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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담 Feb 04. 2019

신생아에게 아빠는 필요한가?

조리원을 퇴소한 날, 본격적인 육아의 시작.


1. 아침 일찍 일어나 퇴소 준비를 마쳤다. 차에 모든 짐을 싣고 하진이를 데리러 신생아실로 올라갔다. 유리벽 너머 하진이는 집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조리원 선생님은 아기가 혹시라도 추울까 이불로 꽁꽁 싸매고 마지막으로 한 번 꼭 안았다. 그 모습을 보며 아내와 나는 괜히 뭉클했다. 매일, 매주 수많은 아이들이 스쳐 지나갈 텐데 저렇게 매번 정을 주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고마웠다.


선생님은 하진이를 데리고 유리벽 왼쪽에 있는, 평생 열리지 않을 것만 같던 문을 열고 나왔다. 아내에게 하진이에 대해 여러 가지 당부를 하며 주차장까지 함께 내려갔다. 마침내 아내는 하진이를 받아 품에 안고 차 문을 닫았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시동을 걸었다.


'안전 운전의 신이 계신다면, 오늘 저와 함께 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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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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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차를 몰아 집에 들러서 필요한 짐과 옷가지를 챙긴 후 일산의 부모님 댁으로 다시 출발했다. 당분간은 일산에서 다 함께 지낼 예정이었다. 일산까지 약 30분 정도가 걸렸지만 하진이는 자는 듯 조용했다. 아기들이 차를 좋아한다더니 정말이군!


일산에 도착하자마자 하진이는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아버지는 누워있는 하진이 주변을 맴돌며 신기한 듯 바라봤다.


'난 내 자식들한테 너무 많은 사랑을 쏟으면서 키워서 글쎄, 손자보다는 아직도 내 새끼들이 더 예뻐.'


라고 하셨던 어머니는 하진이를 안고 내려놓을 줄을 몰랐다. 동생도 하진이를 안아보고, 사진 찍고, 손도 발도 만져보며 조카가 생겼음을 실감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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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일산에 도착한 게 오전 11시 30분. 그때부터 밤 12시까지의 반나절은 정말이지 길었다. 먹고, 자고, 놀거나 운다. 그 놀랍도록 단순한 일과에서 남편의 역할은 많지 않았다.


여기서 '역할이 많지 않다'라는 것은 할 일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이는 아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되겠다. 아직 아빠라는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하진이는 밥을 줄 수 있는 엄마와 능숙하게 안아줄 수 있는 할머니와 고모의 품에서 편하게 지냈다. 아버지와 나는 끊임없이 세 여자를 돕는 역할을 할 뿐 하진이의 욕구를 채워줄 수 없었다.


안아주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등의 역할 역시 아내의 보조일 뿐이다. 이런 행동들은 순간적인 도움은 될지 모르지만 아내의 결정적인 피로를 덜어주지 못했다. 아이의 성장에 아빠의 역할이 중요하다지만 우리에겐 아직 먼 미래의 이야기였다.


밤 12시, 아내는 또 한 번의 수유를 마쳤다. 지칠 대로 지친 아내는 하진이를 무릎에 올려놓고 앉은 채로 잠이 들었다.


'2시간.. 딱 2시간만 자 줘 하진아.'


잠꼬대하듯 아기에게 부탁하는 아내에게 담요를 덮어줬다. 누웠지만 끊임없이 내가 더 해야 하는,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고민하느라 잠이 오질 않았다. 세상 밖으로 나온 하진이와 우리의 첫날밤은 이렇게 깊어져 갔다.


하진아, 행복하렴. 건강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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