했다. 뭔가 가슴 저리는 전설이 있을 것만 같은 그 이름에 전율했다.
살던 동네도 바닷가였지만 우린 다른 바다를 원했다. 같이 울어 줄 바다, 가진 돈으로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바다, 보이지 않는 창살로 둘러싸인 학교가 보이지 않는 바다를 원했다. 도시락을 까먹던 기차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던 햇살과 바위에 부딪혀 터져오르는 하얀 포말들을 보며 겨우 숨을 쉴 수 있었다. 이내 자지러지듯 웃었다. 주머니에는 딱 돌아올 기찻삯밖에 없었던 우리에게 유일하게 차고 넘치던 건 새털 같은 웃음뿐이었다. 언제 터질지 모를 열일곱 살 사춘기를 관통하고 있던 우리에게 그 간이역이 없었다면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어른이 되어서도 삶이 조금씩 숨통을 조여온다고 느낄 때마다 그곳을 떠올렸다.
'옛 송정역'으로 기차 대신 차를 몰고 달렸다. '이제 그곳을 지나는 건 파도 소리뿐이겠구나.'라는 아쉬움이 떨치지 않았다.
우려와는 조금 달랐다. 몇 구간만 운행되긴 했지만, 알록달록한 해변열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우중충해 보일 줄 알았던 우리의 추억은 다행히도 수줍은 모습으로 기다려주고 있었다.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이제 역사가 되려 합니다.
더 이상 스쳐 지나갈 수 없는 바다와 멀리
더 이상 싣고 추억할 수 없는 사람들 떠나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사이가 되어 갑니다.'
"와, 이제 우리도 역사가 되어 가는 건가?" 조금은 가슴 아리는 듯한 이 글을 읽으며 우리는 그날처럼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웃었다.
돌아오는 길은 비가 오려는지 부옇게 시야가 흐려졌다. 분명 휴게소를 보고 깜빡이를 넣었는데 마치 신기루처럼 나타난 또 다른 간이역처럼 보였다. 살면서 몇 군데의 간이역을 스쳐 갔을까. 그저 종착역만을 향해 내달리던 삶에 제동을 걸어주던 간이역들이 떠올랐다.
책상이 놓인 간이역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막다른 길에, 세상 끝에 놓였다고 느낄 때마다 이 간이역이 홀연히 나타나 두 팔을 벌려 맞아주지 않을까. 다시 이 문을 나설 때는 세상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위한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지 않을까.
그날, 가슴 한편에 똬리를 틀었을지 모를 그 '푸른 뱀' 한 마리가 몸을 비틀며 고개를 내민다. 독기 하나 없는 그 입을 벌려 어디에선가 듣고 있을 너와 나에게 외치는 듯하다.
"얘들아, 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