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의 인생에서는 늘 예상하지도 못한 일들이 벌어져 낭패감 속으로 몰아넣었다. 인생의 대부분의 날들이 상수에게 실패라는 결론을 선언하기 위해 준비된 듯 느껴졌다.p.248
제가 이번에 소개해 드릴 책은 김금희 작가의 [경애의 마음]입니다. 제목 그대로 ‘마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SNS에서 ‘언니‘인척 여자들의 고민을 상담해주는 인플루언서 남자 상수와, 남들은 넘길 수 있는 일을 굳이 들추어내어 융통성 있게 살지 못하는 여자 경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경애의 마음], 김금희 저, 창비, 2018
이 책을 한 줄로 소개하자면
소속되지 못한 것만 같은 사람을 위한 책
이라고 소개하고 싶습니다.
순서가 바뀌긴 했지만 앞서서 소개했던 [프랑켄슈타인]을 읽게 되었던 이유가 이 책 덕분이었습니다. 이 책이 아니라면 저는 여전히 ‘피조물‘을 ‘프랑켄슈타인’이라고 지칭했을 것입니다. 주인공 경애는 자신의 별명을 [프랑켄슈타인]에서 박사가 만든 존재를 가리키는 ‘creature‘라는 표현에서 딴 ‘피조물’이라고 지었습니다. 특이하기도 하고 세상에 있어 ‘문제적‘인 인물이기도 하지만 세상에 대해 알아가려고 했던 경애에게 피조물이라는 별명은 잘 어울리기도 하면서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경애와 상수의 대화에서 ‘프란켄슈타인‘은 다시 한번 등장합니다. 시속 900미터로 움직이는 나무늘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상수는 그건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거 퇴행입니다. 문제를 피하는 거죠. (중략) 경애 씨가 좋아하는 그 프랑켄슈타인도 있잖아요. 은혜를 원수로 갚잖아요. (중략)“프랑켄슈타인은 박사 이름이고요. 지금 팀장님이 떠올리는 그건 프랑켄슈타인이 아니라고요.” (중략) 하기에 다들 그렇게 생각해요. 하고 덤덤하게 대답했다. (중략) “살면서 조금씩 안 부서지는 사람이 어딨어요? (중략) 망하는 줄 알면서 선택하고, 책임지기 위해서라도 기꺼이 부서지고, 상대를 괴물로 만들고 죄를 뒤집어 씌워봤자 뭐해요?”상수가 그러면 프랑켄슈타인이 아니면 그것의 이름은 뭐냐고 물었다. 경애가 그냥 피조물이에요,라고 하자 상수는 피조물의 정확한 뜻이 뭐더라 하면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존재 같은 거구나, 존재.” “존재랑은 좀 다르죠. 있다는 것과 있게 되었다는 것의 차이가 있으니까.”pp.154-156
[프랑켄슈타인]을 읽어보면 ‘피조물‘은 확실히 타의에 의해 있게 되었던 무언가입니다. 경애는 피조물이 가지고 있는 속성을 정확하게 알고, 조금씩 부서지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이야길 합니다. 우리는 부서지는걸 두려워하면서도 어떤 움직임에 대해 쉽게 판단해 버리는 오류를 범해버리기도 합니다. 이 책은 저의 첫 사회생활을 되짚어 보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정신없이 지나간 면접 후 합격 통지를 받고 첫 출근을 하면서 버스 정류장 앞에서 면접을 보러 갈 때는 보지 못했던 장면이 있었습니다. 피켓 시위를 하던 어떤 분의 모습이었습니다. ‘공장 이전 반대‘라는 피켓 문구 뒤에는 공장 하나가 있었습니다. 매일 출퇴근을 하면서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편한 마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장기 프로젝트를 마치고 본사로 복귀한 날 공장이 사라졌고, 퇴사 후 친구와 우연히 지난 그 장소에 큰 빌딩이 들어선 것을 보며 마음이 조금 복잡 해졌습니다. 그때 서 있던 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읽으면서 그때 느꼈던 감정들이 다시 떠오른 것을 보니 피켓을 들은 그분들의 모습이 제가 현실에서 본 ‘경애’의 모습이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경애의 엄마는 언제나 경애가 일어서는 아이라고 믿었고 꽃처럼 예쁘게 보내야 할 경애의 시간들이 오래되어 퀴퀴해진 빨래처럼 방치된 채 흐르고 있어도 슬프거나 경애에게 뭐라고 한 소리 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게 힘든 순간이 왔을 때 말 그대로 힘들어지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냥 자기 달은 아플 때 아파야 하는 사람이라서 그렇겠거니 여기면 속상해하거나 부대껴야 할 필요가 없었다. (중략)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그걸 부끄러워하면 내 자식은 죽는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자기라도 그러지 않으면 경애는 일어설 수 있었다.pp.102-103
경애와 경애 엄마의 관계성을 보여주는 이 부분이 ‘아 이 책을 이런 관점으로 볼 수도 있겠구나.’하면서 제가 앞부분을 읽으면서 만들어갔던 저의 시각에 또 다른 시각을 더해줬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회사에선 늘 시위를 하고 항의를 하던, 어쩌면 조직이라는 집단생활에서 이질적인 인물인 경애를 대하는 경애 엄마의 모습이 ‘경애‘라는 자아를 대하는 경애 마음의 또 다른 모습 같기도 했습니다.
