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청객이 찾아왔다. 찾아온 줄도 모른 체 정신없는 하루하루 를 보내던 시기였다. 네이버 맘마노트에서 유아반찬 촬영 요청이 들어왔지만 거절했다. 무슨 배짱이었는지 가게가 더 바빠지길 원하지 않았고 일주일 중 유일한 하루종일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토요일 그 하루는 뺏기기 싫었다. 맘마노트 PD님은 업체에서 요청을 부탁받는 일은 많지만 거절은 흔치 않아 당황스럽다는 말씀과 함께 거절의 이유를 물으셨다. 단번에 아이와 함께하는 유일한 시간이기에 죄송하다고 했다. 며칠뒤 PD님은 토요일 오전 8시 30분부터 3시간 촬영으로 12시 안에 끝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짜보자며 다시 제안을 해주셨다. 두 번이나 거절을 할 만큼 모질지는 못해 알겠다며 촬영을 하기로 했다. 빠른 촬영마감이 목표였던 나는 7시부터 매장에서 재료손질을 미리 해두었고
재료컷을 위한 재료사진과 조리컷을 위한 재료준비까지 미리 해두었다. 3시간 예상이었던 촬영은 2시간 만에 끝났다. 촬영팀 역시 빠른 퇴근으로 매우 만족스러워했고, 이후 3개월간은 매주 토요일 촬영을 했다.
불청객을 마주한 바로 그날. 아이와 신랑이 촬영 중 매장으로 방문을 했고 신랑은 촬영 중인 나를 기념한다며 사진을 한 장 찍어주었다. 우리 주방팀은 흰 조리모자와 흰 조리복 흰 앞치마 흰 니트릴장갑 흰 마스크 착용 한다. 손님과 10분 이상의 상담을 나눈 후 당일 저녁 매장 인근에서 사복을 입고 우연히 만나면 나를 단번에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 촬영 중에는 실제로 조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촬영을 위해서였기에 복장은 평소보다 자유롭게 입고 있었다. 조리모자는 쓰지 않았고 앞치마는 촬영팀에서 제공해 주신 검은 앞치마를 입고 있었다. 어차피 나의 손과 앞치마만 영상에 나오는 촬영이기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무사히 촬영을 마치고 뒷정리 후 핸드폰을 들었다. 신랑과 아이는 어디에서 놀고 있는지. 어디로 가서 둘을 만나면 되는지 카톡이 와있을 거란 생각에 들뜬마음으로 카톡을 확인했다. 사진 한 장이 전송되어 있다는 표시가 있었고 아이와 놀고 있는 사진일 거라 생각했지만 그 사진은 나에게 찾아온 불청객을 직면하게 해 준 사진이었다.
사진의 초점은 조리대 위였지만 내 눈에는 비어있는 머리만 보였다. 사진을 확대해 보니 500원짜리 동전보다도 크게 비어있는 머리통. 웬만해서는 큰소리를 내지 않는 나의 데시벨이 올라가기에 충분했다. 신랑에게 전화를 걸어 내 머리 무슨 일이냐며 이렇게 탈모가 심한데 왜 이제껏 말해주지 않았느냐며 나보다 위에서 내려다봤으면 다 보였을 텐데 여태 왜 말을 안 해주었냐며 나의 원형탈모의 심각성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 신랑 탓인 것처럼 대답이 궁금하지 않은 질문같은 짜증과 화를 쏟아냈다. 신랑은 대답한다. "희찬이 낳고 많이 빠진다고 일시적인 거라고 했잖아? 다시 나는 거라고 은채가 그랬잖아? 다시 안난대??" 1년 전쯤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빠지던 머리카락으로 인해 대화를 하긴 했다. 아이 낳고 6개월이 지나서부터 심각할 정도로 빠지기 시작했고 출산 후 1년도 되기 전부터 일을 시작해 내 머리카락에 관심을 쏟을 시간이 없었다. 그것도 그런 것이 주방에서 조리 모자를 쓰고 일하는 시간이 18시간이었던 때다. 신랑이 조리모자를 쓰지 않은 내 머리를 내려다 볼일이 많지 않았을 때이기도 하다.
