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누군가 한 번쯤 내게 이렇게 말한다면, 코끼리야, 이 나무에 올라가도 좋아. 하지만 반드시 그래야 하는 건 아니야.
내가 위에서 바다를 본다면, 코끼리야, 춤을 춰도 좋아, 피루엣도 하고, 하지만 반드시 그래야 하는 건 아니야.
그리고 내가 춤을 추고, 온 세상이 내 주위를 돌고 있다면, 코끼리야, 떨어져도 좋아, 하지만 반드시 그래야 하는 건 아니야...... p.211
책을 누군가에게 권하는 건 조심스럽기만 합니다. 괜히 책을 건네받는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깊은 공감을 산 책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이 마음에 들어할 것이란 확신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제가 처음으로 여러 사람에게 권하고 구입해서 선물했던 책입니다. 이 책을 읽는 다른 사람도 이 책을 좋아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 나름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이 책을 읽었습니다. 아무거나 한 권만 금방 읽어보고 가자는 생각으로 도서관에서 책을 찾다가 이 책을 만났는데 새삼 동화의 위대함을 느꼈습니다. 짧고 쉬운 이야기지만 한 줄 한 줄 읽어서 넘기는 속도가 더뎌지는 책이었거든요.
제가 소개해 드릴 책은 톤텔레헨의 [코끼리의마음]입니다.
[코끼리의 마음], 톤 텔레헨 저, arte, 2018
여기서 코끼리는 계속해서 나무에 오르는 시도를 하는 친구입니다. 이 마을에서 나무를 오르는 일을 하는 건 코끼리뿐입니다. 날마다 나무에 오르고 떨어지고, 뒤통수에 혹이 나고.. 다른 동물들은 코끼리가 떨어지는 것을 보거나 소리를 듣고 그를 걱정합니다. 그러면서 각자 ‘내가 코끼리라면...’하면서 가정을 해봅니다. 그들의 시선에는 코끼리 도전이 어리석거나 무모해 보이진 않는 거 같습니다. 코끼리는 하루는 숲 속을 걷다가 자신이 나무에 오르고 떨어지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일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나무에서 떨어지면 아파서 제대로 못 걸을 테고 생일 파티 같은 초대도 모두 거절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참나무 아래 풀숲에서 신음을 하고 있는 코뿔소를 만납니다.
“코뿔소! 무슨 일이니?” 코끼리가 물었다. 코뿔소는 눈을 뜨더니 코끼리를 보고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코끼리야, 나도 참나무에 올라갔었어. 말하기 부끄럽지만, 사실이야. 꼭 한번 나무에 올라가 먼 곳을 보고 싶었거든......” (중략) “나는 피루엣까지 시도했어! 상상해봐, 피루엣이라니, 내가, 이 코뿔소가 말이야......” 코끼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연히 나는 절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거든.” (중략) “내가 전혀 다른 존재가 된 것 같았어.” (중략) “다른 친구들이 나를 비웃는 건 싫어” pp.21-24
사실, 이 마을에서 공식적으로 나무를 타는 건 코끼리뿐입니다. 코끼리의 도전에 대해 아무도 비난하지는 않았지만, 나무에 오르는 일은 코뿔소의 이야기를 보면 친구들에게 비웃음을 살까 숨기고 싶어 하는 일인가 봅니다.
어느 날 저녁, 코끼리는 고민을 합니다. 자신처럼 나무에 오르고 싶어 하지만 다른 친구들의 시선에 두려움을 느끼는 코뿔소의 모습이 코끼리에게 고민을 준 것 같습니다.
어느 저녁, 코끼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꼭 나 자신에 대해 뭘 생각해봐야 하나?’ 계속 쓸데없는 것만 떠올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아니면 누가? p.25
코끼리가 자신에 대해 무얼 고민해야 할지 생각하는 중에 탁자에 놓인 찻잔이 말을 건넵니다. 찻잔이 말하는 것을 보고 코끼리는 찻잔에게 또 무얼 할 수 있는지 물어보니 찻잔은 오르기를 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합니다.
