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 작가들의 대물림.

인간 관찰 (블랙) 코미디 에세이 「방송국 놈들」

by 펜피디

방송판 작가들은 일종의 블랙리스트를 물려 받는다.


모든 작가가 빙 둘러 앉은 회의실, 왕작가는 세컨 작가가 건넨 커피를 쥐고 결연한 표정으로 빈 의자를 쳐다봤다.


“막내 작가는 아직이야? 지원한 애들 좀 보자.”


얼마 전 나간 막내작가의 자리. 왕작가는 커피를 타 줄 막내를 기다리고 있다. 다음 달에 있는 시어머니 칠순 잔치도 같이 준비하려면 서둘러야 했다.


“아, 블랙리스트 좀 줘봐라. 리스트에 있는 애들은 일단 거르고 나한테 넘겨.”


2023 블랙리스트_5년이하.txt


세컨인 박작가는 왕작가의 말에 블랙리스트 파일을 켜 명단을 살폈다. 처음보는 이름 반, 아는 이름이 반이다. ‘얘가 왜 여기에 있지’ 하는 의문에 박작가의 마우스가 떨림을 멈출 무렵, 왕작가는 담배를 한 손에 쥐고 방을 나섰다.


타악. 문이 닫히기 무섭게, 공기가 바뀌었다.


”요즘 작가 자리 뜬 거 없어? 나 더는 못 버텨.“


셋째 작가인 김작가였다. 칠순 추천 뷔페 리스... 그녀는 파일 제목의 마지막 글자를 마저 적지 못하고 한숨을 토해냈다.


“리스트 업뎃된 거 올려봐.”


세컨 작가의 말에 김작가는 메모 파일 하나를 박작가에게 은밀히 보냈다.


2023 블랙리스트_5년이상.txt


바뀐 것은 마지막 글자 하나. 5년이하, 5년이상.

숫자 하나로 기준을 달리한 파일은 같은 형태로 다른 명단을 담고 있다.


“공고 뜬 건 죄다 블랙이야. 금방 새 사람 뽑는 건 안 봐도 뻔하지 뭐. 얼마나 굴리면 하루가 멀다 하고 애들이 다 나가겠어?”


5년 이상된 선배 블랙리스트를 살피던 김작가는 그만 목구멍을 타고 올라온 진심를 뱉었다.


터벅터벅. 타악. 담배를 두른 왕작가가 문을 열고 돌아오는 소리였다.


왕작가는 심각한 표정으로 노트북 화면에 눈을 고정한 작가들을 바라봤다. 이내 왕작가는 무엇인가 알아낸 듯 혀를 찼다.


“요즘 뽑을 애들 없지?”


후배 작가들이 물려받은 건 블랙리스트 파일 하나. 하지만, 그들이 물려받은 건 비단 파일이 아닐 거다.


박작가는 방금 전 김작가에게 받은 파일에 그대로 시선을 고정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칠순 심부름, 외모비하, 이유를 알 수 없는 히스테리... 치밀하게 적힌 선배들의 치부를 읽던 박작가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게요, 언니. 괜찮은 사람이 하나 없네요.”



*사진은 길에서 줍고, 글은 일상에서 캡니다. (각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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