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프랑코 폰타나 COLOR IN LIFE 전시를 다녀왔다. 사실 프랑코 폰타나 전시회를 방문하기까지 오랫동안 갈까 말까 고민 중이었다. 왜냐하면, 최근 들어 유명 작가 혹은 뜨고 있는 신인 작가들의 사진전이 너무 많이 기획되고 있다 보니 "사진"에 관한 전시회가 살짝 신물이 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긴 고민의 시간은 그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지경이 될 정도로 감동적인 시간이었다. 지금부터 프랑코 폰타나의 생기 넘치는 [COLOR IN LIFE]를 소개한다.
프랑코 폰타나는 '컬러사진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이탈리아 출신의 사진작가이다. 1960년대 초반에는 보통 흑백사진이 대부분인 시기였지만 프랑코 폰타나는 이러한 일반적인 표현방식에서 벗어나 오롯이 컬러 사진 작품을 만들어왔다. 그의 컬러 사진은 독특한 특징이 있다. 바로, 그의 작품은 사진이 아니라 그림 같다는 것이다. 프랑코 폰타나의 컬러 사진 작품이 그림같이 보이는 이유는 사진의 투명도를 과소 노출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한 폭의 회화 작품처럼 표현된다. 전시장에서 그의 작품을 처음 마주했던 순간에 나도 모르게 '와...!' 하는 짧은 감탄사가 나왔다.
이것은 사진인가 그림인가?
이번 프랑코 폰타나 : COLOR IN LIFE는 말 그대로 우리 삶 속에 담겨있는 수많은 컬러를 담아 표현한 작품을 선보인다. 한국에서 최초로 열리는 프랑코 폰타나의 회고전이기도 하다. 60년대부터 지금까지 약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가 카메라에 담은 수많은 삶의 풍경은 참으로 다채롭다. 전시를 보다 보면 마치 언젠가 우리도 프랑코 폰타나와 비슷한 시선으로 풍경을 보았던 순간이 있었던 것만 같기도 하고, 때로는 세상에 정말 이런 곳이 있나 싶을 정도로 낯선 풍경이지만 경이롭다고 생각되는 모습을 마주할 수도 있다. 그게 바로 폰타나의 예술이다. 익숙하지만 어딘가 낯설기도 한 모습 속에서 우리는 왠지 모를 새로움을 발견하고 즐거움을 느끼게 될 테니까.
무려 122점이라는 수많은 작품들은 총 4가지의 테마로 소개된다. 먼저, 전시장의 첫 순서는 '랜드스케이프'를 테마로 한다. '랜드스케이프'는 폰타나가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다양한 세계 각국을 여행하면서 순간순간마다 담은 비현실적이게 경이로운 풍경들을 모아놓았다. 개인적으로 해당 전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섹션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와...!'라는 감탄사가 나올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감히 이 작품들을 사진이라고 말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프랑코 폰타나의 풍경 사진 구도와 보색 대비는 정말 놀랍도록 보는 이로 하여금 굉장히 평면적이라는 느낌을 각인시킨다. 아래의 그림은 정말 그냥 하늘색, 초록색, 갈색, 노란색을 칠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좌 바실리카타, 우 풀리아
두 번째 섹션은 '어반스케이프'를 테마로 한다. 해당 섹션에서는 아마도 모두가 놀라운 황금 비율에 사로잡힐 것이다. 프랑코 폰타나가 담은 도심 속 풍경은 때로 균형적이며 기하학적인 구성이었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아주 평면적이다. 이토록 입체감이 느껴지지 않는 도심 속 풍경은 낯설면서도 매력적이다. 세상이 온통 납작해 보인다는 느낌이 정말 딱 적절한 표현이다. 게다가 프랑코 폰타나의 센스 있는 색의 조합과 사진의 구도로 포착된 장면은 우리가 자주 접하는 풍경 같지가 않았다. 마치 누가 그림으로 그렸거나 혹은 합성으로 만들어 놓은 듯한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인지 프랑코 폰타나의 지극히 평면적인 감각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이곳은 어디일까?", "이 건물은 무슨 용도일까?", "이 안에 어떤 시간과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등 끊임없이 호기심이 일렁인다.
