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2 잉선생, 홍보팀 송차장

인간 관찰 (블랙) 코미디 에세이 「방송국 놈들」

by 펜피디

‘맞춤형’이라는 단어는 비단 양복점에서만 필요한 게 아니다. K가 입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을 때의 일이었다. 입사 초기니까 튀지 않게 옷을 단정하게 입어야 해. 자식 걱정이 많은 K 어머니의 당부였다. K는 잘 다려입은 슬랙스 바지와 하얀 와이셔츠를 입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는 순간 그는 알았다. 후드집업과 청바지가 난무하는 이 판에서 K는 오늘 가장 튀는 옷을 입고 있었다.

“피디니임, 어디 면접 가? 벌써 퇴사행?”

검은색 슬랙스에 바짝 언 K를 보고 말을 건넨 건 송차장이었다. 그녀는 발가락이 튀어나오는 슬리퍼에 무릎이 훤히 보이는 반바지, 다부지게 묶은 머리와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단단히 죄는 머리띠를 두른 채였다.

“차장님, 안녕하십니까!”

K의 다부진 음성이 복도에 울려퍼졌다. “응, 수고행.” 동그란 이응의 비음이 K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K는 멍하니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동그란 안경, 그리고 피곤에 절인 듯 풀린 눈으로 사람을 응시하는 송차장. 그녀는 방송국의 홍보팀장이었다. 약 6가지가 넘는 프로그램을 홀로 맡은 그녀에게는 한 가지 무기가 있었다. 날카롭다기보다는 동그란 무기. 바로 ‘이응’이었다.


그녀는 모든 어미에 이응을 붙였다. 피디님잉, 팀장님잉, 금방 주세영, 알겠어영, 감사해영. 일관성 있는 그의 말투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건 그녀의 무기가 지닌 힘이었다. 6가지 프로그램을 맡는다는 건 6명의 피디와 소통해야 한다는 뜻이었고, 몇십 가지가 넘는 안건을 팀장에게 결재받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팀장님잉, 이거 결재 좀 해주세영.”

슬리퍼를 끌고 날아가 팀장에게 내려앉은 그녀는 가뿐하게 결재를 받았다. 신입사원 K의 눈이 번뜩이는 순간이었다. 바로 저거다.


늘 다나까를 시전하며 얼어붙은 K의 눈에 그녀의 무기는 강력하다못해 충격이었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건 바람이 아닌 따스한 해라는 그 진리가 이곳에서도 통하는 것인가. 다나까를 벗어던진 K는 곧바로 이응을 붙이기 시작했다.

“선배님잉, 이거 확인 한번 부탁드리겠습니당”

얼어붙은 K의 입에서 안쓰러운 이응이 흔들거렸다. 이응을 맞은 선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꿀꺽. K의 불안한 눈동자가 선배의 입을 응시했다.

“똑바로 말 못 하냐.”

흔들리던 K는 곧장 돌아왔다.

“넵.”


풀이 죽은 K의 어깨로 송차장의 이응이 내려앉았다.

“피디님잉, 혼났엉?”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슬리퍼를 끌고, 졸린 눈을 비비며, 숙직실로 향했다. 그냥 이응만 붙인다고 되는 건 아니라고, 각자에게 맞는 소통의 기술이 있는 거라고, K에게 미리 말해주는 이는 없었다. 이응은 업무가 많아도 직접 얼굴보고 소통하려는, 발가락부터 머리끝까지 피곤을 붙인 송차장에게 맞는 무기였다. 바쁜 와중에도 최선을 다하는 그녀의 이응은 상대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소통에도 맞춤형이 존재한다. 맞춤형이란 단어는 양복점에서만 필요한 게 아니다.




-사진은 길에 줍고, 글은 일상에서 캡니다. (각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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