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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담 Feb 02. 2019

예비, 초보 아빠들을 위한 출생신고 이야기

모르면 물어볼 것. 아니, 꼭 물어보고 할 것.


1. 하진이가 세상에 나온 뒤 자랑을 많이 했다. 팔불출 아빠라는 이야기를 들어도 좋았다. 가족 단톡방에 하루에도 몇 번씩 하진이의 사진과 영상을 올리고 친구, 직장 동료들도 만날 때마다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했다. 신생아답게 하루가 멀다고 크는 모습이 그렇게 기특할 수 없었다.


자랑으로만 2주가량을 훌쩍 보내다 보니 문득,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는 게 생각났다. 생후 한 달이 지나도록 출생 신고를 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낸다고 했던가? 빨리 준비해서 나라에도 하진이 태어난 걸 자랑해야겠다! 온라인 출생신고가 가능한데, 지정된 병원에서 출산한 산모만 가능하다고 했다. 우리 병원은 해당사항이 없었고, 다소 들뜬 마음으로 동네 주민센터로 향했다. 이런 건 또 직접 작성해줘야 맛이지. 혼인신고를 할 때가 생각나 설레기도 했다. 당당하게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던 나는 병원에서 준 출산증명서를 놓고 온 게 생각나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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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러게 잘 좀 챙겨 가랬지, 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얼른 다녀올게!"라고 인사를 던졌다. 후다닥 나와 신발을 고쳐 신고 다시 주민센터로 향했다. 약간 민망하기도 했지만 기분 좋았다. 주변 사람들 말로는 출생 신고를 마치면 주민등록등본을 한 부 출력해준다는데, 내 이름 아래에 아가 이름이 올라와 있는 걸 보면 기분이 묘하다고 하더라. 빨리빨리, 구석에 비치된 서류뭉치들 사이에서 출생신고서를 찾아 작성하기 시작했다. 작성하기 앞서 아까 같은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준비물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혹시 몰라 아내의 것까지 챙겨 온 신분증, 병원에서 발급해 준 출생증명서... 많은 것도 아닌데 이걸 깜빡했으니 잔소리 들어도 싸다고 생각하며 웃었다.


처음 시작으로 아이 이름을 쓰는데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하진이 이름으로 작성되는 첫 공문서가 아닌가. 틀리지 않게, 혹시나 실수가 발생하는 일 없게 또박또박 한 글자씩 천천히 썼다. 한글과 한자 이름을 모두 작성하고 바로 아래 출생 일시까지는 일사천리로 작성했다. 하지만 그 옆에 '본'을 쓰는 란에서 바로 막히기 시작한 나는 만만한 성별과 출생 장소를 먼저 작성했다. 아래로 내려가며 '부모가 정한 등록기준지'라던지, 부모의 본을 각자 쓴다던지 하는 등의 항목이 나오자 나는 작성을 멈췄다.


'괜히 틀렸다가 새로 작성해야 하면 나도, 공무원 아저씨도 번거로울 텐데. 물어볼까...'


최대한 작성할 수 있는 건 작성해보자, 라는 마음으로 한참을 끄적거린 뒤에 쭈뼛쭈뼛 담당 공무원의 앞자리에 앉았다. 출생 신고하러 왔다는 말에 담당자는 내 신분증과 작성한 출생신고서를 받아서 한참 들여다보더니 새 출생신고서를 가지고 왔다.


'젠장, 신중하게 썼는데 결국 틀린 게 있군.'


출생신고서와 함께 담당 공무원은 나와 아내 이름으로 된 각각의 가족관계증명서를 함께 내밀었다.


"부모님의 각각 등록기준지는 각자의 가족관계증명서에 나와 있구요, 아이의 등록기준지는 아버님, 어머님, 혹은 지금 거주지, 세 가지 중 한 곳을 선택해서 작성하시면 됩니다."


처음 출생신고를 하러 오는 젊은 부모님들이 헷갈려하는 항목들이 많아서 작성하면서도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라는 담당자의 말에 마음속으로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공무원 매너리즘도 다 옛날 이야기야... 저렇게 친절하다니 흑흑.'


