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관찰 (블랙)코미디 에세이 「방송국 놈들」
ep.01 마부장의 라떼는 쓰다.
마부장은 라떼를 좋아한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 신입사원 놈을 본 마부장은 그의 옆에 섰다. “할 만하냐?” 신입사원은 갑자기 알은체를 하는 마부장을 보고는 어깨를 움츠렸다. “아…예, 부장님.” 신입사원의 대사에 마부장은 준비한 카드를 꺼내듯 다음 대사를 뱉었다. “커피 좋아하냐?”
좁은 카페 안, 방송국 옆에 붙은 커피가게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렇다. 신입사원 놈은 ‘커피 좋아하냐’는 마부장의 말을 끝으로 끌려와 카페에 앉혀졌다. 신입사원의 가느다란 다리는 덜덜 떨리고, 투명한 액체가 흐르는 손은 핸드폰을 꽉 쥐고 있다. 혹여나 이 농땡이의 현장을 들키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신입사원이었다. 마부장은 그런 그를 한마디 말로 안심시켰다. “괜찮아, 인마.” 두툼한 얼굴 살에 인자한 미소가 올라왔다. 그의 표정은 입으로 뱉지 않은 말을 마저 뱉고 있었다. 나랑 있는데, 뭘. 그는 다리를 꼬고는 어깨를 펴 소파에 기댔다. 지이잉. 커피가 완성되었다는 벨이 울리자 신입사원은 총알처럼 달려갔다. 마부장의 눈빛은 흐믓하게, 그리고 권위적으로 신입사원의 잽싼 움직임을 따라갔다.
“부장님 라떼요.” 신입사원은 부장에게는 라떼를 내밀고, 남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자기 앞에 끌어다 놓았다. “나 편집할 때는 이 손목 스냅이 중요했어. 탁탁. 레버 돌리면서 편집하던 시절이었거든. 탁탁, 너 이거 모르지.” 목구멍에 라떼를 적신 마부장은 묵힌 말들을 토해냈다. “아, 그래요? 저희는 요즘 프리미어로 편집해요.” 신입사원은 고민 끝에 최선의 리액션을 뱉었다. 하지만 그의 리액션이 타석에 날아가기도 전, 마부장의 대사가 날아왔다. “아, 그래? 우리는 촬영 나갈 때도 그 6미리 있지, 그거로 여기저기 국내를 그냥 삐잉 도는…” 자신의 영웅담 18번을 말하는 마부장의 눈은 천진난만하게 빛났다. 지잉. 지잉. 이번에는 카페 벨이 아니었다. 신입사원을 찾는 카톡이 정신없이 오는 그의 핸드폰이었다. 그의 핸드폰 한번, 고고하게 침묵을 지키는 자신의 핸드폰 한번 보던 마부장은 한 손에 라떼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 가자. 그는 남은 라떼를 입에 털어넣고는 눈썹을 찌푸렸다. “이 집 라떼는 왜 이렇게 쓰냐.”
띵동. 말 없는 마부장과 핸드폰 보랴, 부장님 눈치보랴 정신없는 신입사원을 태운 엘리베이터가 8층에 멈췄다. 느리적느리적 엘리베이터 나오던 마부장은 사무실로 들어가는 한 남자를 보고는 쏜살같이 달려갔다. 마부장의 두툼한 허리가 90도로 꺾이자 흰머리는 속절없이 휘날렸다. “어어.” 인사를 받는 소리가 저 위에서 들려왔다. 본부장이었다. 마부장은 라떼가 묻은 입술을 닦고는 주저리주저리 무언가 말하고 있었다. 이번 프로그램은, 협찬만 곧, 아마, 기다려 주시면. 끊겨서 들리는 말소리에도 그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어어.” 본부장은 그렇게 한마디 말로 반응한 뒤 그 복도를 떠났다. 굽었던 허리를 편 마부장은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지잉. 지잉. 여전히 울리는 핸드폰을 손에 쥔 신입사원이었다. 축 처진 마부장의 눈이 신입사원을 향했다. “열심히 해라.” 그의 표정은 입으로 뱉지 못한 말을 마저 뱉고 있었다. 기회 있을 때, 열심히 해라. 마부장은 목구녕에 묻은 라떼를 마저 삼켰다. 마부장의 라떼는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