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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다듬는 시간

11월을 돌아보며

by 윤은채

11월은 거창한 시작보다는 조용한 완성을 꿈꾸었던 한 달이었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보단, 그동안 이어온 루틴들을 더 깊고 성실하게 이어가고 싶었다. 그렇게 11월은 나에게 '작게 단단하게'계획적으로 실천해보는 시간이었다.

매일의 루틴을 변함없이 지켜냈다. 감사일기, 필사, 운동. 그중에서도 필사책 한권을 마무리하며 느꼈던 뿌듯함은 꽤 짙었다. 짧지만 문장을 따라 쓰며 내 안의 감정을 정리하는 그 시간이 이제는 하루의 마무리 에서 중요한 중심이 되었다.

블로그 글 10편도 채웠다. 처음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쓸 수 있게 된 나 자신에게 조용히 박수를 보내본다. 일본어 축구책 번역은 진도가 많이 나가진 않았지만, 그 시작에 의미를 두고 싶다.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진전이니까.

그리고, 오랫동안 눈에 밟히던 기미 제거 치료를 드디어 시도했다. 결과가 기대만큼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피부과에 발을 디디고, 나를 위해 시도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기로 했다. 한 번 더 시도해볼 예정이고, 그 또한 내 자신을 돌보는 하나의 방법이라 여긴다.


아쉬움은 있었지만, 배움도 있었다.11월은 일정이 꽤 많았다. 찬희의 생일파티, 두 번의 마라톤 대회 참가, 학예회, 기미 제거 치료 등으로 포르투나 상담실을 비운 날들이 잦았다. 여기에 방송 출연 기회가 무산되는 일까지 겹쳐 아쉬움이 컸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다시 기회는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기로 했다.

무엇보다 이번 달 가장 크게 배운 것은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는 진리였다. 찬희가 학예회를 준비하면서 보여준 집중력과 태도는 놀라울 만큼 성숙했다. 긴장도 실수도 없이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빛나는 찬희를 보며,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준비가 되어 있다면 우리는 그 순간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 배움은 고스란히 나에게도 이어졌다. 상담실 역시 마찬가지다. 이유식 매장처럼, 포르투나 상담실에도 좋은 운이 찾아올 거라 믿는다. 그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나는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다짐을 되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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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은 두 번의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특히 작가님들과 함께한 슈퍼블루 마라톤은 달리기 전 긴장감마저도 즐거움으로 바뀌던 날이었다. 추운 날씨에도 내 몸의 열기는 내달리는 동안 찬바람을 잊게 만들었고, 기록 역시 단축되었기에 기쁨은 더욱 컸다. 지난달 52분 14초에서 이번에는 50분 16초. 거의 1분을 줄인 셈이다. 이제는 40분대라는 새로운 목표가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가능할까? 가능하다는 믿음이 천천히, 단단히 자라나는 중이다. 코치님같은 신랑에게도.


거실 한쪽을 차지하던 커다란 화분들을 당근마켓 나눔을 통해 새로운 주인을 찾아줬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은 찬희의 운동 공간이 되었고, 우리는 조금 더 효율적이고 가벼운 공간을 얻게 되었다. 필요 없는 물건들을 정리하고 나누는 그 과정은 마음까지 환기시키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찬희 생일엔 처음으로 풍선을 사고, 벽을 장식하며 작은 이벤트를 준비했다. 찬희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진작 해줄 걸'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내게도 그 순간은 오래 기억될 따뜻한 추억이 되었다.

한참전부터 예정되었던 알폰스 무하 전시를 다녀왔다. 타로카드 그림에 영향을 준 그의 작품 세계를 직접 마주하니 영감이 차분히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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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에는 새로운 계획보다는 지금 해오던 것들을 성실히 마무리하고 싶다. 일본어 축구책 번역진도를 조금 더 나가고, 전자책도 조용히 다시 써내려가고 싶다. 하루하루 해야 할 운동, 감사일기, 필사도 놓치지 않고 이어갈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올 한 해를 함께 걸어온 지인들에게 따뜻한 안부를 묻고 인사를 전하며, 마음을 나누는 시간들을 많이 갖고 싶다. 삶은 결국 관계이고,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과의 연결 안에서 깊어지는 것이라는 걸 요즘 더욱 절실히 느낀다.

무언가를 ‘더’ 하기보다,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을 더 정성스럽게 마무리해내는 12월이 되길 바란다. 그렇게 나는 한 해의 끝자락에서, 스스로를 다독이며 천천히 걸어가려 한다.이번달도 자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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