설명을 듣고 작성을 하니 막힐 것 없이 술술 작성할 수 있었다. 열심히 작성한 출생신고서와 병원에서 발급받은 출생증명서, 내 신분증을 제출하고 기다리니 몇 분 안 돼서 주민등록등본이 나왔다. 말로만 듣던.. 떨리는 손으로 받은 주민등록등본에는 내 이름과 아내의 이름, 그리고 그 아래 하진이의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이제는 법적으로 인정받는 한 가족이 된 것. 임신 10개월 때도, 출산 당일도, 출산 이후에도 가족이라는 감정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음에도 공문서가 주는 현실감은 또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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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진이가 포함된 가족관계증명서는 발급받으려면 며칠이 걸린다고 했다. 고개만 열심히 끄덕이는 내게 담당자는 옆 부서에 가서 아동 수당을 신청하라고 일러줬다. 아, 통장 사본 필요하다고 했던 것 같은데. 집에 또 다녀오자니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았다. 일단 얘기나 들어보자는 마음으로 옆 부서에 가서 문을 두드렸다. 저.. 아동수당 신청하러 왔는데요.


나의 친절한 새 담당자분은 자리를 권했다. 음, 금방 쓰고 갈 텐데 앉아야 하나. 그때 담당자의 날카로운 질문이 날아들었다.


"아동수당만 신청하실 건가요?"


"ㄴ.. 네..."


"첫째죠? 아닌데, 신청할 거 많을 텐데? 빨리 앉아요."


나 같은 어리바리 아빠를 상대하는 게 익숙한 듯 담당자는 나를 자리에 앉히고 서류 뭉치를 내밀었다. 아동 수당, 양육 수당, 출산 수당... 다 똑같은 말 같은데 뭐가 이렇게 다르고 많은지. 우선 출산 수당, 출산 축하금이라고도 하는 금액을 수령하는 서류를 작성했다. 그다음 작성한 서류는 양육 수당! 양육 수당이나 아동 수당은 늦게 작성해도 소급 적용해서 준다고 한다.


뭐가 다른지 지금도 내게는 어렵지만 양육 수당은 태어나자마자 지급되기 시작해 어린이집에 보내게 되면 지원이 끊긴다고 했다. 아동 수당은 아무런 조건 없이 만 5세 미만의 아동들에게 10만 원을 지급한다고 한다. 통장 사본을 안 가져왔다고 말하니 요즘엔 없어도 다 처리가 된단다. 신분증만 가지고 주민센터에 방문하면 신생아 관련한 업무 처리가 한 번에 빠르게 가능한 것 같았다.


담당자가 안내하는 대로 서류를 작성하니 강서구에서 주는 '출산 축하 선물'을 고르라고 했다. 혹시나 초보 아빠들, 축하 선물을 고르면서 '아, 이건 산 것 같은데?', '이건 있는 것 같던데?' 등 스스로 판단해서 고르지 말 것을 당부한다. 나 역시 나름 신중하게 물품을 살피고 이미 구입해서 가지고 있는 것 같은 제품들이 최대한 없는 상품으로 골랐다. 조리원으로 돌아가 아내에게 뿌듯한 얼굴로


"출산 축하 선물 준대서 1번 패키지로 골랐어. 잘했지?"


라고 자랑했지만 아내의 반응은 기대와 달랐다. 한참 패키지 구성품을 살펴보던 아내는


"이건 샀고.. 이건 필요없구, 패키지 2번이면 좋겠는데..."


결국 나는 주민센터에 전화해 혹시 아직 배송 전이면 상품을 바꿀 수 있는지 물어봤고 다행스럽게도 어렵지 않게 변경이 가능했다.


아마도 조리원에 있을 아내 대신 출생 신고부터, 출산 축하 선물을 고르기까지의 주민 센터 내의 전 과정을 겪을 남편이자 아빠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다. 물어보라. 꼭 물어보고 하라.

이렇게 하면 되겠지, 하는 건 대부분 그렇게 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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