“조심해” “뭘?” 찻잔이 벽 중간쯤에서 잠시 멈추더니 물었다. “위험하잖아.” “왜?” “넌 곧 떨어질 거야.” “그럼 어떻게 되는데?” “산산조각 나버리겠지.” “그게 나쁜 건가?” “글쎄, 나쁜가......” 문득 코끼리는 자신도 그 이상은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떨어져서 산산조각 나는 게 나쁜 거야? p.27
어떤 일을 도전할 때 타인의 시선이 걱정될 때가 많습니다. ‘그 길로 가면 안 돼, 위험할 거야’라는 말을 들을 것만 같거든요. 막상 그런 말을 듣기도 전에 괜히 그런 말이 들었을 때를 가정하며 대답을 생각해보기도 하고, 움츠려 드는 것만 같습니다. 그런 고민을 코끼리가 한 것은 아닐까요? 만약 다른 사람이 이게 부끄러운 일이라고, 위험한 길이라고 말하면 어떡하지? 이때 찻잔은 말해줍니다. 산산조각 나는 것. 그게 나쁜 건건가? 그런 걱정의 시선의 끝에 있는 결과가 과연 나한테 나쁜 것인가? 그런 걱정을 내가 미리 예상하고 오르지 못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음을 찻잔은 보여줍니다. 그리고 사실 코뿔소는 자신의 도전에 대한 다른 친구들의 시선을 걱정했지만, 사실 사자, 잉어, 멧돼지, 하루살이 등 다른 동물들은 오히려 코끼리를 보며 생각합니다. “내가 코끼리라면...?”이라고요. 그러고선 각자 자신의 기준과 삶에 맞춰서 코끼리의 삶을 받아들입니다.
코끼리는 계속해서 떨어지고 숲 속의 모든 동물들이 코끼리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마지막은 코끼리의 일기로 이 책은 마무리가 됩니다. 저는 이 마지막 때문에 이 책을 샀습니다. 몇 번을 읽어도 제가 말로,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내용이 코끼리의 일기 속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저기, 고슴도치랑 거북이가 있네, 그들은 오르는 게 뭔지 알 리가 없어.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오르고 떨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아닐 거야. 그들의 인생은 그냥 그렇게 흘러가겠지, 오르고 떨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 한번 나누지 않고, 어쩌면 생각조차 해보지 않고.
그리고 여기, 내가 있어. 내 인생도 그냥 이렇게 흘러가겠지, 다른 어떤 것에 대해서는 생각 한 번 해보지 않고. (중략) 어느 날 잠에서 깨보니 나는 더 이상 코끼리가 아니었다. pp.204-205
코끼리는 자신의 도전이 자신이 코끼리이기 때문에 하는 것임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여기 나온 동물들은 각각의 다른 사람들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각자가 ‘나’이기 때문에 하는 일들이 있고, 그런 도전들에 대해서 ‘나’이기 때문에 하는 것임을 알고 있다면 굳이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을 수 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나’가 아닌 ‘너’로서 받아들일 때가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자신의 시선에서 보지 않고, 그런 자신을 보는 타인의 시선에 연연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특별한 존재입니다. 자신의 삶을 타인의 기준에 재단받지 않을 권리도 있고, 어떤 기준에 자신을 끼워 맞출 필요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스스로를 ‘특별하게’ 여기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나’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에게 당당해져보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이 책에서 제일 좋아하는 마지막 부분입니다.
만약 누군가 한 번쯤 내게 이렇게 말한다면, 코끼리야, 이 나무에 올라가도 좋아. 하지만 반드시 그래야 하는 건 아니야.
내가 위에서 바다를 본다면, 코끼리야, 춤을 춰도 좋아, 피루엣도 하고, 하지만 반드시 그래야 하는 건 아니야.
그리고 내가 춤을 추고, 온 세상이 내 주위를 돌고 있다면, 코끼리야, 떨어져도 좋아, 하지만 반드시 그래야 하는 건 아니야...... p.211
코끼리 이기 때문에 하는 도전이고, 반드시 그래야 하는 건 아니라는 말이 정말 와 닿았던 게 제가 이 책을 읽을 당시 저의 삶의 기준을 저에게 맞추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저의 도전을 타인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꼭 결과를 내서 다시 보여준다는 것도 사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떤 도전이나 시도가 ‘나’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면서 반드시 그래야 하는 건 아니라는 이 말이 저에게 위로로 다가왔습니다.
이 책을 소중하게 보관한다면서 너무 깊숙이 꽂아둔 바람에 찾는데 한참 걸렸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책이라 좀 더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고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많은 위로를 받았거든요 :)
[코끼리의 마음]은 정말 우리의 마음을 잘 읽어주는 책이었는데, 다음은 비슷한(?) 제목의 소설을 가지고 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