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의 사람들 시리즈]
일기동료는 찾는데는 픽션과 논픽션을 가리지 않아도 되겠다 싶어 선정한 이번 '일기의 사람'은 윈스턴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는 '멋진 신세계'와 함께 암울한 미래를 그리는 소설로 유명하다. 이 소설이 '빅 브라더'의 고향이다.
일기를 쓰려는 것이 바로 그(윈스턴)가 지금 하려는 일이었다. 그것이 불법은 아니었지만(법이라는 것이 아예 없었기 때문에 불법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다) 이 일이 들키게 될 경우 사형이나, 최소 강제 노동 수용소 25년 형이라는 처벌을 받을 것이 거의 확실했다.
주인공은 목숨을 걸어야 일기를 쓸 수 있는 곳에 살고 있다. 일기쓰기가 심각한 죄가 되는 나라라니, 아주 흥미롭다. 그런데 한술 더 떠서 ‘일기쓰기가 불법이어서 사형당하는 것은 아니다’라고도 말한다. 분명한 모순이다. 대체 왜 이러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이 하는 짓을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만일 당이 과거의 이런저런 사건에 대해 손을 쓰면, ‘그 일은 결코 일어난 적이 없는 일’이 되고 만다. 그것이야말로 고문이나 죽음보다 더 무서운 일이었다. 당은, 오세아니아는 한 번도 유라시아와 동맹을 맺은 적이 없다고 했다. 그 자신, 윈스턴 스미스는 오세아니아가 불과 4년 전만 해도 유라시아와 동맹을 맺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그런 지식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그 자신의 의식에서나 존재할 뿐이었으며, 그 의식은 어쨌든 조만간 소멸되고 말 터였다.
그리고 만일 다른 모든 사람이 당이 밀어붙이는 그 거짓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모든 기록이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면 그 거짓말은 역사의 일부가 되고 진실이 된다. 당은 ‘과거를 통제하는 자가 미래를 통제하며, 현재를 통제하는 자가 과거를 통제한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원래 과거는 그 속성상 바꿀 수 있는 것임에도 그동안은 바뀐 적이 없었다. 현재 진실인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영원에서 영원까지 진실이었다. 그야말로 간단한 문제였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단지 끝없이 자신의 기억과 싸워 그것을 무찔러 버리는 것뿐이다. 그들은 그것을 ‘현실 통제’라고 했으며, 신조어로 ‘이중사고’라고 했다.
오세아니아라는 나라의 집권당은 의도적으로 역사를 왜곡, 조작하고 있다. 그리고 심지어 그것을 ‘현실통제’라든가 ‘이중사고’라는 식의 이름을 붙여 합리화까지 하고 있다. 국가수준의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고 있는 것이다. 당의 역사왜곡을 눈치채게 해줄 진실의 일기가 두려울 수 밖에 없다. 그러니 겨우 일기쓰는 것 정도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보자.
한 시간 전까지도 상상하지 못했던 오길비 동지라는 인물이 이제 사실이 된 것이다. 문득 죽은 자는 만들어 낼 수 있어도 산 자를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하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현재에는 결코 존재한 적이 없는 오길비 동지는 이제 과거 속에 존재했다. 일단 위조 행위가 잊히고 나면 그는 샤를마뉴 대제나 율리우스 카이사르만큼이나 명백한 증거를 가진 진짜 인물로 존재할 터였다.
법이 애초에 왜 존재하지 않는지도 이제 이해가 간다. 법이 없어야 권력자들이 법의 제한 없이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자신들의 역사조작이란 죄도 불법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자신들은 거짓기록을 남기는 진짜 죄를 지으면서도 처벌받지 않지만 힘없는 시민들은 진실의 기록을 일기에 남기는 '불법 아닌 죄'로 처벌을 받는 것이다. 국가는 거짓의 기록을 남기지만 국민은 진실의 기록을 남기지 못하게 하고 있다.
윈스턴도 이런 역사조작을 집행하는 '진실부'(이것도 이중사고의 일부겠다. 실은 날조부가 더 어울리는 이름이다.)란 부서에서 일하고 있었다. 오히려 이런 일을 했기 때문에 진실을 향한 양심이 깨어날 가능성이 그나마 더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고보니 적어도 일기에 진실을 남기려했던 윈스턴에게만큼은 진실부의 일원이란 이름이 액면 그대로 어울린다.
