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해 줄래?

굳이 하고 싶은 고백

by 펜끝

"날 용서해 줄래?"

"뭘?"

"널 용서해 줄게."

"뭐~얼?"


난감하다. 용서하려 해도, 받으려 해도 도통 모르는 눈치다. 괜히 이야기해서 벌집 쑤시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내 입장에서도 용서를 해주고 싶은 일이 있긴 한데 상대방은 지은 죄 하나 없는 표정이다.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뒤통수에다 대고 "저기요!"를 너무 크게 불러서 깜짝 놀라게 했던 일, 잠깐 할 이야기가 있다고 모처로 나오라고 해놓고는 얼떨떨한 표정의 당신에게 선방을 날리듯 내가 말했지.

"저는 남자 친구는 필요 없고요. 그냥 오빠가 있었으면 해요. 오늘부터 오빠, 동생 하는 거 어때요?"

그 말에 흑심이 가득했음을 고백할게. 다 그렇게 시작하는 거라고 하더라고.


결혼식 전날까지 일을 하고 당일 급하게 도착한 예식장에서 처음 메이크업이란 걸 받았었지. 날 몰라보게 한 거 미안해. 나도 내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었거든. 속눈썹 무게 때문에 눈이 떠지질 않았으니 할 말 다 했지 뭐. 남의 얼굴에 과도한 예술혼을 불태우셨던 그분들도 할 말은 있었어.

"마사지 한 번 안 받고 온 신부도 처음이지만 신부 화장 받으면서 자는 사람이 있다는 건 들어본 적도 없어요"라고 하더라고. 그 뒤로 무탈하게 살았으면 좋았으련만, 뭔가 하고 싶은 게 있을 때마다 난폭운전 하듯 핸들을 화끈하게 틀어서 멀미 나게 한 건 좀 많이 미안해. 하다 하다 이제는 아예 경로 이탈까지 해서 글 쓰겠다고 해서 한동안 말문을 막아버린 것도 말이야. 이제 좀 생각나지? 그럼, 이제 이렇게 말해줄래? "용서하노라"고 말이야.


말 나온 김에 나도 당신을 용서해 줄 일이 있어. 옆구리 찔러서 절 받는 거 같지만 놀래지 말고 잘 들어 봐. 대학 축제 때 친구들이 당신한테 전화했었잖아. "선배님! 술 먹다 말고 사라졌어요. 도저히 못 찾겠어요" 그 말에 당신은 한 번도 안 타봤던 오토바이를 빌려 타고 날 찾아 나섰지. 난 그때 화장실에서 얌전히 자고 있었는데 말이야. 사고 났다는 말을 듣고 달려갔을 때 당신은 얼굴에 붕대를 칭칭 감고 눈만 내놓고 있었지. 그때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

"잘 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스팔트가 벌떡 일어나길래...."그날 천당과 지옥을 오가게 한 거 그거 내가 용서해 줄게. 아주 개인적 취향이긴 하지만, 봐줄 거라고는 얼굴밖에 없던 당신인데 지금도 그 흉터 볼 때마다 속상하거든. 마지막으로 글을 써보고 싶다고 말했을 때 당신이 갑자기 입술을 꽉 깨물었던 거,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으려고 고개를 돌렸던 거, 나 다 봤거든. 나도 양심이란 건 있으니까 다 용서해 줄게.


용서가 대체 뭘까 사전을 찾아보니 '그에 대한 분노나 억울함을 포기하는 행위'라고 적혀 있다. 용서를 해주는 것도 받는 것도 다 마음먹기 나름이란 말인가 보다. 지지고 볶아대던 마음을 그냥 포기하면 되는 거란다. 분노와 억울함을 포기하니 이리 좋은 걸 왜 몰랐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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