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함께 사는 낯선 이들

by 펜얼티밋

나는 좋지 않은 시기에 여행을 떠났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때였다. 내가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고 세상 사람 중 가장 쓸모없고 못났다고 생각했다. 언어도 서툴고 가끔 엉뚱하게 이상하고, 5명 이상의 사람들과는 한자리에 있는 것조차 불편해하는 모난 돌 같았다.


낯섦에 익숙해지기가 어려웠다. 사람들은 다들 친절하고 재미있었고 부족한 영어도 당연하게 받아들여 주었지만 나 혼자 속으로 힘들어했다. 그걸 옆에서 계속 붙잡아줬던 게 여기서 만난 두 친구 크리스티나와 필이다. 아마 당사자들은 모를 수도 있다. 그들이 없었더라면 적응이 많이 힘들었을 텐데 여러모로 고마운 친구들이다.


크리스티나는 푸에르토리코에서 심리학을 공부하다 온 멋있고 재미있는 친구였다. 내가 낯선 영어로 잘 알아듣지도 말하지도 못하고 소외감을 느끼고 있을 때 그녀가 먼저 말을 걸어주고 어떻게 말하면 내가 잘 알아들을 수 있을까 말을 바꿔가며 설명해주고, 보통 원어민들이 나에게는 치지 않는 농담까지 치며 함께 웃었다(주로 내가 한 번에 못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그녀와 나는 만난 지 한 달도 안 되어 깊은 대화를 나눴고 워커웨이어들이 오고 가는 걸 함께 봤다. 같이 별채를 페인팅하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하며 웃고 떠들었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여행 중 만나 가장 편하게 말을 할 수 있는 친구들 중 하나였다. 실제로 그녀와 안 지는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었지만 한 집에 살며 비슷한 시기를 지나고 있어서인지 급속히 친해졌다.


덴마크에서 온 필도 큰 지지를 보내주었다. 나이도 같고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던데다 둘 다 언어에 관심이 많아 외국어로서의 영어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그와 대화할 때는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과 대화할 때와는 다른 느낌을 받는다.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는 끊임없이 평가받는다는 무의식적인 느낌이 있다. 물론 그들이 실제로 나를 평가하고 있는 건 아니고 그냥 혼자 그렇게 느끼는 것뿐이었지만 이는 종종 아예 내가 입을 여는 것조차 막아버렸다. 아마 그래서 필과 대화하는 걸 좋아했던 것 같다. 영어가 외국어인 사람과 대화하는 게 더 편했다.


물론 그는 언어뿐 아니라 다방면으로 나를 도와주었다. 끊임없이 나의 가치를 스스로 잊지 않게 일깨워주었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내가 힘들어할 때마다 옆에서 힘이 나게 하는 말과 미소를 보내주었다. 그는 한국어에도 관심이 있어 나를 놀라게 했다. 게임하다 한국인들이 ㅋㅋㅋ라고 하는 걸 보고 한국어를 처음 접했다고 했다. 한국어는 배워도 써먹을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보통 물어보는 사람이 없는데 그는 한글 읽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고, 실제로 약 두 시간 후 한글을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이미 4개 국어를 하는 그에게 언어 하나쯤 재미로 배우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마이너 언어가 모국어인 사람으로서 누가 자국 언어에 관심을 보이면 어쩔 수 없이 신이 난다.


힘든 건 작별이었다. 여행 내내 수많은 작별을 해야 했다. 그중 힘든 작별도 있었고 헤어지는 게 기쁜 작별도 있었지만 어느 방향으로든 작별은 감정에 큰 파장을 만들고, 지금까지도 익숙해지지 못했다. 여행에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작별에 무감각한 능력일 줄은 몰랐다.


크리스티나와 필이 떠나고 에런 집에서의 기억은 뭉뚱그려져 남아있다. 사람은 점점 늘어나 20명 이상이 함께 지낼 때도 있었고 그냥 사람들과 있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식사 후 치우고 설거지하는 것만도 한 시간 가까이 걸렸고 재미보다 스트레스가 커졌다. 나도 슬슬 마음속으로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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