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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na Jun 25. 2020

퇴사를 하며

x월 1일

 

  나의 첫 사회생활은 공장이 많은 곳에서 시작되었다. 해가 바뀔 때마다 주변에 있던 공장이 하나 둘 허물어지고 그 자리엔 어느새  크고 번쩍이는 새 건물들이 의기양양 차지했다. 그런 동네의 변화만큼이나 나 역시도 빠르게 회사 생활에 적응해 가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빠르게 적응하려고 나를 억지로 구겨 넣어 버리려 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회사 생활을 하며 누구를 이기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잘하고는 싶었다. 기계처럼 “꼭 필요한 사람이 되겠습니다”를 반복하면서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첫 번째 사회생활이었던 내게 회사 생활은 녹록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기려고 애를 썼다. 시계를 보다 여섯 시 반이 넘으면 다른 직원들과 회사 2층 식당으로 향하는 것이 자연스러웠고, 밤 9시에 퇴근을 하면서도 상사의 기분이 좋아 보이면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회사의 시계는 10시에 멈추는 듯하였으나 11시가 넘어 퇴근하는 날도 다반사였다. 때로는 의도치 않은 관계에 휘말릴 때도 사회생활이란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회사에 들어간 지 6개월이 되었을 무렵, 하루는 야근을 하고 버스가 끊겨 택시를 타고 집에 오는데 달이 유난히도 크게 보였다.

“기사님 저거 진짜 달이예요?”

“오늘이 보름이잖아, 허허”

그 순간 오늘 며칠이지? 매일 똑같이 느껴지는 하루가 조금 달라 보였다. 어느 순간부터는 날씨, 계절의 개념은 내게 없어진 듯했다. 눈 앞에 보이는 달이 크고 몽롱했다. 내가 지금 무엇을 위해, 어디를 가고 있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누가 볼까 두려워 억지로 구겨 넣었던 나를 조금 꺼내놓아 볼 수 있었다.


  잘 해내고 싶은 마음에 회사 생활을 하며 모든 문제의 원인을 스스로를 탓하는 방식으로 돌렸다. 하지만 마음 한편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마음이 결정하기도 전에 ‘이 실수는 내가 분명 잘 못했어’라고 스스로를 자책했다. 회사 생활의 연차는 하루하루 쌓였지만 그와 동시에 마음속에 내가 자책했던 일들에 대한 가시 돋친 마음도 스멸 스멸 쌓이고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정신없이 하루를 버틴다는 생각으로 보내고 보니 어느 순간 내가 스스로를 혐오스러워하고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때로는 먼지가 낀 것 같아 탈탈 털어 옥상에 나를 널어놓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내 자신을 어떻게 해야 할 줄을 알지 못했다.


  장기 출장을 갔던 어느 여름날, 출장지에서 우연히 본 하늘은 높았다. 오랜만에 느낀 계절 덕분이었을까?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나도 모르게 마음 깊숙한 곳에서, 나로 인해 다쳤던 ‘나'를 다시 꺼내 보았다. 다 내 잘못이라고, 내 실수라고 억누르고 가둬왔던 감정들이 밀려 올라와 하늘을 까맣게 덮는 것만 같았다. 그런 나를, 내 마음을 마주하는 순간, 문득 위로를 하고 싶었다. 내 탓으로 돌리면서까지 눌러왔던 감정들이 사실은 나를 위한 일들이었다. 누군가에 의해 다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내 마음은 다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 조차 위로받지 못한 내 마음은 결국은 나로 인해 더 많은 상처를 안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회사 복도 계단에서 불이 꺼지도록 우두커니 앉아 있었던 나. 기계처럼 모니터만 보다가 휴게실에서 창밖을 보며 물 한잔을 천천히 들이키면서 가만히 심호흡을 내쉬었던 나. 선뜻 감정을 가족들에게 내보일 수 없어 퇴근길에 한 정거장, 두 정거장.. 그리고 다섯 정거장을 걷다가 버스를 타고 그도 모자라 집 앞에 두 정거장 전에 내려 집까지 걸어오던 나. 자꾸 체해서 점심에는 면만 조금 먹고 소화제를 가방에 넣고 다니던 나. 주말엔 무기력하게 잠만 잤던 나. 이른 아침, 지하철에 내려 편의점 커피 한 잔을 들고 출근을 하면서도 회사와 가까워지는 게 두려워 조금씩 한 발자국씩 걸어오던 출근길의 나를 떠올리며 내가 회사 생활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버티는 중’이었음을, 괜찮은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아슬하게 매달려 있음을 알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가 나를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바로 전화를 걸었다.

“이번 프로젝트가 끝나면 퇴사하겠습니다.”

 일단 들어와서 얘기해 보잔 말도 들리지 않았다. 어떤 것을 대안으로 해도 듣고 싶지 않았다. 나를 지키기 위한 일은 여기서 이곳에서 추가적인 변화가 아니라 벗어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마지막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본사에 복귀하고, 휴가를 보낸 뒤 퇴직원에 사인을 하니 기쁨이 몰려왔다.


  그리고 아팠다.

 뭔가 버티지 못했던 것 같다는 생각에 고통이 크게 다가왔다. 진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나는 패배자인 걸까? 하지만, 퇴사 후 나의 계획은 분명했다. 바로, 나를 위로하고 나와 화해하는 것. 산에도 가고 청소도 하고 때로는 하릴없이 가만히 시간을 보내면서 아픈 마음을 다독이는데 시간을 보냈다. 눌러 놨던 나를 꺼내고 굳이 내 잘못이라고 할 필요는 없었음을 상기하고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을 가졌다. 아픔이 쉽게 가시진 않았다. 어떤 날은 우연히 본 다른 사람의 퇴사 글에 공감을 하여 찡한 마음을 부여잡고 비슷한 시기에 퇴사한 전 직장 동료에게 공유하면서 함께 공감하기도 했다. 가끔은 전 직장의 H과장이 꿈에 나와 하루 종일 찝찝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고, 어떤 날은 아직 퇴사를 하지 않은 채로 일상을 보내는 꿈을 꾸기도 했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그런 날들이 쌓이고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니 하루하루 회사 생활에 대한 아픔이 가시는 듯했다. 다행히도 내가 건네는 위로를 내 마음은 생각보다 빠르게 받아들였고, 스스로를 토닥일 수 있게 되었다.




그때의 나는 나를 위로하는 방법을 몰랐다.

그리고 시간이 흐름 지금, 나는 또 다시 같은 상황을 마주한다면 나를 위로하지 못할수도 있다.

하지만 그 때의 나와 다른 점은 그런 감정들을 쌓아놓을수록 내 자신을 더 벼랑끝으로 밀어넣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시키 않으려 오늘도 나를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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