좌 펠레스트리나, 우 로스앤젤레스
세 번째 섹션은 '휴먼스케이프'를 주제로 한다. 휴먼스케이프에서는 말 그대로 사람 즉 인체가 형태와 색과 어우러져 절묘한 풍경을 만들어낸 모습을 담은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말이 어려워서 그렇지 해당 섹션의 대부분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그냥 사람 지나가는 장면을 찍은 것 같거나 혹은 사람인 것처럼 보이는 그림자나 실루엣이 담긴 풍경들이다. 하지만 반대로 "정말 저게 사람이 맞을까?" 혹은 "어떤 물체인데 절묘하게 사람처럼 보인 것은 아닐까?" 하는 호기심도 유발한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눈에는 어떻게 보이는가? 그리고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프랑코 폰타나에게 절묘하게 포착된 작품 속 풍경은 정말 놀랍게도 다양한 이야기를 상상하고 그려내게 만든다. 휴먼스케이프에서 보게 되는 작품들은 하나같이 빛, 그림자, 실루엣, 피사체 등 몇 가지 요소가 모여서 탄생한 순간이며 당연하게도 프랑코 폰타나에 의해 요리된 절묘한 구도를 품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작품들은 과연 프랑코 폰타나는 어떤 생각으로, 어떤 해석의 과정을 거쳐서 이 장면을 촬영했을지 우리를 몹시 안달 나게 하는 것이다.
주리고, 1981
세 번째 섹션의 작품들 중에서 '프라멘티 시리즈'가 있다. '프라멘티'는 '조각들, 파편들'을 뜻한다. 해당 시리즈에 속한 작품들은 대부분 피사체의 한 부분을 아주 확대하여 보여준다. 결국 피사체의 일부분만 보게 되는 우리 입장에서는 불분명한 피사체와 확대하여 찍힌 장면에서 주는 분위기를 통해 수많은 소설을 쓰게 된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이렇게 찍을 거면 뭐 하러 찍었어? 다 보여줄 것도 아니면서"라고. 하지만, 모든 정보를 다 담고 있는 사진도 결국 아무것도 담지 않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아주 한정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사진이 때로는 가장 무수한 정보를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게 무슨 말장난인가 싶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는 공감이 되지 않는가? 다 아는 것 같아도 하나도 모르는 것 같지만 하나도 제대로 모르는 것 같아도 모두를 얼핏 아는 것 같은 그런 것처럼. 프랑코 폰타나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사진은 보는 것이 아닌 생각하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휴스턴, 1985
마지막으로, 네 번째 섹션의 테마는 '아스팔토'이다. 폰타나는 언젠가 자신의 삶 속에 새로운 풍경이 등장하는 것을 목격한다. 바로, 아스팔트 도로이다.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는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피사체가 생겨났고, 빠르게 움직이는 피사체들이 소통하기 위해 만든 언어 기호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프랑코 폰타나는 엄청난 속도로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피사체를 포착하는 순간 형상이 뭉개지고 흐릿하게 보이는 표현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냥 빠르게 달리는 물체를 찍은 것 같지만 피사체가 지나가며 남긴 절묘한 흔적은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변형되어 표현된다. 솔직히 앞서 소개된 섹션들만큼 다양한 상상이 펼쳐지거나 엄청 재미가 느껴지는 주제와 작품은 아니었다. 그런데,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대체 저 피사체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얼마나 빨리 달리면 저렇게 포착될 수 있을까?' 등 다양한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걸 보니 나름의 흥미 요소가 분명히 담겨 있는 듯하다.
아우토스트라다
마이아트 뮤지엄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랑코 폰타나 전시장 중반부에는 영상이 재생되고 있는 공간이 나온다. 프랑코 폰타나의 인터뷰 영상을 접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프랑코 폰타나의 재치 있는 답변 속에서 꽤 많은 배움을 얻었다. 그가 전한 말속에는 오랜 세월을 살아가고 있는 한 어른으로써, 오랜 시간 '사진'이라는 작업을 해 온 전문가로서, 오롯이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낼 줄 아는 예술가로서의 '인생'이 담겨 있었다. 그는 사진가로서 이렇게 말했다. "사진은 현실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인생의 어른으로써 이렇게 말했다. "최대한 삶이 이끄는 대로 살려고 노력하세요."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에게 "스스로가 누군지 알아야 하며 그것이 정체성이고 가장 중요하다."라고 전했다. 우리가 바라보는 무언가는 우리만의 해석을 통해 주체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우리 삶의 진정한 주인공이 되기 위하여 모든 순간마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나만의 해석을 담으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삶 속에서 '나'를 놓친 것 같은 당신, '나'에 대하여 생각해본 적이 없는 당신, 상상력과 창의성이 메마른 것만 같은 당신 기타 등등. 적어도 이러한 상황에 한 번쯤 놓여 본 그대들이라면 프랑코 폰타나의 전시는 충분히 겪어봐도 좋을 시간이자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