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씌우는 필터를 경계할 것
여전히 마드리드에 있다. 기대가 크지 않았어서인지 나는 이 도시가 꽤 맘에 드는데, 이상하게 사소한 데서 자꾸 덜컥거린다. 어설픈 실수가 생기고,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나쁜 일이 일어난다.
이를테면 둘째 날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는 직원이 그만 나의 크림색 코트에 오렌지 주스를 쏟고 말았다. 작지만 발 디딜 틈 없이 꽉 찬 '브런치 클럽'에서는 점심을 먹는 모든 사람에게 오렌지 주스를 제공하는데, 서버가 수많은 주스 잔을 들고 오가던 중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바로 전 레알 마드리드 오피셜 스토어에 들러 굿즈를 사고 신나게 식당으로 온 것까진 좋았는데. 간발의 차로 웨이팅 없이 바 자리에 앉은 것까지 더할 나위 없었는데. 노랗게 얼룩진 옷을 보자 울컥하며 기분이 곤두박질쳤다. 스태프가 사과하며 스프레이로 응급 처치를 하였지만, 구겨진 마음엔 얼룩진 생각들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지. 사과를 적당히만 한 듯한 건 기분 탓인가. 얼룩이 점점 이상하게 하얘지는데 이 스프레이 제대로 된 건 맞나.
그때, 바 맞은편에서 시종 무뚝뚝한 얼굴로 오렌지 주스를 만들던(정확히는 신기한 주스 기계에 열심히 오렌지를 넣던) 직원이 서툰 영어로 내게 말을 건넸다. “너, 얼굴이 :( 이렇게 됐어.” 양 검지로 축 처진 입꼬리 모양을 만든 그녀는 무척 미안해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그녀의 인간적인 표정에서 따뜻한 진심이 느껴져서였을까. 나도 금방 어두운 기분에 압도되지 말아야지 하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이후로도 틈틈이 내 기분을 살피던 듯한 그녀는 식사를 마치고 나가려는 내 손에 갓 내린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들려주었다. 주스를 쏟았던 직원은 나도 모르는 새 음식값을 할인해 주었고, 하얗게 굳은 자욱을 툭툭 털어내니 흔적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어떻게든 심신에 얼룩이 지는 순간이 생겨난다. 아시아 출신의, 젊은, 여성이, 홀로 서양인들 사이에서 유럽을 누비자면 마치 오렌지 주스 잔들 투성이를 굽이굽이 피해 걷는 듯한 기분이 든다. 방심했다가는 소매치기나 성희롱이 철퍽 끼얹어진다. 하루의 끝에서 만 보 넘게 걸은 다리보다 더 아픈 건 가방끈을 꼭 쥐어야 했던 손목과 종일 긴장했던 어깨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지. (내가 아시안이어서 허투루 본 걸까?) 사과를 적당히만 한 듯한 건 기분 탓인가. (젊은 여자애가 혼자 와서 이런 걸까??) 얼룩이 점점 이상하게 하얘지는데 이 스프레이 제대로 된 건 맞나. (다시 안 볼 여행자라고 대충 수습하는 거 아냐???) 의식의 흐름은 대강 이랬을 것이다. 피해의식은 보통 경험치에서 생겨난다. 대학생 때 파리에서 유학했던 경험과 이후 떠났던 해외여행들은 대개 즐거웠지만, 종종 억울하게 겪어야 했던 불쾌한 일들은 나를 이같이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치만 고소한 라떼를 한 모금 마시고 크게 숨을 들이쉬자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나의 상태를 너무 지나치게 의식한 건 아닐까? 스스로 나 자신을 가장 열렬히 이방인으로 규정하면서 일의 잘못된 흐름을 모두 탓하기만 한 건 아닐까. 돌이켜 보면 만회할 수 있는 순간들이 분명 있었다. 직원이 주스 잔을 서빙하는 모양새가 불안하단 걸 눈치챘었고, 옆자리에 대충 올려둔 코트를 옷걸이에 걸까 했지만 귀찮아서 그냥 놔뒀다. 내가 더 철저한 인간이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지 서툰 이방인이거나 서툰 여행자여서 벌어진 일이 아닌 것이다. 무작정 방심해서도 안 되겠지만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스스로를 어떤 꺼풀 안에 가두지 않는 일이었다.
여행지에서뿐만 아니라 살면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관계에서 이 한 꺼풀이 끼어드는 걸 주의해야 한다. '일터에서 만난 사인데', '나는 아직 여자친구가 아닌데' 같은 필터들은 씌워봤자 사람 사이 화학작용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연인, 친구, 직장 선후배 등 어떤 형태로 만났든지 간에 사람이 사람에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은 진심의 영역에서 꽃핀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타인을 입체적으로 볼 줄 안다. 각 영역에서의 내 모습이 모두 같을 수 없고 똑같을 필요도 없다. 내가 가진 낱낱의 단면들은 그야말로 각각의 특징일 뿐, 그중 하나에 날 가둬놓고 규정해서는 안된다. 그러지 않으면 '아주 납작한 나' 또는 '피로한 나'만 남아버리는데, 이건 서툰 인간보다 훨씬 별로다. 그래서 나는 좀 더 편하게 벗어던지기로, 자연스러워지기로 결심했다. 하여 이곳에도 밝혀둡니다, 이 간단한 사실을 이베리아 반도까지 날아가 오렌지 주스를 쏟고 깨달을 만큼 게으르고 서툰 인간임을. 대신 이후의 여정에서 훨씬 자유롭고 풍요로운 여행자가 되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