누군가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일은 그 사람과 깊은 유대를 맺거나 내가 그 사람을 좀 안다는 자부심을 얻는 것과는 다르게 무기력해지는 것이기도 했다.p.200
이 책을 읽어가면서 점점 기본적인 이야기 흐름이 궁금한 것보다 앞으로 어떤 말이 나올지가 더 궁금했었습니다. 지난주 소개했던 [코끼리의 마음]이 도전에 대한 용기를 주는 책이었다면, 이 책은 어딘가 망가지고 상처 난 마음을 따뜻한 말로 위로해주기 때문입니다. 사실, 자기 자신의 상처 조차 똑바로 보지 못하면서 타인의 상처를 보려고 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그 상처를 조금이라도 해결을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게 책에서 말한 그 사람을 좀 안다는 자부심을 얻기 위함이었다니 조금 부끄러워집니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이란 함께 덜어져 내리는 것이다 ‘는 책의 내용처럼 그 상처를 알고 이해한다는 건 절대로 가볍고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 부분이었습니다.
상수의 인생에서는 늘 예상하지도 못한 일들이 벌어져 낭패감 속으로 몰아넣었다. 인생의 대부분의 날들이 상수에게 실패라는 결론을 선언하기 위해 준비된 듯 느껴졌다.p.248
저는 분명 초반에는 이 책을 읽으면서 회사 생활을 하다 상수와 경애와 같은 인물은 한 번쯤 봤다고 공감을 하면서 읽었습니다. 그런데 읽어나갈수록 상수와 경애가 누구나 목격할 수 있는 회사의 ‘이질적‘인 사람이 아니라 제 스스로와 가장 많이 닮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둘의 모습이 우리 모두의 각각의 모습은 아닐지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다 다른 사람이지만 한 집단에 소속되기 위해 타인과 같은 모습 인척 할 뿐 사실은 상수이고, 경애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누군가에게서 보인 경애의 모습이나 또 누군가로 대변되는 상수의 행동을 애써 부정하려 했던 건 저의 모습의 일부이기도 했기 때문에 거기서 온 거부감이었던 것 같습니다. 집단에 완전히 소속되기 위해서는 ‘다름’과 ‘독특함’이란 단어가 긍정적인 의미는 아니니까요. 일이 너무 힘이 들 때 아는 선배를 만나 팀에 적응하기 위해, 동화되기 위해 계속 노력했다는 걸 한참을 늘어놓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묵묵히 제 말을 듣고 있던 선배의 입에서는 다행이라는 뜻밖의 이야기가 나와 순간 당황해서 멍했습니다. “계속해서 노력을 해야만 하는 집단이라는 것은 그들과 달랐다는 거다. 노력할 필요조차 없었다면 결국엔 그들과 네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마터면 그들과 같아질 뻔했는데 너는 너 자신을 지킨 거야.” 덤덤한 그 말이 시간이 지날수록 그 어떤 말보다 위로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누구나 살면서 한 순간도 마음을 다하지 않은 적은 없었을 것입니다. 경애는 피켓 시위를 하면서 지하상가를 지나다 노숙하는 여자와 아기를 보고 무심코 예전에 말했던 ‘불행‘이라는 단어를 정정합니다. 누군가를 그렇게 불행하게 여길 자격은 없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마음을 함부로 가볍게 여기진 않았는지, 온 힘을 다해 사용한 자신의 마음을 미쳐 보지 못하고 있던 것은 아닌지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마음’을 키워드로 책을 찾다 보니 저도 모르게 마음을 얹어 읽게 되어 조금 무거웠던 것 같습니다. 다음 책은 ‘마음‘과 다르게 조금 가벼운 ‘인간의 본능’을 키워드로 선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