펜은 구식 필기구로서 지금은 서명을 할 때조차 사용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지만 어렵게 하나를 남몰래 구해 두었는데, 그것은 그저 아름다운 크림색 종이에는 잉크 펜으로 갈겨쓰는 대신 진짜 펜촉으로 써야 어울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는 손으로 필기하는 행위 자체에도 익숙하지 않았다. 아주 간단한 메모를 제외하면 대개의 경우 모든 것을 ‘음성 입력기’에 받아쓰게 했는데, 물론 그가 지금 하려는 일을 그런 식으로 하기는 불가능했다. 그는 펜을 잉크에 담근 다음 잠시 머뭇거렸다. 배 속으로 한차례 짜릿한 전율이 지나갔다. 종이 위에 뭔가를 기록한다는 것은 결정적인 행위였다. 그는 작고 어설픈 글자로 이렇게 썼다.
1984년 4월 4일.
... 지독한 무력감이 엄습했다. 무엇보다도 올해가 '정말로' 1984년인지 아닌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만년필 덕후인지라 펜 이야기가 반갑다. 게다가 손으로 필기하는 행위가 줄어드는 시대에 우리도 이미 접어든 것 같아 더 공감이 간다. 진실부에서 얼마나 역사조작에 절어있었으면 자신의 일기에 날짜를 쓰는 것 조차도 확신을 하지 못하겠는가 싶다.
그리고 '음성 입력기'도 흥미롭다. 지금으로 치면 음성메모 정도 일 것이다. 왜 거기에 기록할 수 없었을까? 당이 음성입력기로 입력된 것은 모두 감시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역시 디지털 쪽으로는 아날로그 기록도구들이 완벽한 보안을 자랑한다. 물론 누가 성큼성큼 걸어와서 펼쳐보는 걸 막을 순 없지만 말이다.
비극적인 결말
소설의 끝은 암울하다. 일기를 쓰며 진실을 의식하게 된 윈스턴 이지만 거대한 당의 힘 앞에 굴복당한다. 진실을 아는 이들이 여럿 모여 맞서 싸우고 당을 무너뜨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작가는 이런 비극적인 결말로 독자들을 전체주의에 대한 경각심을 자극하고 싶었던 것 같다.
실제로 이런 나라가 존재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없는 일도 아닐 것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지언정 '역사조작의 힘'을 휘두르는 이들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편파적인 뉴스나 영상 또는 직장과 학교의 괴롭힘 가해자 무리들에게 이런 거짓의 힘은 아주 매력적인 몽둥이 일 것이다.
꼭 외부에서만 찾을 것도 아니다.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하는 '자기기만'에도 역사조작이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존감을 떨어뜨리거나 불편함을 일으키는 과거 기억들을 외면하고 싶을 때를 떠올려보면 된다. 얼른 잊거나 사실과 다르게 기억하고자 하는 열망이 솟구치는 순간 말이다. 강렬한 욕망은 소설 1984 속 당의 자리를 꿰찰 수 있다.
진실한 일기를 쓴다는 것
이렇게 불편한 진실을 직면하는 솔직한 일기를 쓴다는 것은 때로 상당히 힘든 일이다. 방법론이 필요하지도, 특별한 지식과 고차원적인 사고능력도 필요 없는 일이다. 그저 있는 그대로 쓰기만하면 되는 단순한 일이지만 어렵다. 때로 너무 명석하고 지식이 풍부한 사람임에도 자신의 잘못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을 너무도 어려워 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온갖 이론과 지식을 몇십분동안 늘어놓지만 정작 단순한 진실, 즉,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와 그것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말을 하지 못하는 답답한 장면이다. 물론 나 자신도 예외는 아니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필요한 일이다. 내 안의 윈스턴이 죽지 않도록 살리는 일이다. 그의 편을 들어주고 지원군을 보내기로 결단하는 일이다. 혹여나 오세아니아 당이 내 마음을 지배하게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일이다. 괜히 불편할만한 사실들만 찾아다녀야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필요할 때는 마주보고 맞설 줄 알아야한다. 심지어 그것이 자기 자신이라도 말이다. 일기는 그런 일을 시작하는데 적합하다. 누군가의 앞에서 곧바로 하기에는 쉽지 않은 일이니 우선은 자신의 양심앞에서 드러내놓고 직면하고 인정해보는 것이다. 일기는 이 일을 위한 안전한 연습장소다.
세상에 소설 같은 끔찍한 독재정권이 탄생한다면, 아마도 그것은 이미 마음 속 독재정권이 장악했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되기 전에 일기로 마음의 나라를 때때로 순찰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