미용실은 1년에 한 번 커트 8000원이라고 써붙여진 동네 할머니가 운영하는 곳에서 5센티 정도씩 상한 모발을 정리하는게 전부라 누군가에게 조언을 들을 일도 없었다. 친구들이 미용실에서 10만 원이 넘는 돈을 지불하며 주기적으로 헤어 스타일을 바꿔가며 미용실의 규모를 키워줄 때, 나는 내심 미용실만 안 가도 1년에 50만 원은 아끼네 라며 지겨운 긴 생머리에 대한 장점을 겨우찾아 위안을 삼았다.
원형탈모를 마주하기 전까지는.
원형탈모가 내 머리에서 더 커지기 전에 나는 당장 조치를 취해야 했다. 신랑에게 선포했다.
자기야! 안 되겠어! 머리 심을래! 당장 가장 빠른 수술날짜를 잡아주는 곳에서 당장 심을래!
내 인생에서 신랑의 의견 없이 나의 강한 의지로 가장 빠르게 추진된 일을 하나 고르라면 바로 모발이식이다.
네이버에 모발이식을 검색했고 압구정에 있는 병원으로 신랑과 상담을 갔다.
"저는 가장 빠른 날짜에 모발이식을 하고 싶어요. 원형탈모는 일반 탈모와 달리 복구가 힘들다던데 맞나요?
1년 동안 탈모케어를 받은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크게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하는데 1년 동안 쓴 돈은 300은 된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여러 번 케어를 받으러 올시간은 없고 당장 수술해 주세요."
상담실장이라는 명찰을 하고 있던 아리따운 상담사는 모발이식 상담을 위한 파일을 들고 있었고 파일을 펼치기도 전에 나의 용건은 끝났다.
수술비용은 가족할인 특별할인 이벤트할인 다 포함시켜서 해주세요. 밀당하면서 상담하시는 거 힘드시죠? 저는 밀당 같은 거 안 해요. 그런 거에 에너지 뺏기고 싶지 않아요. 깔끔하게 오늘 수술날짜 잡고 수술비 결제할 거니까 알아서 최저금액으로 해주세요.
신랑은 매우 당황한 표정이었고 재미있어했다. 나의 저돌적이고 당장이라도 수술을 필요로 하는 모습과 당찬 협상의 기질에 놀랐다고 한다. 다이소에서 1000원 짜리 물건을 들었다놓았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그냥 나오는 와이프. 쿠팡 장바구니에 사고 싶은 물건을 10개가 넘게 넣어 두었다가도 구매하지 않고 한달후 삭제를 누르며 구매한 기분을 만끽하는 이상한 와이프. 아웃렛에 가도 아무것도 사지 않아 주차비만 내고 나오는 와이프. 결정장애에 염전에있는 소금더미만큼이나 짠 와이프의 의외의 큰돈을 쓰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평소 1000원 2000원 아끼면 뭐하나 라는생각이 들었지만 빈 머리통으로 남은 여생 그냥 모른척 살수가 없었다.
상담실장님은 파일을 열어 보여주신다. 수술의 필요성이 나열된 내용은 넘겨버리시고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3000모 기준 비절개 650 만원/ 절개 450 만원 두 시술 방법을 보여주었다. 차이점을 듣기도 전에 마음속으로 절개를 선택했다. 물론 200만 원 때문이다. 비절개는 칼을 대지 않는 장점은 있지만 3시간을 엎드려있어야 한다. 절개는 뒤통수 아랫부분에 칼을 대지만 1시간만 엎드려 있으면 된다. 뒤통수 아랫부분은 삭발을 하지 않는 이상 보이지 않는부분이다. 그렇기에 5센티미터의 칼자국 정도는 200 만원의 값어치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다행히 아무런 흉터도 없이 아물었다. 상처부위를 아무도 찾지 못한다.) 200만원이나 저렴한데 술시간이 더 짧기까지 하니 고민이 필요 없었다.
절개수술은 피부조직을 절제해 한번에 많은 모낭을 얻을수있기때문에 신속하게 진행이 가능하다. 비절개는 뒤통수에서 모낭을 하나하나 뽑게되는데 효율적인 채취를 위해 뒤통수부분삭발이 필요하다고 한다.
"효과는 똑같다고 하시니 절개로 할게요. 가장 중요한 수술비는 어떻게 조정해 주시는 걸까요? 제가 가족이라고 생각하시고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