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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담 Jan 31. 2019

첫 아픔

건강하게만 자라줘, 하진아.

1. 출산 후 나흘쯤 지났을까, 아내는 모유수유를 시작했다. 처음이라 아무것도 모르고 어렵지만 하진이를 직접 만날 수 있고 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아내는 행복해했다. 처음 하진이가 태어났을 때 한 번 직접 만나 본 경험이 있는 나는 매일 몇 번씩 하진이를 '직접' 만나는 아내를 부러워해야 했다.


원하는 만큼 잘 먹어주면 좋으련만, 하진이는 모유수유를 조금 불편해했다. 아내가 모유수유를 하려 하면 '힝' 소리를 내며 칭얼대거나 어쩌다 모유를 먹어도 금방 잠이 들어버려 신생아실에 들여보내고 돌아오기 일쑤였다. 그런 일이 반복될수록 아내는 '내가 많이 부족한가'라는 생각에 빠져 속상해하곤 했다. 이를 보는 내 마음도 당연히 편치 않았다.


"하진이가 모유를 잘 안 먹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어..."


"태어난 지 며칠이나 됐다구, 기다려주자. 하진이도 아직 모든 게 너무 낯설 거야."


.

.


2. 그러던 중 간호사가 하진이의 상태에 대해 전해왔다.


"황달 수치가 좀 높아요. 치료를 좀 해야 돼요."


황달? 부랴부랴 인터넷에 검색을 해 보니 신생아가 태어나고 2, 3일가량 지나면 황달 증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치료를 통해 금방 호전되지만 방치하면 신경계에 위험할 수도 있단다. 산부인과 간호사 출신인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진이가 황달 증세가 있대요. 수치가 좀 높대요."


어머니도 아기들에게 흔히 있는 증세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황달 증세가 있으면 아이가 모유도 잘 먹지 않고 기운이 없어져 비실비실 잠만 잔다고, 수치가 내려가면서 입맛 돌아오면 잘 먹을 거라고 덧붙였다. 아! 하진이가 그래서 기운도 없고, 먹다가도 자고 그랬구나. 아내에게 말해주고 지금의 하진이 상태는 당연한 거라고 안심시켰다. 아내도 원인을 알게 돼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황달이라는 새로운 걱정이 늘어난 표정이었다. 어쨌든 하진이는 치료를 받아야 했다. 황달 수치가 너무 높아지면 모유수유도 할 수 없다는데 딱히 별 말이 없는 걸로 봐서는 걱정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고 스스로 위안했다.


.

.

황달 치료를 위해 눈을 가려놨다. 마음이 아팠다.


.

.


3. 하진이가 보고 싶어서 아내와 함께 신생아실을 찾았다. 하진이 자리에 하진이는 없고 빈 침대만 놓여 있었다. 간호사에게 산모 이름을 보여주자 잠시만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내더니 안쪽으로 들어가 한참 뒤에 하진이를 데리고 나왔다. 이게 무슨 일이야. 하진이 눈에 안대가 씌워져 있었다. 놀란 표정을 읽었는지 간호사는 하진이가 현재 빛 치료 중이고, 강한 빛은 아기의 눈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안대로 가려 놓았다고 설명했다. 잠시만 눈을 감고 있어도 답답한데 온종일 눈을 가리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니... 물론 아직 사물을 알아보고 세상을 볼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이 안 좋았다. 아내도 연신 안쓰러운지 '아이고...'를 연발하며 유리 너머의 하진이를 바라봤다. 다소 높은 황달 수치로 인해 하진이는 며칠 더 눈을 가린 채로 치료를 받아야 했고, 조리원으로 옮기기 하루 전에서야 수치가 많이 내려왔다는 진단을 받아 안대를 벗을 수 있었다.


조리원 이동  전 병원에서는 최종적으로 하진이의 건강 상태를 확인시켜주기 위해 아내를 호출했고, 마침 아내가 자리를 비워 내가 가게 됐다. 하진이가 태어나서 날 만났던 바로 그 장소에서 다시 하진이를 만났다.


좀 더 침착하고 차분하게 하진이를 살펴볼 수 있었다. 하진이도 며칠 사이에 좀 더 자란 모습으로 날 만나러 왔다. 간호사는 친절하게 하진이의 몸 상태를 점검했다. 황달 수치는 많이 내려왔고, 기저귀 발진이 있었지만 사라졌다. 배꼽 밑에 홍반이 생겼지만 역시 많이 나아졌다. 양 겨드랑이 쪽에도 붉은 반점이 있었는데 거의 다 나았다고 했다. 차분하게 하진이를 바라보며 설명을 듣고 있으니 안심이 됐다.


다만 안대를 오래 차고 있었던 탓에 왼쪽 볼에 안대에 쓸린 자국이 생겼는데, 지금까지도 수포가 올라와 붉게 물들어 있다. 계속 약을 발라주고 있다고 했는데 아이에게 마냥 약을 쓰는 것도 안 좋다고 해서 조리원 선생님들에게는 양 조절을 부탁했다. 아내와 어머니는 아기 피부가 원래 약해서 그렇지 금방 나을 거라며 나를 다독였다.


정말 아는 것도 없고 매 번 이렇게 당황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문득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초보아빠라고는 하지만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아 아이와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아기가 아플 때 아내가 많이 당황할 텐데 내가 항상 침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불안감이 아내에게 전달되고,

아내가 흔들리면 하진이는 분명히 그 감정을 느낄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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