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22대 왕, 정조의 일기 : 하루 3번 성찰 일기

일기의 사람들 시리즈

조선 22대 왕 정조는 우여곡절이 많았던 왕이다. 트라우마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심각한 일들을 헤쳐나와 왕이 되었다. 연산군처럼 폭군이 되어 적들에게 복수 할 수 있었을테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성군의 길로 들어선 귀한 왕이 되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는 일기덕후였다.


"나는 일기를 쓰는 것이 일찍이 하나의 습관이 됐다. 아무리 바쁘고 번거로운 일이 있을 때라도 반드시 잠자리에 들기 전에 기록해 '일일삼성 : 날마다 세번씩 내 행동을 살핀다'는 뜻을 담았으니 이는 성찰하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정신력을 살펴보려는 것이어서 지금까지 그만두지 않고 있다."

[정조 5년 8월 19일]


부끄럽지만 나는 사실 정조에 대해 잘 몰랐다. 분명 학생 때 역사책에 나왔던 인물이었겠지만 당시 나는 공부와 거리가 멀었다. 일기의 인물들을 찾다가 정조의 일기장인 일성록에 대해 알게 되었고 관심이 생겨 검색해보니 세종대왕과 맞먹는(?) 유명세를 가진 분이셨다. 유튜브에도 관련 영상이 꽤 많았다. 여러편 봤는데 정말 실화를 그대로 영화화 해도 될만큼 심각한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던 걸 알게되었다. ‘역린’이나 ‘사도’라는 영화도 알게 되어 역린은 넷플릭스에서 시청했다. 역사물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꽤 재미있게 봤다. 보면서 영화적인 각색이 물론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그리 과장이 심하지않았던 점이 충격이었다.


특히 그의 부친이 죽음에 다다르게 되는 과정을 직접 본 10살의 어린 정조(이산)의 트라우마는 얼마나 심각했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나 또한 20대 초에 시작된 심적 고통으로 오랜기간 고생 했기에 더욱 공감이 되었다. 누구에게 쏟아놓기 힘든 마음은 비밀일기에 쏟아놓기 좋다.


[저의 삶의 고통을 풀어놓았던 일기에 대해 쓴 글입니다.]


그는 일기를 통해 자신을 성찰했다고 한다. 자신이 왕이 되는 걸 반대하는 이들 속에서 흠잡힐 것 없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리 철저하게 자신을 성찰해야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어릴 때부터 일기를 썼다고 하는데 ‘존현각 일기’란 이름으로 따로 일기장이 남아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할아버지 영조의 보호 아래 있어야 할 정도로 사방으로 위험에 쳐해 있었던 어린 이산은 이런 일기도 남겼다.


"내가 이렇게 일기를 쓰는 것은 지금 당하는 핍박을 후세에 전하여 알게 하기 위해서다."

"(그들은)임금을 만날 때에도 몸을 구부리지 않았고 신발 끄는 소리를 탁탁 내며 전혀 삼가고 두려워하는 뜻이 없었다."

"흉도들이 심복을 널리 심어놓아 밤낮으로 엿보고 살펴 위협할 거리로 삼았다."

"두렵고 불안하여 차라리 살고 싶지 않았다."

[정조의 세손시절의 존현각 일기 중]


그의 바람대로 200년이 훌쩍 넘은 후세인 우리에게까지 그가 당했던 핍박이 전해졌다. 일기에 기록했기 때문이다. 세손의 신분이었지만 마치 감옥수 처럼 살지 않았나 싶다. 이런 지난한 과정을 거쳐 왕이 되었음에도 성군이 되었다는 점은 특히 더 놀랍다. 다독하는 높은 학구열과 좋은 성품이 중요한 역할을 했겠지만 나는 그가 가지고 있었던 자기 삶을 기록하고 스스로를 성찰하는 일기습관도 분명 한 몫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왕이 된 뒤에도 일기를 계속 썼다고 하는데 그 때 일기의 이름이 일성록이라고 한다. '일일삼성 : 날마다 세번씩 내 행동을 살핀다'이란 뜻을 이름에 담았다. 이후에는 일성록을 신하들과 함께 활용하여 나라를 통치하는 기록으로 적극 활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후대의 왕들도 이 전통을 이어 일성록을 쓰게 되었다고.


일성록을 '남기는 기록'으로만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의 도구로 적극 활용했다는 이야기가 눈에 띈다. 직장으로 치면 일종의 사업평가기록이 아닌가 싶다. 신하들도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 일성록을 써야 했고 그것을 함께 모여 공유한 것은 아닐까. 개인의 차원에서는 일성록을 자기관리의 도구로 사용하다가 왕이 된 후에는 자신을 관리하고 돌보듯 국가운영을 관리하고 돌보는데 활용하는데까지 일기의 쓸모를 확장한 것이다.


[제가 일기를 쓰며 스스로를 살피는 방법입니다.]


일기의 힘을 너무도 잘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지극히 개인적인 일기가 어떻게 사회적 일기로 까지 뻗어 나가는지도 볼 수 있는 완벽한 그림이다. 그러고 보면 일기야 말로 모든 학문의 시초가 아니었을까. 철학도, 의학도, 법학도, 경재학도, 심리학도 원시적인 시초는 모두 일기에서 시작하지 않았을까. 개인적인 기록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일기를 쓴다는 것은 씨앗을 뿌리는 것과도 같다. 그 중 어떤 씨앗은 대성해서 거대한 나무가 되는 것이다.


정조는 왕이니까, 중요한 일을 맡았으니까 그렇게 일기로 꼼꼼히 성찰해야했을 것이고 평범한 우리에게는 과하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현대가 왕들의 사회라고 때로 생각한다. 옛 왕만큼의 영향력이 있진 않지만 모든 개인이 왕 같은 자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누군가에게는 왕같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자리에 가는 경우도 없지 않다. 적어도 가족과 지인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고 또 좋은 영향을 받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을테다. 그렇다면 정조의 일성록을 우리의 습관으로 삼아야 한다. 성찰의 시간을 앗아가는 온갖 뉴스와 영상이 넘쳐나는 시대에 더욱 필요한 습관이 아닐까.


정조의 일성록은 200년이 훌쩍넘어서도 여전히 유의미해보인다.




정조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영상을 추천한다.


1) 통치를 위해 쓴 일기, 일성록

https://youtu.be/jtDAEekhF_I?si=PDMCvrM3QvjQS42p


2)기록 덕후 정조의 일기, 일성록

https://youtu.be/83TgZbZNCZQ?si=n5g7IXXtw4mPVNib


3) KBS 정조대왕 다큐멘터리 4편 연속 방영 (존현각 일기 내용)

https://www.youtube.com/watch?v=fyfTi5ebDg8


4) [최강1교시] Full.ver 나는 왕이로소이다 6부 정조ㅣ역사학자 신병주

https://youtu.be/g8YBf2D7Z1A?si=70GiYwwpkJ2vFo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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