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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씨 Sep 10. 2019

명절이라는 이름의 폭력




우리는

채소와 과일 값이 오르기 시작하고 버스와 기차표 매진 행렬에 명절이 다가왔음을 실감한다.

당장 등교와 출근이 없다는 것 만으로 손꼽아 기다리기도 하고, 모처럼 여행을 계획하기도 한다.

오랜만에 친지 가족들과의 만남에 음식을 준비하고 선물을 준비한다.


동시에

명절 전후가 '이혼 시즌'이라는 사실을 아는지.

명절 하루 평균 '가정 폭력' 신고가 1000건에 달하는 사실도.


김 아무개는 일찌감치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떠난다, 하늘길은 막히는 법이 없다.

동시에 다른 김 아무개는 승용차를 타고 '남편의 고향'으로 떠난다, 귀성길은 뚫리는 법이 없다.


박아무개는 일찌감치 가족들과의 식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남은 휴일은 적당히 자고, 먹고, 쉬기로 한다. 

동시에 다른 박아무개는 기숙사에서 쓰던 자소서(설)나 마저 쓰기로 한단다.

또 다른 자취방에는 홀로 맥주캔을 따는 젊은 박아무개와 적적해진 동네, 더 적적한 방에 홀로 있는 늙은 박아무개도 있다. 이들에게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는 가족의 모습이란, 연출된 드라마의 한 장면일 뿐.



두 얼굴의 명절

어렸을 적엔 그저 명절이 좋았는지도 모른다. 어딜 가나 어른들은 꼬까옷을 입은 나를 귀여워했고, 못 본 새 많이 컸다고 안아주었으며 문방구를, PC방을, 때로는 백화점을 들락날락할 용돈이 생기기도 했으니. 그러던 나에게 그만한 동생들이 생길 무렵부터 새로운 질문이 시작되고 해마다 질문은 버퍼링도 없이 업그레이드된다.

"그래, 시험은 잘 봤니?"
"요즘 학원은 어디 어디 다니니?"
"반에서 몇 등이나 하니?"
"대학은 어디로 갔다고 했지?"
"취업은 했니?"
"월급을 얼마나 된다니?"
"만나는 사람은 있니?"
"시집/장가는 안 가니?"
"너희 아이는 안 갖니?"
"더 늦기 전에 둘째는?"
"..." 

옆에 있는 사촌과 건너편에 앉은 부모님, 마당에 있던 삼촌의 표정을 보니

나만 그런 질문을 받는 건 아닌가 보다.

더 무서운 사실은, 방금 전 불편함을 느끼고도 조카에게 몇 등이나 하냐고 묻고,

조금 전 타박을 받고도 아랫동서에게 면박을 주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명절이라는 이름 아래 어느 때보다 풍성한 식탁 앞에서 웃는 낯을 띄고 폭력을 일삼고 있다.

우리는 그 폭력의 피해자이기도 하고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하다.

이런 것을 소위 '불편한 진실'이라고 해야 할까.



딱 이 정도만 유념하면 어떨까,

내 가족에게는 '내'가 제일 잘하면 돼요.

먹을 줄 알면 치울 줄도 알아야죠, 한 번은.

본인이 대답하기 싫은 것, 질문하면 실례예요.

올 가을 '명절'엔 좀 더 행복합시다. 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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